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모경민의 클로즈업] 다시 트로피 들어올린 젠지, 배승후 감독 손에서 맺어진 2019년

Talon 2019. 12. 30. 10:02


젠지가 다시 한 번 세계 챔피언에 이름을 올렸다. ‘2019 배틀그라운드 펍지 글로벌 챔피언십(이하 PGC)’서 수많은 게이머들이 자신의 꿈을 펼쳤다. 11월 9일부터 25일까지 펼쳐진 총 48번의 매치. 한국에선 PKL 페이즈3 우승팀 OGN 엔투스 포스와 준우승팀 T1. PKL 포인트 합계 상위권 아프리카 프릭스, 디토네이터, 젠지. 마지막으로 PGC 선발전을 통해 올라온 OGN 엔투스 에이스가 참가했다.

PKL 페이즈3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던 젠지는 수많은 팀을 제치고 결국 PGC 우승을 차지했다. 그랜드 파이널 마지막 라운드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으나, 젠지는 모든 부담감을 떨치고 포인트 획득에 성공했다. 젠지는 PKL과 MET 아시아 시리즈, PGC까지 석권해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젠지의 배승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페이즈3이 끝난 후 스크림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현실적으로 우승을 바라고 있진 않았다고 밝혔다.

2019년을 재패한 젠지는 2020년 또한 게을리 시작하지 않았다. 젠지는 ‘아쿠아5’ 유상호와 ‘멘털’ 임영수로 전력을 보강했다. 젠지는 리빌딩을 마친 후 일본 PWI에서 우승을 차지해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 배승후 감독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큰 대회에서 최고의 팀에 오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회 결과에 상관없이 2020년을 바라볼 것을 소망했다.

팀과 함께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오른 배승후 감독은 PGC에서 그랬듯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눈앞에 있는 작은 결과보다 미래에 대한 발전을 중요시 여겼다. 또한 같은 가치관으로 달려준 선수들과 팀에게 영광을 돌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복도 있었지만 결국 PKL, MET, PGC 모두 석권했습니다. PWI까지 우승하면서 세계 최고 지도자 자리에도 앉으셨는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PGC 시작하기 전 목표는 당연히 높게 잡았죠. 그러나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까지 잘 믿기지 않네요. 또 최고의 지도자라고 해주셨지만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절대 아니에요. 단장님을 비롯해 젠지 사무국 직원들이 모두 한뜻으로 도와줬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선수들도 저를 끝까지 믿어줬어요. 같은 가치관을 갖고 달리다보니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PGC 우승을 달성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단연 PKL 페이즈2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피오’ 차승훈 선수 영입 외에 어떤 변화를 겪고 강해졌던 건가요
‘피오’ 차승훈을 영입하기 전에도 열심히는 했어요. 열심히는 했는데 머리로 이해한 걸 게임으로 풀어내질 못했어요. 그 부분에 벽을 느끼고 있었던 상태고요. 그런데 차승훈 선수가 들어오면서 구상했던 것들이 실행되고 시너지도 나면서 페이즈2부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진했던 PKL 페이즈3에선 경기 템포가 빨라지고 신맵 사녹까지 등장했어요. 젠지는 어떤 과정을 겪고 변화에 적응했나요
사녹은 저희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 팀들에게 큰 과제였잖아요. 저희는 주로 히트맵을 연구한 것 같아요. 자기장 엔딩 지점 말이에요. 요즘은 안 그런 것 같은데 두 번째 서클에서 물이 빠지는 경우가 많아 ‘킬레이터’ 김민기 선수, 차승훈 선수와 함께 본섬 위주로 풀 수 있는 동선을 연구했어요. 그래서 후반부에는 사녹을 잘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페이즈3는 팀이 부진했던 시즌이기도 하지만 선수 개개인이 비난과 비판을 받았던 시기이기도 해요. 선수들 멘탈 케어는 어떻게 해 주셨나요
차승훈 선수가 페이즈3때 많이 힘들어했어요. 오더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젠지에서 오더를 맡으면서 그 무게를 못 견디는 것처럼 보였어요. 차승훈 선수와 젠지 사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 이야기 나누면서 분위기 환기 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 순간 ‘별 거 아니었네’하고 깨달을 때가 있잖아요. 개인 방송에서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는데, 그날 선수들과 한강에서 치킨에 맥주 먹고 풀었어요.

