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e스포츠 열기가 뜨거웠던 2000년 초반 많은 팬은 프로게이머의 게임 플레이에 열광했다. 화려한 프로게이머들의 마우스 컨트롤에 현장에 있던 팬이나 TV로 시청하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e스포츠의 관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더해지는 데 바로 리그의 오프닝 타이틀이다.
초창기에는 오프닝 타이틀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온게임넷(현 OGN) 스타리그에서 처음 도입된 오프닝 타이틀은 프로게이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스타리그에서 나온 박정석의 모습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야기가 되고 있을 정도다.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롤챔스)가 출범된 이후 오프닝 타이틀은 더 중요해졌다. 2016년 롤챔스 스프링서는 리그 최연장자였던 '스코어' 고동빈과 '매드라이프' 홍민기를 주목했다. 이후에는 전 리그 우승팀, 우승 선수를 예우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중국도 오프닝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하는데 쓰는 비용은 억대가 넘어가는 건 이제 당연시됐다.
최근 마카오에서 열린 펍지 PAI 오프닝 타이틀과 LED 이미지가 화제가 됐다. 오프닝 타이틀서는 세밀하게 각 지역의 전통을 중요시했으며 LED 이미지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이런 펍지 오프닝과 이미지를 제작한 이는 VSPN 코리아 OAP(On Air Promotion)팀의 한소현 실장과 이호준 씨다.
e스포츠에서 오프닝 타이틀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해졌다. 최근 만난 VSPN OAP팀의 한소현 실장과 이호준씨는 e스포츠 오프닝 타이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야마(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의미하는 일본어)' 컷이라고 했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오프닝 핵심은 "팬들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가"라는 것이다.
한소현 : 전체적으로 크게 봤을 때는 VSPN이 가진 인프라, 콘텐츠를 꾸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깊게 들어가면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브랜딩을 해주고 오프닝 타이틀, 프로모션, 패키지 디자인적인 요소, 영상 기획, 구성 편집 등을 담당하는 부서다.
- 그렇다면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한소현 : 처음 직장은 OGN에서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게임보다 촬영, 편집에만 관심 있었다. 일을 배우자는 생각으로 이 업계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2013년 LCK 결승전을 봤는데 팬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소름 돋았다. 진짜 내가 만든 영상이 나왔을 때 팬들이 환호성을 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이쪽 일에 관심이 생겼다. 게임도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LoL뿐만 아니라 리그 들어가는 게임을 즐겼다. 뒤에는 오버워치도 많이 했다. 지금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못 놓을 일이 됐다. (웃음)
이호준 : 이쪽에 있지 않았다. 방송 디자인을 많이 했다. 뉴스 타이틀 제작 등을 담당하다가 적성이 안 맞았다. 개인적으로 한소현 실장님과 알고 있었는데, VSPN 코리아가 설립되면서 디자이너를 구하더라. 연차가 있었고 재미없는 일은 하기 싫었다. 그래서 게임 방송을 보니까 만드는 콘텐츠가 재미있고 다양했다. 게임을 좋아해서 해보자고 합류했다. 생각보다 일은 힘들지만 재미있다.
- 게임방송은 초창기에는 프로게이머가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리그 타이틀 등 부수적으로 중요해졌다. 리그 승패는 오프닝에 달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호준 : 물론 디자이너로서 당연히 오프닝은 시작을 알리는 거라 우리 입장서는 중요하다. 그래픽뿐만 아니라 게임 내용도 중요하다.
한소현 : 항상 팬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게임이 주가 되고 선수 플레이도 중요하지만 팬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 해설진 등 출연자의 콘텐츠를 기다리게 된다. 그게 대표적인 게 오프닝 타이틀이다. 아이돌을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다른 뮤직비디오, 음반을 갖고 나타나길 기다린다. 팬으로서 이 선수들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고, 다른 콘셉트의 멋있는 것도 보고 싶다. 그거 때문에 기다리는 것도 있다.
- e스포츠 리그 오프닝 제작을 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한소현 : '야마' 컷이라고 하는데 선수 촬영한 걸 봤을 때 '우와~'라는 반응이 나오면 성공한 거다. 다른 하나는 내용으로 이 시즌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를 담았는지를 보고 있다. 둘 중에 하나면 성공했다고 본다.
이호준 : 트위치 등 웹상으로 하는 방송 채팅창을 보면 시청자들이 공감한다는 내용 중에 대표적인 게 '컬러'다. 국가적인 부분도 있고 팬톤 컬러가 될 수 있다. 최근에 열린 마카오 PAI 대회 영상을 보면 '이건 마카오 리그다. 아시아 적인 느낌이 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것들이 '오프닝이 잘됐다, 안됐다'를 가늠할 수 있을 거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e스포츠 오프닝 타이틀은 무엇인가?
