'에스카' 김인재는 2009년 STX 소울의 스페셜 포스 팀 프로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스페셜 포스, 스페셜 포스 2, 블랙스쿼드에서 우승을 일궈낸 FPS 판의 베테랑 중 한 명이다. 김인재는 이태준, 금동근, 류제홍과 함께 루나틱 하이의 이름으로 오버워치에 도전했다.
그는 2016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DPS로 선정되었고, 날카로운 에임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김인재의 맥크리는 그 당시 누구나 알아줄 만큼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APEX 시즌 2에 들어서면서 경기력 난조가 이어졌고, 비난들이 이어졌다. 김인재는 이를 극복하고 시즌 2 결승에서 루나틱 하이의 우승에 기여했다. APEX 시즌 3 역시 부진은 있었지만, 콩두 판테라를 상대로 마지막 7세트에서 솜브라로 상대 디바를 무력화시키는 등 우승의 한 축을 담당했다.
루나틱 하이가 오버워치 리그 소식과 함께 서울 다이너스티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김인재는 계약을 해지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의 선택은 배틀그라운드였다. KSV AseL(現 젠지 골드) 소속으로 참가한 APL 파일럿 시즌 파이널에선 아쉬운 활약을 보였지만, '킬레이터' 김민기와 '로키' 박정영의 합류와 함께 리빌딩을 하면서 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APL 시즌 1에선 형제팀인 KSV 노타이틀(現 젠지 블랙)에게 아쉽게 우승을 내줬지만, 분명 이전의 경기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삶 전반에서 고점과 저점을 오가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단련해온 김인재. 오는 13일 진행될 PWM 결선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김인재는 자신감과 우승을 하겠단 결의가 서린 얼굴이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프로게이머로서 계속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인재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젠지 골드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에스카' 김인재라고 한다.
-오랜 경력을 지닌 FPS 프로게이머다. FPS라는 장르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이런저런 게임을 하다가, 초등학생 때 스페셜 포스를 접하면서 다양한 FPS 게임을 해봤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2009년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어떻게 데뷔하게 됐는지
▶어릴 때부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무 살 때 스페셜 포스를 하다가 STX 소울에서 테스트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대학도 변변치 않은 것 같아, '도전해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해 프로게이머에 도전하게 됐다.
-2010~2011년에 걸쳐 개최된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기분은 어땠나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실감이 안 나고 얼떨떨했다. 내가 이뤄냈다기보단, 잘하는 형들에게 얹혀서 우승했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목에서도 우승했지만, 오버워치로 넘어와서 APEX 시즌 2, 시즌 3에서 우승할 때에야 "아, 이게 우승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셜 포스 2와 블랙스쿼드에서 우승할 때도 기분은 좋았지만 "이걸 하길 잘했어"라는 뿌듯함까진 들지 않더라.
-중간에 리그 오브 레전드(LoL) 아마추어 선수로 도전한 적이 있었다. FPS가 아닌 AOS를 시도한 이유가 있었는지
▶스페셜 포스 프로게이머를 하는 와중에 LoL이 갑자기 떴다. 당시 모든 사람이 LoL을 하지 않았나. 설상가상으로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를 진행하는 와중에 해당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자자했다. 우승 후에 정말 프로리그가 없어지더라. 나도 살길을 찾아야 했고, 주변에 다른 프로게이머들도 LoL로 많이 전향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시도하게 됐다. 아마추어팀도 꾸렸는데, 지금 잘 된 선수들도 많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챌린저도 갔다. 그러다가 스페셜 포스를 계속하고 있던 이태준과 류제홍이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데 한 자리가 빈다고 하더라. 재미로 참가해볼까 해서 함께한 것을 계기로 다시 FPS에 빠졌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LoL 아마추어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선수는 누가였나
▶'투신' 박종익과 '프로즌' 김태일, '듀크' 이호성이 당시에 같은 팀이었다. 박종익과 김태일과는 가끔 연락하는 편이고, 이호성과는 자주 연락한다. 심심할 때마다 배틀그라운드를 하더라(웃음).
-우리나라는 오버워치와 배틀그라운드 전까진 유럽이나 북미처럼 FPS가 장기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다. FPS 프로게이머로서 안타깝지 않았는가
▶안타까웠다. 해외에서는 FPS가 흥하는 장르고, 선수들은 연봉도 보장되고 인기도 많아 부러웠다. 오버워치 전까지 FPS 게임들은 많이 나왔지만, 엄청난 흥행을 이끌진 못했다. 그나마 서든 어택 정도였을까.
-블랙스쿼드 이후 오버워치를 접했다. 기존의 FPS와 다소 다른 느낌이었을 텐데
▶오버워치 클로즈 베타 때까지만 해도 기대를 안 했다. 오픈 베타가 시작되고서 인기가 많아지더라. FPS 외길을 걸어온 태준이, 제홍이와 함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 이미 나이도 많은 상태였다. 캐릭터마다 스킬도 달랐지만, LoL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FPS와 LoL을 합쳤단 생각으로 임했다.
