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선수 이종욱

Talon 2018. 6. 25. 11:41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육상부 이종욱 선수입니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명 '육상부'를 이끄는 리드오프 선수였습니다.


서울면목초 시절 학교 대표로 육상 대회에 나갈 정도로 발이 빨랐던 그는 처음에는 축구를 하려고 했으나 축구부가 없어서 서울면목초등학교 1학년 때 '자이언츠' 리틀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홍은중학교와 선린정보고등학교를 거쳤습니다. 선린정보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98년 9월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 일본 오사카에서 벌어진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였습니다. 1999년엔 신인 드래프트 2차 2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된 뒤 영남대학교 체육학부 체육학과에 진학하였고, 3학년인 2001년에는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대만 타이페이 시에서 벌어진 제21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스카우트 팀장이었던 김진철은 그의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주목했고, 1999년 신인 지명에서 현대 유니콘스 2차 2라운드 16순위로 지명되었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 영남대학교 체육학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계약금 9,000만 원, 연봉 2,0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였습니다. 하지만 타격에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1군 출장 기회를 한번도 잡지 못했습니다.


2003년 12월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2005년 11월에 제대했으나 20일 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는 리드오프로 활약했던 정수성이 있어 그와 같은 발 빠른 타자에 대한 수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두산 베어스에서 리드오프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자 당시 1군 투수코치이기도 했던 전 넥센 히어로즈의 김시진 감독은 2009년 시즌에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된 것은 아쉽지만 현재 두산 베어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2006년

방출 후 선수 생활에 은퇴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그때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 동기이자 친구인 두산 베어스의 유격수 손시헌의 추천으로 입단 테스트를 거쳐 2006년 신고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고 곧바로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습니다. 한편, 두산 베어스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했던 김동주는 1루 슬라이딩 중 부상으로, 포수 홍성흔은 팔꿈치 통증으로 제외되어 공수 양면에서 치명적인 공백이 생겼고,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은 시범 경기 중 '발야구로 승부를 걸겠다'고 하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범 경기부터 기동력 야구를 위해 발 빠른 선수를 중용했습니다. 또한 그도 시즌 전의 전지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4월 8일 시즌이 시작되자, 그는 다음 날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 1군에 데뷔해,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시즌 초반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기용되다가 그 해 5월부터 베테랑 외야수 장원진, 전상렬을 밀어내고 5월부터 좌익수 겸 1번 타자로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그리고 좋은 활약을 인정받아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 선수로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9월 이후에는 타율이 0.239에 그치며 시즌 말미에 갈수록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었던 정근우와도 도루 경쟁을 벌여서, 51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두산 베어스는 4번 타자 김동주의 부상 등으로 5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시즌 후 신인왕 후보에 올랐으나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괴물 신인 좌완 투수 류현진에게 밀려 단 한 표도 받지 못하며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또한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랐으나, 45표 득표에 그쳐 수상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구회의 의지선수상을 수상했고,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돼 행복했는데 큰 상까지 주셔서 감사드린다" 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시즌 후인 2007년 1월 10일, 지난 해보다 4,000만 원 인상된 6,000만 원에 2007 시즌 연봉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구단 역대 최고인상률 기록입니다.



