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 선수 故김용운

Talon 2025. 6. 11. 09:20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김용운 선수입니다.

 

전주상고에 야구장학생으로 진학했지만 팀 동료와 주먹다짐을 한 끝에 중퇴한 후 고향에 돌아와 봉제공장에 취직했으며 뒷날 천호상업고등학교에 늦깎이 1학년으로 입학했으나 나이가 많아 제대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3학년 시절 군대 영장이 날아오자 故 김계현 전 한국전력 감독이 군 입대를 미룰 수 있도록 한국전력 실업팀에 입단시켜 줬고 이 과정에서 학교를 중퇴했으며 2년간 한전에서 선수로 뛴 뒤 육군 경리단에 입대했는데 군 제대를 앞둘 무렵 김계현 전 감독의 사망으로 실의에 빠졌지만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이어가며 79년 제대 후 다시 한전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1980년에 대통령배 실업리그 타격왕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1982년 KBO 리그의 출범에 따라 MBC 청룡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김용달, 김바위와 더불어 용 삼총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첫 해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였으나 연봉 협상에서 구단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1985년에 롯데의 심재원과 트레이드되어 한문연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마스크를 책임졌으며 1987년에는 최다 출장에 타율 0.278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즌 중에 전설의 15이닝 진검대결에서 최동원의 공을 캐치했던 포수였습니다.

1990년을 끝으로 은퇴하였습니다. 현역 은퇴 다음 해인 1991년 3월 그 동안 모았던 돈으로 부인에게 조그마한 옷 가게를 마련해 준 뒤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다음 해 롯데가 본인에게 스카우트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했고 이에 택시회사를 차렸으며 돈이 모이자 다음 해인 1993년 마산-창원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건 어린이 야구교실을 개설했지만 그나마 모은 돈을 다 까먹어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뒤, 1994년에 대만 프로 야구의 쥔궈 베어스에 배터리 코치로 부임, 2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6년 전기리그 도중부터 1997년 전기리그까지 싱농 불스의 감독으로 생활했으며 이후 골프 코치로 활동하다가 2005년 51번째 생일날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편, 1985년 본인의 맞트레이드 상대였던 심재원은 선수 시절 줄곧 담배를 많이 피운 탓인지 1993년 12월 3일 폐암 판정을 받았으며 결국 다음 해인 1994년 5월 19일 별세했습니다.

 

이상으로 김용운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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