-APEX 시즌 2 즈음에 큰 슬럼프가 있었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멘탈을 잡을 수 있었나
▶멘탈 관리를 딱히 하진 않았다. 동료들은 내가 눈치를 보지 않도록 믿고 따라줬다.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독려해주기도 했다. 나도 동료들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자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팀을 위해 노력했다.
-솜브라라는 새 활로를 찾아 시즌3 후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였고, 우승도 차지했다. 시즌 2 우승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시즌 2에서 우승했을 때 '내가 살면서 이런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는 그런 감동적인 우승이 안 나올 줄 알았다. 시즌 3에서 우승했을 때 '이걸 두 번이나 해냈구나'라는 뿌듯함도 있었고, 뜻깊었다. 시즌 2 우승을 통해 이미지를 회복한 줄 알았는데, 시즌 3 초반에 잠시 부진했을 때 또다시 욕을 먹더라. 결국 극복하고 우승까지 일궈내니 기분 좋았다.
-당시 루나틱 하이 선수들 인터뷰를 보니 팀원들이 감사한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주장으로서 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갔나
▶팀원들을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를 넘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관계가 굉장히 끈끈했고, 의지할 땐 의지하는 등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내가 팀원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일이 없어, 내가 말하면 믿고 잘 들어줬던 것 같다.
-오버워치의 큰 흐름이 오버워치 리그로 넘어가면서 루나틱 하이는 서울 다이너스티로 바뀌었다. 서울팀으로 넘어가지 않고 계약을 해지했는데
▶원래는 가려고 했다. 다시 열심히 해서 잘하면 그동안의 안 좋았던 내 이미지가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가 때 즐겨했던 배틀그라운드의 초기 대회를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지금은 오버워치 리그가 더 큰 무대지만, 그 때만 해도 배틀그라운드 해외 시청자가 몇 십만에 이르렀고, 국내 인기도 높았다. 배틀그라운드가 더 유저풀도 넓은, 큰 무대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당시 나이도 스물일곱이어서 오버워치 리그에서 오래 활동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후에 오버워치를 그만두고 배틀그라운드 프로를 도전하기엔 너무 늦을 것 같고, 수준 차이도 크게 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잘한단 보장도 없고, 적응하는 시간을 고려해도 오래 프로 생활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가 아니면 배틀그라운드는 평생 못하겠다 싶어,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다. 감독님은 처음에 반대하셨다. 나는 "내가 이렇게 리그에 가봐야 의욕이 없다면 엔트리 낭비만 될 것이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고민하시다가 결국 승낙해주셨다.
-배틀그라운드도 자기장 같은 운 요소가 존재하는 등, 기존에 플레이해온 FPS와는 사뭇 다르다. 익숙한 오버워치를 더 하는 것이 안정적일 수도 있지 않았나
▶태준이랑 모든 FPS를 해오면서 다 잘했었기 때문에, 배틀그라운드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막상 하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 자기장과 이동 동선 등,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총만 잘 쏜다고 되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극복했다.
-APL 시즌1에서 정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을 했다면 5개의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다.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결승이라는 것이 언제 또 갈지 모르고, 다수의 팀이 참가하기 때문에 우승할 것이란 보장도 없지 않나. 2라운드까지 치른 후에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아서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우승을 못 할 수도 있다. 이번이 기회다"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실수가 나오면서 우승을 놓쳐 분하고 아쉬웠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도 들었다.
-지금 함께하는 팀원들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심슨' 심영훈은 원래 스페셜포스 시절부터 최고의 자리에 있던 선수다. 게임을 끊은 지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도전하는 데도 그때처럼 열심히 하고 잘한다. 오더도 많이 발전해서 국내 탑3 안에 들 정도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오더에 대한 확신이 있어 망설임도 없고, 동선도 잘 짠다. 샷도 좋다.
'로키' 박정영은 처음에 팀에 들어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신인이었고, 테스트 보고 처음 숙소 왔을 때도 잘하지 못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점점 발전해서, 이젠 아무 데나 던져놔도 1인분 이상은 할 선수다.
