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김용우가 만난 사람] 스타1에서 LoL까지 - '오뚜기' 송광호 이야기(1부)

Talon 2019. 9. 28. 09:14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웅진 스타즈는 전통적으로 프로토스 명가였다. 전신인 한빛 스타즈에서는 '가림토' 김동수와 박정석이 있었고 웅진으로 넘어와서는 에이스였던 '뇌제' 윤용태와 김승현, 1승 카드였던 신재욱이 활동했다. 유망주 중에서는 윤용태를 뒤를 이을 선수라고 평가받던 '아리아' 송광호도 있었다. 

2011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웅진 스타즈의 추천 선수로 입단한 송광호는 2013년에는 최연소 선수로 프로리그 로스터에 등록됐다. 당시 프로리그는 스타1과 스타2로 동시에 진행됐는데 송광호는 스타2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kt 롤스터 원선재를 꺾기도 했다. 스타2 개인리그인 챌린저리그에 올라오기도 했던 송광호는 팀이 사라지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사람들의 기억에 잊혀가던 송광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건 2016년 11월에 열린 KeSPA 컵이었다. 당시 라이징 스타 게이밍(RSG, 해체) 소속으로 KeSPA컵에 참가한 송광호는 삼성 갤럭시(현 젠지 e스포츠)와의 12강전에 출전했지만 0대2로 패했다. 이후 RSG를 나온 송광호는 일본 LJL 센고쿠 게이밍에 입단했다. LJL 스프링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송광호는 서머 시즌서는 '블랭크' 강선구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당시 센고쿠 게이밍 게임단 주인 이와모토 로스케씨가 '블랭크'를 영입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는데 송광호가 통역을 한 건 알려진 이야기. LJL 서머 시즌이 끝난 뒤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송광호는 포모스와 만나서 스타1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인터뷰는 2부로 나눠서 공개할 예정이다. 

- 웅진 스타즈 시절 주목받는 윤용태를 잇는 프로토스 유망주였다. 이 자리를 빌려 어떻게 프로게이머가 됐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처음 웅진 스타즈에 들어간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연습생으로 팀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선 '커리지 매치'에서 입상해서 준 프로게이머가 돼야 했다. 이후 준 프로게이머들끼리 '프로 선발전'이라고 경기를 치르는데 그 결과를 토대로 프로게임단이 선수를 선발했다. 나는 커리지 매치에서는 입상을 못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프로게임단이 추천 선수로 커리지 매치 입상과 상관없이 유망주를 팀에 합류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팀의 도움으로 준 프로게이머가 됐다. 시기가 잘 맞았다. 동기 2명과 함께 팀에 들어갔는데 그중에 한 명은 현재 스타2 선수인 김준혁이다. 

- 스타2까지 한 거로 기억하는데 갑작스럽게 리그오브레전드로 넘어가게 된다
스타1을 하다가 스타2를 넘어가는 시기가 있었다. 우리 팀은 스타2 성적이 정말 좋았다. 주전뿐만 아니라 후보 선수도 잘했다. 주전 선수가 밀릴까 봐 걱정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스타2 랭크 점수도 높았는데 팀이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2를 더하기 위해선 해외 팀에 가거나 남아있는 한국 팀(당시에는 삼성 갤럭시, 진에어, SKT 등)으로 이적해야 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이적을 해도 원하는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때가 17살이었다. 

동시에 OGN에서는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현재 LCK)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스타2가 LoL처럼 인기가 많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방송을 자주 보면서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해 궁금해졌다. 연습 때는 다른 게임을 할 수 없었지만 쉬는 날에는 PC방에 가서 한 두 판씩 해봤다. 30레벨까지 올리는 게 힘들었지만, 레벨 올리는 게 재미있어서 조금씩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고등학생이기에 '학교는 마치자'라고 생각했다. LoL은 하되 졸업 때까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려고 했다. 마침 다니던 학교가 디지텍고등학교라서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LoL에 접근할 기회가 수월했다. 웅진 팀이 해체된 뒤 집으로 돌아갔고 시즌 3부터 본격적으로 랭크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몰랐는데 시즌 2 때 캐릭터 창에 잔나가 생겼다. 왜 들어왔는지 몰랐다. (웃음)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자면 시즌3서 (김)유진(현 진에어)이 형과 듀오를 했는데 배치를 '브론즈2'로 받았다. 그걸 보면서 LoL은 어려운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솔로 랭크를 하면서 티어도 실버, 골드로 계속 올라갔다. 솔로랭크를 하는 분은 알겠지만, 점수를 계속 올리더라도 막히는 구간은 발생한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어떻게 게임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주위 친구들에게 LoL에 관해 물어봤다. 배우면서 플래티넘까지 올렸다. 당시에는 다이아1 50점이면 잘하는 축에 들어갔다. 이후 다이아1 70점까지 올린 뒤 LoL 프로게이머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성격을 보면 서포터 아니면 정글러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LoL을 시작했을 때 원거리 딜러가 강했다. 시즌 2~3때는 원거리 딜러가 대장이었고, '캐리'를 하면서 다녔다. '주인공이 되보자'는 생각으로 원거리 딜러로 출발했다. 남을 서포터 하는 거보다 주인공을 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했다. 나만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노력의 끝도 없었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 원거리 딜러를 선택했다. 

