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정근우 선수입니다!
정근우 선수는 한국 프로 야구 SK 와이번스의 주전 2루수이며, 팀의 주장입니다.
부산고등학교 시절 함께 야구를 같이 했던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 선수, 이대호 선수, 김태균 선수와 함께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함께 발탁되어 우승을 이루어냈습니다. 부산고등학교 시절 부상으로 인해 3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그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습니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고교 졸업 후 프로 구단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지 못해 당시 고려대 이종도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고려대학교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재치가 좋아 고려대에서도 주로 상위 타선을 맡으며 대학선수를 대표하는 여러 대회의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활약했습니다. 제15회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 제35회 야구월드컵 대회, 제2회 세계대학 야구선수권대회 등 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향상시켰습니다.
2004년 6월에 열린 2005년 SK 와이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4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을 받고 입단 계약을 맺었습니다.
입단 첫 해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인 조범현 감독은 정근우 선수를 톱타자로서의 자질이 있다며 상무에서 막 복귀한 조동화 선수와 함께 기대를 걸었습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연습 경기때부터 빠른 발과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 거기다 공격력까지 겸비한 플레이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때 당시 SK는 기존 3루수 안재만 선수를 FA 김재현 선수의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에 보냈기 때문에 3루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 입단 동기로 고교야구 최고 선수, 팀의 거포 타자로 기대를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던 최정 선수와 함께 3루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습니다.
시즌 초에 1번 타자로 활약을 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주춤하면서 그 무렵 컨디션이 좋았던 김민재 선수와 타순을 바꾸며 주로 하위 타선에 배치되었습니다. 2005년 5월 1일 두산전에서 당시 두산 선수였던 나주환 선수가 팀 사정으로 포수로 출장하면서 2루 도루를 시도하던 자신을 완벽한 송구로 잡아내 아웃을 당한적도 있습니다.
시즌 초에는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업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전 2루수 정경배 선수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시즌 중반부터 2루수로 기용되면서 점차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근성, 재치있는 발빠른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런 모습에 감독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해 열린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게 되었지만,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프로 2년차에 2루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여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시즌 내내 이종욱 선수와 도루 경쟁을 함으로써,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45개의 도루로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렇듯 신인으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면서 연봉이 150% 인상되어 팀 최고 인상률을 기록하였습니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주전, 비주전이 아닌 "전원 야구"와 끊임없는 내부 선수들간의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이른바 SK 야구를 실현시켰습니다.
이 시즌에서 그는 자신의 포지션인 2루수에서 유격수로 변신을 꾀하면서, 방해석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격수비 자세가 익숙치 않은 탓에 자주 실책을 범했고, 그로 인해 수비 지적을 외부에서도 많이 받기도 하였습니다. 수비 불안으로 한동안 대타 및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지만 감독은 그런 자신을 꾸준히 기용해주면서 3할을 넘는 타격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이현곤 선수와 함께 타격왕을 두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였고,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유격수 및 2루수로 출장하여 한국시리즈 1, 2차전의 8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모습에서 3차전부터 톱타자로서의 제 몫을 해주었습니다. 6차전에선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며 그 경기 MVP가 되면서 데뷔 후 첫 팀 우승을 이루어냈습니다. 이 해 팀 선배 박경완 선수에 이어 타자 중 연봉 고과 2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우승 직후 결혼식을 올렸으며 주례는 김성근 감독이 맡아주셨습니다. 애제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마음이 담긴 주례사 일부입니다.
“내게는 ‘8’이 행운의 숫자였다. 내가 SK 감독직을 맡은 날이 작년 10월 8일이고, 정규리그 우승을 한 날은 올해 9월 28일이다. 또 한국시리즈 6차전에 역전 홈런을 친 선수가 바로 등번호 ‘8번’의 정근우였다.”
2007년에 이어 3할을 유지하는 타격과 40도루, 불안했던 수비가 좋아지면서 원래 포지션인 2루로 돌아와 주전 2루수로서 내야의 중심을 잡게 되었습니다. 2008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이종욱 선수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 병살 처리를 하며, 매경기 호수비를 통해 팀을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또 이 해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는 데 큰 활약을 하여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도하 참사의 아픔을 씻어 내며 병역도 해결하였습니다.
시즌 초 발목이 좋지않아 어려움이 있었으나, 곧 회복되어 시즌 중반까지 타율 4할대를 기록하며 김현수 선수와 함께 경쟁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3할 5푼의 고타율과 함께 득점 1위, 도루 2위, 최다 안타 2위를 기록하며 팀에선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각광받았습니다. 이 기록들은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7 시즌부터 3년 연속 3할대 타율, 2008시즌부터 2년 연속 최다 안타 부문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 타자임을 증명하였습니다. 3월에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습니다. 이 해 팀은 시즌 성적 2위로 플레이 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아쉽게 KIA 타이거즈에 석패하며 우승 3연패는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우승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정근우 선수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내부 평가로 이 해 야수 연봉 고과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2006년에 이어 두번째로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다시 한번 수상하였습니다.
