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

[빨간날]"너도 탔어?"..페미코인, 공허한 거품일까

Talon 2018. 11. 30. 09:31

2018.11.25.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 이미지투데이

일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페미니즘이 사회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있다. 경제·사회적으로 페미니즘 트렌드는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수역 폭행사건' 등 일련의 젠더 이슈들로 남녀 성 대결이 촉발되며 페미니즘 트렌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너도 페미코인 타려고?"
지난 16일 유명 래퍼 산이가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발표하자 래퍼 제리케이가 이를 저격하는 디스곡 'NO YOU ARE NOT'을 내놓았다. 산이의 노랫말이 여성혐오를 조장한다는 것. 이에 산이는 18일 새벽 '6.9㎝'를 발표하며 제리케이를 두고 "인기 얻기 위해 열심히 채굴 '페미코인'"이라며 비난했다.

최근 '페미코인'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페미코인은 '페미니즘'과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합성어다. 지난해 가상화폐 광풍으로 비트코인 수익률이 크게 올라간 것을 빗대 페미니즘을 옹호로 사회적 인지도나 경제적 이익을 얻는 행위 등을 비꼬는 말이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비롯, 인터넷상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페미코인'이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생긴 것은 아니다. 시작은 올해 초 등장한 가상화폐 '페미코인'이다. 당시 개발자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페미니즘 확산을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미투 운동', '홍대 누드모델 사건' 등 굵직한 젠더 이슈가 충돌하면서 비하적 의미로 변했다.

/사진= UN 여성기구

특히 이수역 폭행사건 청원이 단 하루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다가 다음날 관련 영상 공개로 여론이 뒤집히면서 이를 조롱하는 뜻으로 페미코인이 더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올해 초 가상화폐 가치가 급락했듯 페미니즘도 가상화폐 투기처럼 '공허한 거품'이라는 것이다.

◇페미코인도 일종의 혐오?
이러한 페미코인은 비하를 넘어 일종의 혐오로까지 의미가 확산되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여성권과 관련한 발언을 한 유명인에게 여지 없이 '깊은 생각도 없으면서 페미니즘에 편승해 페미코인 타려 한다'는 '백 래시'가 쏟아진다. 페미니즘 문구로 알려진 'Girls can do anything'이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와 텀블러를 사용한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과 가수 선미가 받은 비난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문화계를 휩쓴 페미니즘 도서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가 결정되며 주인공을 맡게 된 배우 정유미도 최근 여지 없이 페미코인에 탑승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해당 영화 역시 촬영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평점 테러를 받으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사진제공= 뉴스1

비단 연예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비하의 의미로 페미코인이 쓰이고 있다. 대학생 윤모씨(25)는 "대화 중 여성권에 대해 말했는데 친구들이 '페미코인 타려하냐'고 말했다"며 "서로 감정이 상할까 싶어 화제를 돌렸다"고 토로했다. 최근 '탈코르셋' 영상으로 주목 받은 뷰티 유튜버 배리나가 책을 내고 강연을 하자 "페미코인 제대로 탔다"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페미니즘, 돈이 되니까?
페미코인이 꼭 부정적인 뜻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여성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주체로 등장하며 페미니즘의 경제적 영향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 과거 유행했던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처럼 '페미코인'도 주목받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촉발한 도서·출판 분야 페미니즘 강세가 대표적이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앞두고 있다. 10만부 판매도 힘든 최근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기록이다. 해당 소설에 힘입어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가 급증했고, 매년 평균 30여종 나오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지난해에는 두 배가 넘는 78종이 출간됐다. 출판 업계는 페미니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업들도 광고나 마케팅 측면에서 페미니즘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소비로 표현하는 '미닝아웃'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 광고업계 관계자는 "'펨버타이징'(Feminism+Advertising)이 등장할 만큼 최근 젠더 감수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 광고나 기업 관계자가 성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면 여지 없이 불매운동 등 매출에 직격타를 맞기도 한다. 최근 산이가 논란이 된 노래 '페미니스트'를 발표한 뒤 여성 스포츠의류 브랜드가 산이의 공연 섭외를 취소했다. 여성 고객들을 의식한 탓이다. 최근 한 치킨 프랜차이즈도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식의 광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현혜 양성평등진흥원 교수는 "페미니즘과 여성이 사회적·경제적 주체로 자리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담론이 이를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강해진다"며 "페미니즘과 평등에 대한 주장이 남성이나 여성의 특권을 빼았자는 것이 아닌 공정함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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