2007년

2007년 시즌에 주로 중견수를 맡았으며, 예년과 같이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 선수 자격으로 참가했습니다. 2007년에 그는 체력 부담을 극복해 9월 이후에도 타율이 0.359에 이르렀고, 2루타 20개, 3루타 12개로 장타도 증가했습니다. 그는 당시 LG 트윈스의 1번 타자였던 이대형과 도루왕 경쟁을 벌였고, 이대형에 밀려 도루 47개로 2위에 머물렀지만, 그 외에도 3할대 타율, 득점 2위, 최다안타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2007년에는 그를 포함해 고영민, 민병헌이 사상 최초로 3명이 30도루를 달성해, 두산 베어스 특유의 발야구가 최정점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그 해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의 원투 펀치로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3연승으로 가볍게 제압했습니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투수 안영명과 빈볼 시비가 있기도 했지만, 2차전 1회말 1번타자로 나온 첫 타석에서 정민철을 상대로 오른쪽 파울 폴대를 직접 맞추는 솔로 홈런을 쳐내는 등, 타율 0.545, 7득점, 3타점, 2도루로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SK 와이번스와 맞붙었으며, 그는 1차전에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치고 출루한 뒤 고영민의 타격 때 득점했습니다. 이후 3회초에는 도루시에 정근우의 세운 스파이크에 무릎에 피가 맺히고, 5회에는 도루 시도 때 포수의 송구가 외야로 빠지자 3루로 진루하려 했으나 정근우가 다리를 손으로 막았습니다. 이에 정근우의 플레이에 논란이 일었고, 당시 주루 방해를 선언하지 않은 심판도 그날 이후 오심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5회 1사 만루 상황에서 김동주의 2루수 앞 희생플라이 때 3루에서 홈을 파고들어 득점해 자신의 2득점으로 팀의 승리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두산 베어스는 2차전 승 뒤에 4연패를 당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쳤고, 그는 6차전 9회초 2아웃에 삼진을 당해 2007년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라 유효표 397표 중에 350표를 획득, 최다 득표로 수상했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그가 솔로 홈런을 치며 환호하는 순간의 사진으로 골든포토상 수상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9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시즌 후인 2008년 1월 11일, 종전 연봉 6천만 원보다 116.7% 오른 1억 3천만 원에 재계약하며 이적 2년 만에 억대 연봉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2008년




2008년 시즌에 들어서면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은 2006년부터 줄곧 1번 타자를 맡던 그에게 2번 타자를 맡게 하고 지난 시즌 0.244의 타율과 0.308의 출루율로 가능성을 보인 민병헌을 1번 타자에 배치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민병헌은 5월 후반까지 타율이 2할 언저리에 머물렀고, 그 또한 스윙이 커져 시즌 초반 타율이 2할대 초반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4월 후반부터 부담을 떨쳐내고 다시금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8년 올스타전 올스타전 6차 투표 때까지 동군 외야수 4위를 기록하여 올스타전 출전이 어려워 보였지만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였던 정수근이 폭행 사건으로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으면서 마지막 집계에서 동군 외야수 3위로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었고, 그는 처음으로 올스타 베스트 10에 뽑혀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했고 그 이후의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 개인 최다 5안타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5월달까지는 도루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6~7월 사이 도루 1위였던 이대형이 타격 부진에 시달리는 사이 간격을 좁혔습니다.

 그리고 7월 22일 한화 전에는 도루 3개를 기록하며 사상 3번째 3년 연속 40도루를 달성하는 동시에 단독 도루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이대형이 시즌 막판 도루를 대량 성공 시키며 도루왕 탈환은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98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그 해에 시즌 2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해 4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에서의 두 차례 슬라이딩 캐치를 비롯해서, 6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0.517의 타율, 3타점 6득점의 맹활약으로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되면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는 2년 연속 SK 와이번스와 맞붙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는 22타수 5안타 0.227의 타율로 부진했습니다. 그는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라 총 202표를 받아 외야수 중에 세 번째로 많은 득표수로 골든 글러브 2년 연속 수상을 차지했으며, "올해 성적이 별로 안 좋아 기대는 안했는데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부모님을 비롯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더 좋은 플레이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시즌 후 지난 시즌보다 4200만원 오른 1억 7200만원에 재계약했습니다.