팬들에게는 응원할 권리도 있지만 비판할 권리도 있잖아요. 다른 리그나 다른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선수들이 그 부분에 신경을 안 썼으면 좋겠어요. 작은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간 게임에 감정 소비하지 않으면서요.
 


PGC를 위해 미국에서 한 달 가량 생활하며 많은 고충이 있었을 것 같아요. 경기 내, 외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미국 LA에 젠지 오피스가 있어요. 솔직히 거기서 2주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없었어요. 이게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고도 생각해요. 직원분들과 차장님께서 음식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경기장 음식이 간이 세서 입맛에 안 맞았는데 젠지 사무국 덕분에 컨디션 관리가 쉬웠죠.

모두 OGN 엔투스 포스의 우승을 예상했어요. 젠지가 페이즈3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기 때문 아닌가 싶은데, 결과적으로는 젠지가 가장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페이즈3 끝나고 스크림을 돌렸는데 결과가 처참했어요. 굳이 언급하자면 3부 리그 스크림에서도 성적이 안 나왔던 상태으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죠. 이때 선수들이 매너리즘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PKL 페이즈2 우승하고 MET 아시아 시리즈도 우승하고. 시즌이 끝났다는 생각이 강했나봐요. 그래서 이 시즌에 선수들을 강하게 잡았어요. 초반에 잡지 못했던 제 잘못도 있고요. 2주 동안 천천히 하나씩 하려고 노력했어요. 차승훈 선수를 제외하면 수동적인 친구들이 많아서 일부러 차승훈 선수를 제외하고 김민기 선수와 세 명을 스크림 돌렸어요. 세 명이 오더를 하면서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나 직접 느끼게 해 보려고요. 한 단계씩 작은 목표를 성취하면서 올라갔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말씀하셨듯 ‘킬레이터’ 김민기 선수가 올해부터 주로 코치 역할을 맡았어요. 차승훈 선수와 함께 팀 운영의 주요 멤버라고 생각되는데, 코치로서 어떤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지 궁금해요
이만한 선수 커리어를 가진 코치가 없어요. 이런 경험이 코치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일단 김민기 코치가 생각하는 동선은 3, 4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차승훈 선수는 이걸 이해하고 수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둘이 시너지가 잘 맞기도 하고, 김민기 선수가 인게임 적으로 훌륭한 코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서 이번에 코치로 함께하게 됐어요.

김민기 코치와 더불어 ‘피오’ 차승훈 선수의 역할이 크네요. 젠지는 차승훈 선수가 핵심이라는 느낌도 많이 들기도 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자는 천재를 이기지 못한다고. 차승훈 선수는 재능을 겸비했는데 즐기면서 노력해요. 게임도 잘하고 연습도 많이 하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타입이에요. 이 때문에 의존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의존도는 줄여야죠. 차승훈 선수가 죽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이 나오게 되거든요. 이 부분은 현재 고치려고 노력 중입니다.

차승훈 선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아쿠아5’ 유상호 선수의 영입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유상호 선수 영입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밸런스를 잘 잡아주기 때문이에요. 차승훈 선수는 풀어놓으면 혼자서 점수를 따오는 스타일이에요. 차승훈 선수가 메인 오더를 맡으면서 그 빈도가 줄었는데, 유상호 선수의 영입으로 차승훈 선수가 비교적 자유롭지 않을까 해요.

‘멘털’ 임영수 선수는 어떤 면을 보고 영입을 결정하셨나요
기존에 수비적인 선수들이 많았어요. 능동적인 플레이가 부족했죠. 임영수 선수는 차승훈 선수와 함께 공격적인 오더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영입을 결정했어요. 차승훈 선수와 임영수 선수가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로키’ 박정영 선수와 유상호 선수가 수비적인 역할을 맡으며 밸런스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젠지가 이번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가 많은데 팀원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차승훈 선수가 메인 오더를 맡으면서 예전보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나올 것 같아요. 유상호 선수는 과도한 공격성을 잡아주면서 밸런스를 맞추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임영수 선수는 정보의 질이 굉장히 높더라고요. 보통 사운드로 많이 정보를 얻는데, 임영수 선수는 이쯤에 누군가가 오겠다 하면 정말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서브 오더 역할도 잘 맡아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정영 선수도 더 자유롭게 서포팅 할 수 있을 거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에스더’ 고정완 선수는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보고요.

