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농구인 故김영희

Talon 2025. 5. 18. 01:20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김영희 님입니다~!

 

경남 울산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던 김영희 선수는 부산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배구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농구로 종목을 바꾸었고, 동주여자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장신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농구 명문 학교인 서울의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숭의여고를 졸업한 뒤에는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했습니다. 1983년 겨울 스포츠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점보 시리즈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당시 박찬숙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한국화장품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형숙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주역이었습니다.

숭의여고 2학년 때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으며, 은퇴할 때까지 대표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1980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상했습니다.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 여자 농구 대표팀으로 출전하였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이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조승연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구단이 김영희 선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상대 감독은 장신에 대한 전략 구상,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장신과 겨루는 개인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점보시리즈-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여자 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는 국내 무대에서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고 태평양화학의 센터 박찬숙과의 라이벌 대결로 눈길을 모았으나, 국제 대회에서는 느린 스피드 등의 몇가지 단점 때문에 주전으로 많이 뛰지는 못했습니다. 1984년 농구대잔치에서 베스트 5상을 수상했습니다.

1987년 훈련 중 쓰러진 뒤 말단비대증, 일명 거인병으로 투병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03년부터 그를 경기위원에 임명하여 병원비 일부를 지원해 왔습니다. 2009년 2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과 2021년 11월에는 유튜브의 '근황올림픽'을 통해 그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2023년 1월 31일 요양 생활 중 급성 호흡부전으로 인해 향년 6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키 205cm로 현재 공인된 국내 최장신 여성입니다.

 

이상으로 김영희 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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