2009년




2009년 시즌 전에 WBC 대표로 차출되었으나 부진하였습니다. 시즌이 들어선 후에는 4월 11일, LG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첫 타석 우익수 방면 2루타, 두 번째 타석 볼넷, 세 번째 타석 1타점 우전 안타, 네 번째 타석 우월 투런 홈런, 다섯 번째 타석 우익선상 3루타를 쳐내면서 프로 야구 통산 14번째 사이클링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5월 8일, 왼쪽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갔고, 휴식 후 5월 19일에 복귀했으나 다음 날까지 7타수 무안타에 빠졌고 5월 22일부터 28일까지 6경기를 대주자, 대수비로서만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29일에 선발 출장해 27일, 25번째 타석만에 안타를 터뜨리며 부진을 벗어나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6월 2일 KIA전에서 8회말 수비 때 김종국의 뜬공을 잡으려다가 2루수 김재호의 왼발 스파이크에 목 부위를 부딪혀 피를 흘리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병원에 후송된 결과 오른쪽 목부위가 3 cm 정도 찢어져 출혈이 있었고 턱관절 골절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사이 그의 공백은 고졸 신인 정수빈이 대신 매워주었고, 부상 당시 시즌 복귀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수술 후 빠르게 재활을 거친 그는 2군 경기에 출전해 홈런을 쳐냈고, 7월 17일 1군에 복귀했습니다. 1군 복귀 뒤 대주자, 대타로 경기에 나서던 그는 7월 22일, 50일만에 선발 출장을 했습니다.

 복귀하면서 턱 보호대가 있는 일명 '검투사 헬멧'을 사용했고, 복귀 후 44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9에 19타점 25도루를 기록해 다시금 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전 베스트 10에 뽑혀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그 해 정규 순위 3위를 기록했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어 3승 1패로 사상 첫 경기 패전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했습니다. 그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278, 4득점, 2타점으로 팀의 승리에 공헌했습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2차전에서는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고, 3차전에서도 정상호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는 동시에 귀루하지 못한 2루 주자였던 김강민을 함께 아웃시켜내는 등 맹활약했습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는 2승 뒤 3연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해당 시즌 골든 글러브 후보에는 들지 못했고, 외야수 부문의 시상자로서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시즌 후 6월에 당한 부상 등으로 조금 활약이 주춤하면서 연봉이 삭감되었습니다.



2010년

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타격 자세를 배트를 꼿꼿이 세운 상태에서 눕히는 것에서 배트를 눕혀 준비 동작에서 여유를 갖게 하는 것으로 바꾸며 재기를 노렸습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자 4월 타율이 2할대에 머물렀고, 4월 22일에는 수비 중 왼손목 부상을 당하며 11일간 쉬기도 하는 등 활약이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복귀 이후 5월부터는 한 달 간 34안타를 몰아치며 타율 0.382를 기록하는 등 타격감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7월 10일, 귀루 중 발목을 접질리면서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했으나, 얼마 안되어 외야수 부문 3위로 올스타전에 베스트 10에 뽑혀 출전했습니다. 그는 후반기에 들어 타율이 점점 떨어졌습니다. 이 시즌에는 도루가 특히 적었는데, 그 이유로 "단순히 뛰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도루 개수의 감소를 자신이 직접 말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마지막 경기서 5년 연속 30도루를 성공시키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2년 연속 3위를 차지한 두산 베어스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하게 되었고 2연패를 당했으나 이후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그는 패한 1, 2차전에서도 9타수 4안타로 팀내 가장 좋은 타격을 보였고, 3차전에서는 3번 타자로 출전해 1점 홈런을 쳐내며 팀 승리에 공헌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었고, 그는 1차전에서 유격수 플라이 때 홈에 쇄도해 득점하고, 2차전에는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팀은 다섯 번 연속 1점 차 승부 끝에 삼성 라이온즈가 3승 2패로 승리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라 155표를 얻으며 3위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또한 1억 9200만원에 협상을 끝내 지난해보다 3천만원 오른 연봉으로 재계약했습니다.


2011년

시즌 초반 타격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4월 중반부터 상승세를 보이며 타율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던 중 4월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투수 앞 땅볼을 치고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베이스에 왼 엄지손가락을 부딪혔으나 큰 부상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부상 회복이 더뎌지면서 잠시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가 없고 팀도 부진해 5월 초반 다시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습니다. 복귀 이후 타격 부진에 시달려 몇 경기 하위 타선에 배치되기도 했으나, 다시 예년 같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시즌에는 팀 성적 부진 등으로 올스타전 팬투표에 뽑히지 못했고, 감독 추천 선수에도 들지 못하면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8월 5일, 6일에는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데뷔 첫 두 경기 연속 홈런을 쳐냈으며, 특히 6일에는 데뷔 첫 3점 이상의 홈런을 뽑아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 잦은 부상으로 고역을 치렀고, 타율 9위를 기록했으며, 개인 시즌 최소 도루인 20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자신은 외야 수비 때나 도루 시도 등 주루플레이 때 다소 소극적으로 플레이해서, 자신의 장점인 허슬플레이를 맘껏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의 시즌 도중 퇴진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즌을 5위로 마무리지었고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전체 306표 17표 만을 득표하면서,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2011년 시즌보다 7% 인상된 2억 500만원에 2012 시즌 연봉 재계약을 하면서, 데뷔 처음으로 연봉 2억원대를 돌파했습니다.