물론 함께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스크림에서 맞춰보니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많이 삐그덕거렸죠. 젠지라는 기본 틀이 있는데 임영수 선수와 유상호 선수는 다른 팀에서 이적했으니 젠지의 스타일과 동선을 몸에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젠지를 비롯한 많은 팀이 리빌딩을 거쳤어요. OSM 서울컵에서 리빌딩을 거친 팀이 많이 출전했어요. 혹시 시청하셨나요
네 시청했습니다. 아프리카가 우승하고 디토네이터가 준우승을 했잖아요. OGN 엔투스 포스도 준수한 편이고요. 전체적으로 준수하다고 봐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OGN 포스가 리빌딩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기존 세 명의 선수가 정말 잘하는 선수인데 거기다가 ‘언더’ 박성찬 선수라는 에이스가 들어갔잖아요. 포스는 점점 더 강해질 것 같고 내년 시즌 젠지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DPG 다나와도 까다로운 팀이 될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팀원들의 교전 능력이 올라오면서 중앙보단 외곽 플레이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들 상향평준화가 많이 됐어요. 다만 저희는 목표로 하는 시즌이 PGS거든요. 그래서 국내보단 해외 팀들 연구에 몰두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해외 팀 중에 가장 눈여겨보는 팀이 있다면 어느 팀인가요
일단 페이즈 클랜이 가장 거슬리는 게 사실이에요. 페이즈 클랜을 작년부터 연구했는데 페이즈 클랜이 추구하는 방향이 저희와 비슷해요. 젠지가 북서쪽 외곽을 타고 들어온다면 페이즈는 동남쪽 외곽을 타고 들어오는데 그런 면이 닮아 있고 또 페이즈는 어떻게 해야 치킨을 먹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팀이기도 하고요. 중국은 4AM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요. 중국 팀은 교전을 무섭게 열어서 정신차려보면 순식간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국은 PKL, PEL, PCL 이렇게 세 리그가 가장 잘하지 않나 생각해요.
 


감독으로서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선수들에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이 각각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뢰예요. 선수들과 수평 관계까진 아니더라도 수직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거든요. 김민기 코치의 의견을 많이 듣고 선수들 의견을 수용해서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잘 굴러갈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 다음 인게임적으론 팀합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피드백 해주면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고치고 폼을 올리는지, 선수의 수용 자세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선수들에게 있어서 재능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총 쏠 때 피치컬, 게임을 보는 눈, 그리고 피드백을 수용하는 학습 능력 같은 것들이요. 그 중에 가장 코칭하고 싶은 유형이 어떤 유형인가요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이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이건 배틀그라운드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냥 모든 프로게이머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요. 재능만 가지고 덤벼드는 선수들은 금방 게을러지고 나사가 풀려요. NTT 시절부터 수십 명의 선수가 저를 거쳐갔는데, 항상 그랬어요. 재능만 가지고 덤벼든 선수들은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노력을 동반하지 않은 선수들은 금방 뒤처지게 돼요. 이상적인 선수들은 조금의 재능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는 선수죠. 배틀그라운드는 특히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서클마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해요. 지도자로서 당연히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있고 싶죠.

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탁드릴게요
일본 대회를 앞두고 있는데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작년 일본 대회에서 못했어요. 그렇지만 결국 3연패를 달성한 것처럼, 이벤트 대회에 목숨걸기보단 큰 대회에서 최고의 팀에 오른다는 믿음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믿고 따라주는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항상 뒷바라지 잘해주시는 이원민차장님 격려해주시고 믿어주시는 이지훈 단장님, 미국에서 응원 많이 해주신 아놀드 허 단장님께도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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