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이 프로야구 선수에 필적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이상혁(페이커)의 경우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이대호(4년 150억 원)에 비견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스포츠는 각광받는 미래 스포츠 종목입니다.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연이어 거대한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 규모나 인식은 여전히 초라합니다. 친(親) 게임정권이 출범해 기대를 받고 있지만, 당장의 인식과 시장규모는 마이너 내지는 지하세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쿠키뉴스 스포츠팀은 e스포츠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유의미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이번 연재물을 기획했습니다. e스포츠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불합리한 규제를 모두 바꾸겠다”
지난 4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아모리스 역삼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국가전력 대선후보 초청 포럼’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규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한국은 게임 산업은 물론 e스포츠 분야에서도 최강국이었는데, 게임을 마약처럼 보는 부정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규제 때문에 중국에 추월당했다”며 “인식과 규제만 바꾸면 다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지난 10년 간 국내 게임 업계는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황폐화됐다. 게임을 도박과 마약, 술과 함께 중독물로 분류하는 것도 모자라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청소년에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골자의 ‘셧다운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셧다운제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과 게임업체들의 매출 1%를 게임중독 기금으로 징수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파로 현재 게임 업계는 대기업 중심의 ‘양극화’ 시장에 확률형 게임으로 범벅된 획일화 된 시장으로 변모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게임은 실종 된지 오래다.
이는 자연스레 게임을 매개로 하는 ‘e스포츠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국의 게임이 아닌 해외 종목사의 게임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성장 동력을 잃고 말았다.
e스포츠 종주국의 명성도 무색해졌다. 이미 세계적인 규모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2015년 지역별 e스포츠 시장규모는 북미지역이 전체의 38%, 중국이 15%를 차지했다. 한국은 8%에 머물렀다.
2015년 기준 중국의 e스포츠 시장규모는 23억 위안(한화 약 3849억 원)이었지만 한국은 e스포츠 시장 규모가 약 723억 원에 머물렀다. 격차는 지금도 벌어지는 중이다.
주춤하는 사이 각국의 정부와 세계 재력가들은 앞 다투어 e스포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e스포츠 시장이 가진 무한한 잠재성을 파악한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글로벌 e스포츠 시장규모는 2019년까지 연평균 40.7%로 고속 성장해 $10억7200만 달러(한화 약 1조 2,596억 원)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 된다.
중국은 정부가 중심이 돼 인터넷 기업 텐센트와 부동산 기업 완다가 대대적인 투자를 실시했다. 특히 텐센트는 5년 내 자국 e스포츠 시장을 17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꾸준한 투자 움직임이 포착된다. 맨체스터 시티와 발렌시아 세비야, 비야 레알과 같은 유럽 유명 축구 클럽이 프로게이머 영입을 시작했다. 이밖에도 발렌시아와 PSG, 페네르바체 등의 구단은 리그오브레전드(롤) 팀을 인수·창단에 나섰다.
자본과 투자의 규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면서 자연스레 ‘인재 유출’이 한국 e스포츠 시장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국내 산업 다방면에서의 인재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듯이 한국 e스포츠 산업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 e스포츠 산업 최후의 보루는 ‘인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국제대회에서 매번 우승컵을 들어 올릴 만큼 해외 프로게이머들과 비교해 월등한 기량 차이를 보인다. 해외 유저들이 게임 도중 우연히 같은 팀에 한국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상대 팀에 “우리 팀에 한국인이 있다. 이겼다”라고 외친 일화는 유명하다. 규모는 작지만 한국이 여전히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외 리그에서 영입 1순위로 뽑는 선수들도 단연 한국 선수들이다. 한국 선수의 인기가 높아지자 중국 리그인 LPL은 경기 출전 시 한국인 용병을 2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콘텐츠진흥원의 2016년 이스포츠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2월23일 기준 롤 프로 선수 가운데 팀 변동이 된 선수들이 이적을 선택한 비율은 45.3%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해외 진출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선수들의 비율은 61.9%에 달했다.
희망 국가로는 중국이 92.3%로 가장 많았는데 이유는 ‘경제적 여건 향상’이 69.2%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7.7%의 선수는 더 나은 훈련환경 및 지원 제도 때문에 해외 진출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e스포츠 산업을 장시키고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e스포츠의 주체인 선수들이 리그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량 좋은 선수들이야말로 한국 e스포츠 산업이 갖춰야 될 차별화 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해외 리그로의 인재 유출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과 프로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열악한데다 선수들의 훈련 환경과 처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어린 선수들이다보니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 받거나 임금 체불 속에서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려 있다.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의 가이드라인이나 직업 교육 등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법무법인 ‘비트’의 안일운 변호사는 “시장의 규모가 법적 관행이나 공정한 표준 지침 등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며 “e스포츠 시장에서의 각종 계약들은 업계의 합의된 형태로 정립돼 있지 않다. 예를 들면 프로게이머와 게임팀 간의 선수 계약 내용은 팀과 프로게이머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다. 실력이나 팀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대우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갑’인 팀이 처음부터 의도하는 경우도 있으나, 단지 계약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결방안을 고려하지 않아서인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 변호사는 위에 대한 해결책으로 “표준계약서나 법적 고나행, 공정한 거래를 위한 협회의 지침 등이 발달해야 한다”면서도 법적 표준이나 관행이 발달할 수 있는 규모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국 e스포츠 산업에 대한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준정부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 측의 생각을 들어봤다.