2012년




시즌 초반인 4월에 타율 0.306, 19안타 10득점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나, 이후 타율이 5월에는 0.202, 6월에는 무릎 부상등이 겹치며 0.143까지 내려갔습니다. 극심한 부진으로 하위타순으로 밀려났고, 당시 감독이었던 김진욱을 비롯해 이토 쓰토무 수석 코치 등이 부진 탈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부진은 길어졌습니다. 결국 6월 말에 그동안 그를 꾸준히 지도해왔던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송재박이 1군 타격 코치로 올라왔고, 노스텝 자세와 어퍼 스윙 대신 짧게 끊어치는 땅볼 위주의 타격에 주력했습니다. 한편 6월 29일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제외된 임재철을 대신해 주장을 맡은 그는, 7월 0.247, 8월 0.262로 타율이 상승하는 페이스를 보여주었습니다. 7월 27일에는 역전 끝내기 안타로 프로 데뷔 후 첫 끝내기 안타를 쳐냈습니다. 올 시즌 121경기에서 2할대 타율, 21도루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치렀던 시즌 중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사실 크게 아픈 데는 없었다. 이상하게 방망이가 맞지 않더라.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야구가 참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어, 첫 두 경기에서 2연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3차전에서 그가 1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에 성공하고, 후속타 때 득점을 해 부상 투혼을 보여주었고, 이런 활약 덕에 두산 베어스는 3차전을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남은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고, 두산 베어스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4차전을 내주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올 시즌 부진으로 인해 800만원이 깎인 1억 9700만원에 2013 시즌 연봉을 계약했습니다.


2013년

작년 커리어 로우의 성적을 거두었고, 올 시즌 뒤에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기 때문에 2013년 시즌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해였습니다.

 개막전부터 19경기 연속 출루 행진을 이어갔으나, 4월말에 왼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잠시 2군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며 6월 .388로 월간 타율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6월 팀내 타자 부문 MVP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올스타전에는 감독 추천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8월 하순에 종아리 통증으로 잠시 2군에 다녀왔다가 복귀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네 개인 한 시즌 홈런, 2루타 기록을 갱신하며 주력에 장타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1번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맞붙어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와 맞붙었습니다. 그는 1차전 1회초 첫 타석에서 우중간 외야를 꿰뚫는 3루타를 터뜨렸으며, 후속 타자의 적시타에 홈으로 들어왔다. 이날 경기에서 2득점을 올렸습니다. 4차전에서는 희생 플라이로 결승 타점을 올렸으며, 이 경기에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2할 대의 타율로 부진했으며 시리즈 중 하위 타선에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시즌 후 FA를 선언하였으나 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기간 동안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11월 17일, 4년 총액 50억원의 조건으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였습니다. 11월 29일 열린 ADT 캡스플레이 2013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4년

2013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취득한 그는 NC 다이노스에 계약금 28억원과 연봉 5억원, 옵션 2억원 등 4년간 50억원을 받고 입단했습니다. 5월 18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투수 최병욱으로 부터 2루타를 치면서 역대 68번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하였습니다.