적재적소에 도루를 하고 상대팀의 추격의 흐름을 끊는 호수비로 팀 우승에 기여하였고,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범위, 더불어 특유의 점핑 송구는 지난 시즌에 비해 월등히 좋아져 2루에서의 실책을 낮추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아시안 게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우승에도 기여하여 도하에서의 나쁜 기억을 완전히 털어 냈습니다. 더불어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타자 연봉 고과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2011년에는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었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공에 머리를 맞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7월에는 왼쪽 늑골 통증으로 4년만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 복귀 후에도 허리 통증이 재발해 8월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와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1번 타자로 나서며 공격을 이끌고, 팀을 플레이오프로 직행시켰습니다. 더불어 팀 사상 첫 5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도 이끌었습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9안타 타율 0.529를 기록하며 준PO MVP로 선정됐습니다. 정근우 선수의 포스트시즌 시리즈 MVP는 데뷔 처음이죠.
작년에 이어 재신임되었던 박정권 선수가 주장 역할로 인해 스프링 캠프와 시범경기에서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이만수 감독은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고자하였고, 이에따라 정근우 선수가 주장직을 이어받았습니다.
신인 2년차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기에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습니다. 이용규 선수와 함께 테이블 세터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만전에서 2번 타자로 출장해 삼진 2개를 포함해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 해 국가대표팀은 2006년 최다 안타를 기록했던 이용규 선수, 신인답지 않게 대담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괴물투수 류현진 선수 등이 출전했지만 동메달에 그쳐 "도하 참사"라는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당시 정근우 선수는 이용규 선수, 이택근 선수와 함께 '국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을 기용한 게 패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5경기 출장, 20타수 7안타, 3타점 8득점 3도루 4사구 4개, 타율 0.350
미국전 9회 진갑용 선수 대신 대타로 나와 3루수 옆을 스치는 2루타를 때려내며 출루, 동점을 만드는 홈 슬라이딩으로 극적인 역전을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캐나다와의 경기에서도 3회 좌월 솔로 홈런을 뽑아내며, 이 홈런으로 대표팀이 1-0으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루를 제외한 내야 모든 자리를 맡아가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고 병역을 해결했습니다.
8경기 출장, 29타수 9안타, 1타점 5득점 1도루 1희생타, 타율 0.310
3월 6일 도쿄돔에서 열린 예선 1라운드 대만전에서 6회 말 투런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9경기 출장, 24타수 7안타 2타점 7득점 1도루 4사구 2개, 타율 0.292
첫 경기인 대만전부터 안타를 치며 이어 동료 추신수 선수의 홈런으로 1득점을 하였고 다음 타석에 들어서서도 역시 안타를 친 후 또다시 추신수 선수의 홈런으로 순식간에 4점을 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예선 3차전 파키스탄 경기에서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고, 조동찬 선수가 9번 타자 겸 2루수로 대신 출장하였습니다. 그 외 모든 경기에서 2번 타자 및 2루수로 출장하여 팀이 필요로 할 때 안타를 치고 안정적인 수비로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4경기 출장, 16타수 9안타 3타점 6득점 1도루 4사구 3개, 타율 0.563
부산성북초등학교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2011년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상’ 매직글러브 수상
2011년 준 플레이오프 MVP
2010년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수비상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9년 골든 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
2009년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타자상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7년 한국시리즈 6차전 MVP
2006년 골든 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11년 10월 12일 준 플레이오프 4차전 한 경기 최다득점 타이 기록
PS 통산 한 경기 최다 출루 타이 기록.
2011년 10월 9일 준 플레이오프 2차전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 기록.
2011년 10월 5일 6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 기록.
2011년 4월 2일 통산 200호 도루 달성.
2007시즌~2010시즌 4년 연속 3할대 타율 기록.
2006시즌~2010시즌 5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 기록.
2010년 42경기 연속 출루 기록.
2010년 5월 1일 LG전 프로 데뷔 첫 한경기 최다안타 기록.
2009년 역대 2번째 3할 5푼-50도루 이상 기록.
2009년 168안타, 53도루 - 역대 2루수 부문 1위 / 타율 0.350, 98득점 - 역대 2루수 부문 2위 기록.
2009년 8월 5일 역대 7번째 '1회 초-말 동시 선두타자 홈런' 기록.
1회 초-덕 클락, 1회 말-정근우
2008년 6월 12일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 기록.
2007년 8월 11일 한화전 끝내기 홈스틸 기록.
2007년 5월 20일 프로 데뷔 첫 끝내기 홈런 기록.
2006년 8월 23일 두산전 1경기 최다도루 기록.
2006년 8월 16일 SK 와이번스 팀 창단이래 첫 30도루 달성.
2006년 8월 6일 롯데전 연타석 홈런 기록
이상 정근우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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