Q. 현재 세계 e스포츠 시장은 북미가 37%, 중국이 15%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종주국인 우리나라는 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콘텐츠와 자금적 부분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다는 평가다. 한국 e스포츠 산업이 나아가야 될 방향성은 무엇인가?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함께, 구단들의 자립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유도해 전반적인 시장규모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첫 번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시장(혹은 산업)의 영속성이 보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번째 과제는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킬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 등 지금 대규모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종목들은 전세계 수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고, 이를 통해 게임사가 확보한 매출액 중 일부를 이스포츠에 재투자하면서 점차 시장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게임을 통해 전세계에서 거액의 매출액을 확보한 게임사가 이스포츠를 직접 리드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투자가 끊이지 않는 구조다. 킬러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기업들을 육성하는 방안은 주요 글로벌 게임회사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Q. 중국은 텐센트와 같은 거대 자본이, 북미와 유럽은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중심이 돼 앞 다투어 e스포츠에 투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투자에 인색할뿐더러 게임단을 홍보 목적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국, 미국, 우리나라는 e스포츠 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 전반의 시장형성 과정과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상이하다. 중국의 경우에는 철저히 국가가 주도한다. 축구와 같은 메이저 스포츠 뿐만 아니라 e스포츠의 경우에도 국가 주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원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이러한 지원에는 많은 인구수를 배경으로 해서, 충분히 거대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미국의 프로스포츠 시장은 강력한 내수시장과 이를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리는 자국민들, 그리고 고수익의 자국민들이 직접 돈을 써서 즐기는 취미인 '프로스포츠', 그래서 이러한 프로스포츠에 더 많은 광고를 하려고 하는 미국내 기업들 등으로 이미 수십년전부터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 있다. NHL, NBA, MLB 등 대부분의 미국 스포츠가 이에 해당된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미국 내 경기가 더욱 활성화 되면서 많은 돈이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 내 프로스포츠 구단은 흑자를 내는 자립 기업들이다. 그리고 e스포츠 또한 이러한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미국은 홍보효과를 노리고 구단을 운영하지 않는다. 충분히 자국 내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투자를 지속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투자, 홍보의 개념이 아니고 사업 운영의 개념으로 e스포츠를 바라보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투자가 가능하다.
Q.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더라도 규모에서 열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 e스포츠 산업만이 가져야 될 차별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e스포츠의 현재 차별점은 오랜 역사와 강력한 리그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이고, 축구로 치면 스페인/영국 리그가 우리나라다. 다만 투자 규모가 따라주지 않아서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단점일 텐데, 이러한 점들로부터 차별점을 파생시키면 된다.
가장 먼저, 이스포츠 인프라 자체는 우리나라가 가장 우월하다. 방송국, 인터넷 망, 상설 경기장 등이 그렇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진 않았어도 꾸준한 투자로 우수한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 블리자드에서 자사 게임의 이스포츠 방송을 중계하기 위한 경기장을 신설하여 개방했는데, 해당 경기장의 관객 규모가 450석 내외다. 이정도 규모는 우리나라 상암의 절반 수준이고, 강남 넥슨아레나보다 다소 큰 정도다. 상설 경기장의 규모는 우리나라가 매우 좋다. 이러한 인프라를 보다 확대해 더 강점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싶다.
▶e스포츠, 이제는 힘 모을 때
한국 e스포츠 시장은 풀어야 될 많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 남다른 인재와 인프라를 이용해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e스포츠 변방국’이 되는 것도 멀지 않았다.
정부와 협회 차원의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 선수들의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한국만의 ‘킬러 콘텐츠’ 게임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 마련 역시 요구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근 국내 게임회사 블루홀이 만든 ‘배틀 그라운드’는 글로벌 판매량 1200만 건, 동시 접속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희망을 쏘아 올렸다. e스포츠 전문 방송사인 OGN과 스트리밍사인 아프리카TV, 트위치TV 등은 배틀그라운드의 e스포츠화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연구 중에 있다. 황금소는 바로 우리 앞에 있다.
게임 업계는 문재인 정부가 게임과 e스포츠 산업에 우호적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인 정책은 빠졌다고 지적한다. 겉핥기식이 아니라 게임 산업과 e스포츠의 부흥을 외친 문 대통령의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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