 201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투표에서 503,389표를 얻어 웨스턴 리그 올스타 외야수에 선정되었습니다. 7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7회에 도루에 성공하며 통산 13번째 9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이 경기에서 정성훈의 장타성 외야 타구를 잡아내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8월 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역대 109번째 통산 1000경기 출장을 기록하였습니다.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통산 16번째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 2014년 시즌 2할대 타율, 126안타, 6홈런, 78타점, 73득점, 15도루를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타점은 78타점으로 2013년에 기록한 52타점 기록을 갱신하였고, 결승타는 10개로 에릭 테임즈, 나성범에 이어 팀내에서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3번타자와 6번타자를 오가며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부진하였으며, 4차전에서는 선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가 김태군의 대타로 출전해 1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였습니다.


2015년

2015년 시즌에 이호준의 뒤를 이어 NC 다이노스의 새 주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호준 선배의 뒤를 잇는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지만 좋은 틀을 만들어놓은 만큼 전통을 잘 잇는 주장이 되겠다”며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4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피어밴드를 상대로 4회 2사에서 좌전 안타를 쳤습니다. 이 안타로 역대 63번째 통산 1,100안타를 기록했습니다. 4월 1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역대 9번째 통산 300도루를 기록했습니다. 6월 18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역대 88번째 통산 1100경기 출장을 기록했습니다. 6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를 성공하면서 통산 9번째 10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습니다. 전반기 81경기 293타수 79안타 타율 0.270, 45득점, 2홈런, 31타점, 14도루, 37볼넷, 48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8월 2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신재웅을 상대로 좌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치면서 KBO 리그 통산 52번째 1200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015 시즌 2할대 타율, 125경기, 440타수, 118안타, 63득점, 52타점, 17도루를 기록했습니다.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3번타순에 기용됐으나 출루조차 하지 못하고 부진했습니다. 3차전에서는 5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4차전에서도 안타를 1개 쳤습니다. 그러나 5차전에서 안타를 치지 못하면서 플레이오프 최종 성적 18타수 3안타 타율 0.166 2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016년

2016년 5월 25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74번째 1200경기 출장을 기록했습니다. 1200경기 출장 후 “기록보다 많은 경기에 나가 고맙다. 긴 세월이 생각났다. 특히 1군 데뷔 첫 경기가 많이 생각났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7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정인욱의 초구를 받아쳐 2루타를 기록했습니다. 이 안타로 역대 45번째 통산 1300안타를 기록했다. 8월 23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김윤동을 상대로 내야안타를 치면서, 시즌 100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으로 2010년부터 역대 30번째 7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8월 2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송은범을 상대로 내야안타를 친 후, 2루 도루에 성공했습니다. 시즌 10번째 도루로 2006년부터 역대 8번째 11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기록을 세웠습니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카스티요를 상대로 2루타를 쳤습니다. 이 2루타로 역대 58번째 200 2루타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10월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스캇 맥그레거를 상대로 좌중간 적시타를 쳤습니다. 이 안타로 타점을 추가하면서 KBO 리그 역대 76번째로 통산 500타점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오프 3경기에 출장해 13타수 2안타 타율 0.154, 출루율 0.154, 장타율 0.267로 부진했습니다. 반면 한국시리즈에서는 4경기 출장해 13타수 4안타 1타점 타율 0.308 출루율 0.308로 활약했으나, 팀은 두산 베어스에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2016년 시즌 134경기 출장해 453타수 138안타, 54볼넷, 73삼진, 15도루,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16년 시즌이 끝나고 주장직을 박석민에게 넘겨줬습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2007년 3월에 두산 베어스의 감독을 맡고 있던 김경문 감독이 이미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11월 30일에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겸 올림픽 예선의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외야수 중에서는 같은 팀 민병헌과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대만과의 첫 경기에서 0-1로 뒤지는 상황인 5회초 2사 1, 3루에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서 선발 투수 린언위로부터 결승 역전 3점 홈런을 뽑아냈습니다.