'킬레이터' 김민기는 박정영만큼 빛을 내진 못하지만 우리 팀의 멘탈 측면을 맡는다. 나조차 멘탈이 나갈 때 분위기를 잡아준다. 평소에 박정영과 장난도 많이 치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요즘 PUBG 대회에서 많은 킬을 올리는 등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팬들도 채팅창에서 칭찬을 많이 하더라. 세간의 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버워치 초창기 아프리카 BJ 리그를 할 시기에 채팅창을 보면 사람들이 뭐만 하면 '빛스카'라고 말해줬다. 방향만 잡는데도 칭찬을 받는 등, 최고의 자리에 서봤다. 반대로 당연히 잡을 수 없는 것을 못 잡아도 비난을 받는 식으로, 뭐만 해도 욕을 먹으며 최악의 자리에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도 느꼈다. 다시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는데, 최근에 열심히 잘하니까 바뀌는 것을 느낀다. 감회가 새롭고, 다시 올라오고 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프로게이머를 오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는데, 20대 후반으로서 30대에도 프로게이머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해외 FPS 프로게이머 중에선 30대가 많은데, 국내에선 '무조건 어린 애들이 잘한다', '나이 먹으면 퇴물이다'라는 말들이 엄청 많더라. 나이 먹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아직 30대가 아니라서 함부로 말은 못 하겠지만, 나이가 들어도 잘하고 싶다. 지금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인데,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꾸준히 잘하려고 노력한다. 30대가 되어서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몇 살까지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은지
▶서른 살까진 하고 싶다. 솔직히 우승을 한 번만 하면 그만둘 때 미련은 없을 것 같다.
-젠지의 CGO인 아놀드 허는 "인기가 많으니 굳이 힘든 연습을 하지 않고 스트리머로 생활할 수 있음에도 프로게이머로서 꾸준히 노력할 정도로 깨어있다"고 평했다. 확실히 인기 스트리머는 프로게이머보다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프로게이머라는 길을 쭉 걷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스트리밍을 하면 방송하고 싶을 때 방송하고, 팀 게임에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계속하는 이유엔 계속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의 비중이 크다. 예전에 팬들에게 말해줬던 목표가 '오버워치 리그에 가서 다시 국가대표로 뽑히는 것'이었는데, 배틀그라운드 선수로 전향하면서 접었다. 대신 배틀그라운드에서 우승하겠다고 말했는데, 안 지키면 마음에 걸릴 것 같다. 스트리머가 아닌 프로게이머만의 메리트가 있고, 나도 우승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서 계속하고 있다.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 보인다. '에스카' 김인재에게 팬들이란 어떤 의미인가
▶내가 프로게이머를 하는 원동력이다. 힘들 때 팀원들도 있었지만, 팬들 역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만둘까 생각할 때도 팬들이 보내주신 편지나 메시지를 보면서 '힘내야겠다. 이대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는 사람에게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 배틀그라운드로 전향하면서 팬들이 많이 떠날 줄 알았는데, 오버워치를 하는 김인재가 아닌 프로게이머 김인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다.
-살짝 가벼운 질문을 해보자. 스트리밍 중에 미션을 받곤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미션이 있다면
▶얼마 전에 한 판에 약 130만원이 걸린 미션을 했다. 팬들의 도네이션이 쌓이다 보니 130만원이 되더라. 게임을 하는데, 결승전보다 더 긴장됐다. 어찌어찌 최후의 2인 안에 들어갔는데, 하필 자기장이 미라마 맵의 돌산 위에 걸렸다. 나는 돌산 밑에 있어서 올라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한 명이 있을 곳은 돌산 위밖에 없다고 생각해, 수류탄을 써서 스스로 게임을 끝냈다. 그런데 리플레이를 보니 다른 한 명은 밖에서 자기장을 맞고 있어 곧 죽는 상태였다. 가만히 있으면 치킨인데, 내가 포기해서 2등을 했다. 그때 나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오는 13일에 치러질 PWM 결선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그리고 결선에 임하는 각오는
▶기회가 안 올 것 같았는데 한 번 더 기회가 왔다. 거기다 전체 순위 2등으로, 어드밴티지 395포인트를 갖고 시작한다. 이번 결선은 패치 후 버전으로 진행되다 보니, 새로운 패치에 적응하려고 일반 게임도 많이 하고 있다. 동료들끼리 그동안 했던 실수들을 안 하려고 피드백도 많이 하고 있다.
이번에 우승해야 독일에서 열리는 PUBG 글로벌 인비테이셔널에 진출할 수 있다. 꼭 PWM에서 우승해서, 팀원들과 함께 독일 땅도 밟고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싶다. 거기서 우승하는 것이 내 프로게이머 생활 최고의 시나리오일 것 같다. 그래야 내가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후에 내 삶을 되돌아봤을 때, "잘했다. 후회 없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게이머 '에스카' 김인재가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오버워치를 거치면서 나의 좋았던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했다고 생각한다. 그걸 다시 끌어올리고 싶다. 사람들이 나중에 프로게이머 '에스카' 김인재를 이야기할 때 "잘하는 선수였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배틀그라운드에서 인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다사다난한 선수라 팬분들이 응원하실 때 힘든 순간이 많으셨을 것 같다. 내가 욕을 먹으니,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까지 멸칭으로 부르며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 힘드셨을 텐데도 신경 쓰지 않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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