- 이후 라이징 스타 게이밍(RSG) 소속으로 2016년 KeSPA컵에 등장하게 된다 
사실 RSG에 들어가기 전에 중국 3부 리그 팀에서 활동했다. 같이 한 선수가 '벤' 남동현(TES), 헤카림을 잘하는 '고분대장' 형이었다. 한국인 3명이 들어갔는데 팀에서는 2명만 쓸 수 있다고 했다. 3명 중에 '고분대장' 형이 내가 생각하던 프로게이머 생활이 아니었다며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남) 동현이 형과 제가 선수로 활동하게 됐다. 당시 생각해보면 동현이 형에게 미안하다. 동현이 형은 잘하는 서포터였지만 나는 잘하는 원거리 딜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팀도 3부 리그에서 전승으로 4강까지 올라갔다. 한 경기만 이기면 2부 리그 승강전에 갈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문제가 생겨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패한 팀이 우리가 부정행위를 했다며 공안에 신고를 한 것이다. 경기를 출전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에 매우 낙담했다. 팀에서 나온 뒤 동현이 형은 중국 팀을 찾아본다고 했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팀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후 남동현은 인빅터스 게이밍, WE를 거쳐 지난 서머서는 TES에서 활동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팀을 찾는데 친한 '갈비' 이주협 코치(전 담원 게이밍)가 나한테 RSG에서 선수 생활을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다. RSG 팀이 지난 시즌 4위를 해서 KeSPA 컵에 참가할 수 있었다. 동시에 중국 1부 리그에서 나한테 연습생 테스트 제안을 했다. 중국을 갈지 아니면 KeSPA 컵에 나갈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중국을 가더라도 잘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RSG와 계약한 뒤 KeSPA 컵에 출전했다. 당시 우리 팀 첫 상대가 삼성 갤럭시(현 젠지 e스포츠)였다. 패하더라도 즐기면서 하자고 했다. 괜찮았던 장면은 몇 개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 본인에게 이재균 감독(전 웅진 스타즈 감독, 현 KeSPA)은 어떤 존재였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감독님이다. 무서웠지만 재미도 있었다. 나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 감독님이다. 예전에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에게 잘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제는 프로게이머 경력이 쌓이다 보니 당시에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2016년 KeSPA 컵 현장에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뵈는 거라 반가웠다. 감독님이 '잘하라'며 등을 두들겨줬는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도 연락하는데 그럴 때마다 반갑다. 잘해드리고 싶다. 

- RSG를 거쳐 2018년 일본 리그(LJL) 센고쿠 게이밍에 입단하게 된다 
RSG를 나온 뒤 팀을 찾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제안을 해왔다. 그중 센고쿠 게이밍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매니저한테서 온 게 아니라 같은 팀이었던 '스마일' 원종하(현 LJL AXIZ팀) 선수가 연락을 해왔다. 그는 '우리 팀이 원거리 딜러를 찾고 있는데 챌린저스 코리아 경력도 있고 내 게임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일본이고 가까운 지역이라서 흥미를 느꼈다. 원래 일본은 지난해까지 2부 리그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2부 리그가 없어지고 1부 리그에 3팀이 늘어났다. 센고쿠 게이밍도 프랜차이즈 심사를 받고 있는데 아직 확정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스프링 시즌이 1월 10일쯤에 시작됐는데 승격 결과는 12월 26일쯤에 나온다고 했다. '스마일' 선수와 대화를 나눈 게 11월 말~12월 초였는데 내가 3주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고민도 했고 긴장도 됐다. 당시 '스마일' 선수가 저한테 회사 자랑을 하는데 재미있었다. 회사 좋아서 들어가는 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시간이 있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매니저와도 이야기했고, 팀 선수들과도 게임을 해봤는데 정말 나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LJL 승격이 결정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갔는데 2주 만에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팀은 오랜 시간 동안 손발을 맞췄을 건데 우리는 이제 시작이라서 걱정을 했다. 언어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선수들이 솔로 랭크를 할 때 나는 일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치가 캐나다인('Maplestreet' 애인슬리 와일리)이었다. 미드라이너인 'Taka' 이와타 타카히로는 일본인인데 호주에서 20년을 살아서 일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다. 'Taka' 선수는 코치와 영어로 하고 다른 일본인 선수는 일어, '스마일' 선수와 나는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팀 안에서 언어를 3개를 사용했다. 정말 힘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스마일' 선수가 일본어를 통역했다. 그걸 'Taka' 선수가 영어로 'Maplestreet' 코치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진짜 일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했고 첫 번째 인터뷰를 통역 없이 진행했다. 우리 팀에는 스트리머가 있는데 스트리머 친구들 방송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계속 보면서 선수들과 대화도 자주 했다. 스트리머가 있는 게 도움이 됐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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