 그는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1번 타자로 예상되었으나, 10분전에 오더가 바뀌면서 8번 타자로 바뀌었고, 2-4로 뒤진 8회 말에 희생 플라이를 치면서 1타점을 올렸으나 팀은 4-3으로 패했습니다. 필리핀과의 세 번째 경기에서 적시타로 1타점을 올렸고, 팀은 13-1의 점수로 콜드 게임으로 승리했습니다. 그 결과 대표팀은 2승 1패로 2위에 머물며 3승을 기록한 일본에게 밀려 올림픽 직행에 실패했고, 2차 예선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최종 예선 엔트리는 2008년 3월 5일 발표되었고, 같은 팀 중에는 투수 김선우, 내야수 김동주, 고영민, 그리고 상무에 복무 중인 손시헌과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첫 경기 남아공전에서 선두타자로 나와 첫 타석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고 도루에 성공한 뒤 이승엽의 2루타 때 득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4타수 무안타에 그치면서 호주전에서는 이용규에게 선발 출전을 내주었습니다. 호주전에서 진갑용 대신 대주자로 출장되었습니다. 그는 9일 멕시코전에서는 3-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회 대표팀 첫 3루타를 터뜨리며 2타점을 올렸으며, 6타수 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10일 스페인전에서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으며, 1안타 3볼넷으로 높은 출루율을 보였습니다. 이틀 뒤 독일전에서 2번 타자로 출전, 볼넷을 얻어냈습니다. 13일 캐나다전에서는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첫 타석에서 3루를 꿰뚫는 적시 2루타를 터뜨려 1타점을 올렸으나 팀은 4-3으로 패했습니다.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 대만전에서 4-3으로 승리하면서, 2위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올림픽 엔트리는 2008년 7월 14일 발표되었고, 외야수 중에서 같은 팀 김현수와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올림픽 야구 본선은 8월 13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날 미국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7-7의 상황이던 9회말 1사 3루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쳐냈습니다. 15일 캐나다전에서는 4회 1사에서 빗맞은 중전안타성 타구를 전력질주해 다이빙 캐치를 하며 1-0의 류현진의 완봉승에 일조했습니다. 다음 날 일본전에서는 9회초 2사 이후 3루수 앞에 떨어지는 절묘한 기습번트로 4-2, 이후 누 상에 나간 이후 도루를 시도했고 포수 아베의 악송구로 3루에 안착했고 3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또 다시 한 점을 추가해 5-2를 만들어냈습니다. 17일에는 3일간 미뤄졌던 중국전에서의 11회 승부치기에서 2루 주자로 나가 이승엽의 끝내기 안타 때 홈에 들어와 득점해 1-0으로 승리했습니다. 18일 대만전에서는 1회 내야 안타를 치고 득점했으나, 7회말에는 외야 뜬공을 펜스 앞에서 놓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19일 쿠바전에는 7회에 교체 투입됐고 수비를 마치고 들어선 타석에서 1타점 적시타를 쳐 내며 쐐기 타점을 만들어냈습니다. 20일 네덜란드전에는 5타수 3안타로 활약했고, 예선 성적은 27타수 10안타, 타율 0.370, 3타점, 4득점, 2볼넷, 2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큰 활약은 하지 못했습니다.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7회초 볼넷으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 이용규가 2루타를 쳐냈으나 아웃 카운트를 착각한 그가 홈으로 들어오지 않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3-2로 승리하면서 9전 전승 금메달을 이루어냈습니다.


2009년 WBC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외야수로서는 같은 팀 김현수와 함께 선발되었습니다. 그는 주로 톱타자로 경기에 출장해 1라운드에서는 대만, 중국, 일본과의 경기에서 1회 볼넷으로 출루해 선취 득점에 성공했지만, 타격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전까지 타율 0.188를 기록해 부진했던 그는, 일본전에서는 좋은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던 이용규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는 6회에 김현수 대신 수비 강화를 위해 대주자로 교체되었으나 그는 바로 도루에 성공했고 이후 안타 때 득점했습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9회에 대주자로 교체 투입되어 이범호의 안타 때 홈으로 들어와 득점해 동점이 되었으나 연장 10회초 스즈키 이치로의 2타점 적시타를 맞고 5-3으로 패해 대표팀은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0년 아시안 게임

아시안 게임 최종 엔트리는 2010년 9월 6일 발표되었으며, 그는 외야수로서는 같은 팀 김현수와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첫 경기 대만전에서 1번 타자로 나섰으나, 다섯 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를 쳐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후 1번 타자를 정근우에게 내주었고, 그 대신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타율 0.125, 3삼진으로 부진했습니다.


전형적인 테이블 세터 유형의 선수로서 리그를 대표하는 1번 타자로 일컬어질 정도로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를 보유하고 있어, 병살타가 적은 편입니다. 공격적으로 타격하며 선구안이 좋고 컨택 능력이 뛰어나며, 밀어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변화구에는 약점이 있지만 커트를 잘해 끈질긴 승부를 합니다. 도루 능력은 리그 내 최정상급입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시즌 동안의 도루 갯수가 이대형의 뒤를 이은 2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점점 도루 시도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는 이에 대해 "도루로 좋지만 1루에서 상대 배터리를 흔들고 후속타 때 3루로 진루하는 게 타자에게도 유리하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또한 2011년 시즌 초에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서 안 뛰는 것은 아니다. 재작년에도 크게 다치고 올 시즌도 부상으로 좀 뛰기 어렵다. 조금 조심하려고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근성이 강한 선수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예로 2009년 6월초에는 턱관절 부상으로 2~3개월의 치료와 재활이 예상되었으나 불과 한 달 반 만에 복귀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같은 팀 동료인 이혜천은 2011년 시즌 전에 그를 보고 "마치 독약 먹고 뛰는 것 같다. 일본 선수들도 동영상을 보여주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칠 것 같아서 경기 때마다 구급차를 불러놓고 해야할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평균 타율에 비해 좌완투수 상대 타율이 약간 떨어지는 편입니다. 2007년 시즌에 좌완 상대로 0.324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 2008년 시즌 0.247, 2009년 시즌 0.248, 2010년 시즌 0.291의 타율을 기록해 본인의 시즌 타율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외야수비에 있어서 빠른 발을 살린 수비 범위는 넓으나 어깨는 평범하다고 평가받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와 선수단 승계를 한 우리,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2007년 시즌 현대를 상대로 0.246의 타율을 기록했고, 이듬해 우리 히어로즈를 상대로 0.189, 2009년 시즌에는 0.286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시즌에는 넥센을 상대로 맹타를 휘둘렀고, 상대팀 중 가장 높은 0.511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테이블 세터이긴 하지만 이례적으로 득점권에서의 타율이 높아 2007년 시즌에 0.385, 2010년 시즌에 0.359를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1번 타자답게 홈런 수는 적은 편이나, 의외로 국가대표 경기나 포스트 시즌등 중요한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2007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의 솔로 홈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예선 대만전에서의 3점 홈런, 2010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의 홈런이 그 예입니다. 2010년 시즌에 5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이전 시즌까지의 홈런 총 합보다 더 많은 홈런 개수를 기록하였습니다. 타석에 등장할 시의 노래는 플로 라이더의 'In The Ayer'라는 곡입니다. 응원가는 트랜스픽션의 '라디오'를 개사한 것으로, '날려라 이종욱 이종욱 이종욱 날려버려 두산의 이종욱이다'를 반복합니다. 또한 그는 영화 옹박의 주인공 배역을 맡은 토니 자와 닮았다고 하여 팬들 사이에서 ‘옹박’ 혹은 ‘종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서울면목초등학교, 홍은중학교, 선린정보고등학교를 거쳐 1999년 부터 2003년에 영남대학교 체육학부 체육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7년 12월 9일, 영남대학교 체육학부 체육학과 재학 중 만나 6년 간 열애한 여자 친구 양유정씨와 결혼했으며, 주례는 하일성 당시 KBO 사무총장이 맡고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이 축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20일에는 첫 딸을 얻었습니다. 그는 같은 팀 동료인 손시헌과 특히 친한 것으로 유명하다. 둘은 고등학교 동기였으며 대학교 졸업 후 손시헌은 두산에 신고선수로, 그는 현대 방출 후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습니다. 또한 손시헌이 당시 그의 두산 입단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둘은 후원회인 ‘시종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 선수 회장으로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10기, 11기 집행부를 역임했습니다. 좌우명은 ‘잡초 근성을 갖자’입니다.


서울면목초등학교

홍은중학교

선린정보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이상 이종욱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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