한소현 : LCK 오프닝 중에 '페이커'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게 있다. 왕좌에 빗대어서 만든 거다. 그거는 '야마' 컷이 멋있게도 나왔고, '페이커'의 스토리를 한 장면으로 표현했다. 한 컷으로 다 끝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팬들도 많은 환호를 했다.
이호준 : 광안리에서 한 스타리그가 기억에 남는다. 예전 게임리그를 많이 챙겨봤다. 지난해 롤드컵 결승 오프닝 중에 AR로 다 연결된 게 있었는데 기술력이 대단했다.
한소현 : 아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역대 챔피언이 나온 뒤 트로피를 안고 떨어지는 건데 멋있었다. 스타리그는 박정석이 헤드셋을 쓴 게 기억 남는다.(2007 온게임넷 스타리그 시즌1) 오프닝의 시초였다. 그거 때문에 오프닝 타이틀이 중요해졌고 업계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
- OAP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한소현 : 대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션 그래픽 등 촬영, 편집에 관심 있어서 혼자 공부하는 일반인들이 많다. 그중에 게임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하면 좋을 거다. 왜냐하면 패키지 영상을 만들 때 인 게임의 패키지까지 디자인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리그, 게임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어느 때 어떤 정보, 그래픽을 보여줄지 연구를 해야 한다. 디자인이 부족하더라도 e스포츠 등 리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면 좋다.
이호준 :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자기만의 디자인 방향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은 많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프로그램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이 봐야 한다. 과거 제작물을 보고 이 분야에 지원했으면 좋겠다. 영상물을 보고 '이건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원했으면 한다.
- VSPN 코리아에서 제작한 오프닝 타이틀 중에 괜찮다고 생각한 건 무엇인가
한소현 : 마카오에서 열린 PAI 대회 영상이다. (웃음) 기획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아시아, 마카오적인 걸 표현할지' 여러 가지를 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펍지 리그를 보면 오프닝을 만들면 게임에 치우쳐 있다. 게임 트레일러인지 아니면 오프닝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번에는 3D로 모델링을 하고 어떻게 아시아적으로 입힐지 고민했다. 디자이너님이 각 나라의 특색을 입혔다. 한국은 하회탈, 중국은 중국 스타일에 맞게 용 문양이 나온다. 우리는 나름대로 예술을 하려고 넣었다. 팬들이 모를 줄 알았는데 다 알더라.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시아 인비테이셔널에 맞게 잘 표현했다.
이호준 : 처음으로 제작을 했고 애정을 갖고 열심히 했다. 많은 걸 넣으려고 했다. 저한테는 첫 시작이기에 이번 대회가 기억에 남는다. 리그를 보는데 재미있더라.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괜찮아지고 있다. 앞으로 발전할 만한 부분, 보완해서 추가해야 할 부분도 보였다. 그런 걸 추구하면 다음 리그서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PAI 오프닝 타이틀을 평가하자면
한소현 : 우리가 만들었지만, LED 영상이 멋있었다. (웃음) 현장에 가서 봤는데 연출을 넘어서는 퀄리티를 뽑아냈다. 우승했을 때 등 다양한 상황서 나왔는데 멋있었다. 팬들이 사진을 많이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작했는데 많은 사람이 영상 앞에서 촬영했다. 또 팀별로 프로모션 영상을 팬 아트 느낌으로 제작했는데 멋있었다.
- 개인적으로 봤을 때 중국 리그는 오프닝에 어느 정도 투자하는지 궁금하다
한소현 : 중국에 3년 정도 있었는데 가장 큰 건 자금적인 부분이다. 중국서는 선수 촬영을 하면 억대 금액을 사용한다. 선수가 불편하지 않는 게 우선이며 촬영도 고퀄리티가 나와야 한다. 한국은 기획은 좋은데 촬영할 때 선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중에 가장 크게 느낀 건 e스포츠 전체적으로 많이 뒤처지는 거 같다. 중국이 모방한다고 해도 그 이상을 뛰어넘는다. 오프닝 타이틀도 처음에는 'LCK, 스타리그를 따라 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다양한 걸 시도한다. 그런데 중국 문화 담은 걸 많이 한다. 누가 봐도 '어 이거 중국 거다, 중국 리그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한국적인 것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약간 애매한 느낌이다. 중국은 자기 국가에 맞는 브랜딩을 잘한다.
이호준 : 자본 차이가 크다. 같은 오프닝이라도 여러 명이 하면 다르다.
- 중국은 디자인 작업하는데 몇 명이 붙는가?
한소현 : 중국은 디자인, 모션, 3D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하나 오프닝을 촬영하면 5~10명이 붙는다.
- '2018 펍지 모바일 스타 챌린지' 영상도 제작했다고 들었다
한소현 : 두바이 사막에 가서 촬영했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서 공개가 됐는데 후원사였던 삼성전자 관계자가 좋다고 했다.
- 직원 입장서 VSPN 코리아의 매력은 무엇인가?
한소현 :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여러 사람의 목표를 이뤄줄 수 있는 회사다. 이 업계에서 하고 싶었던 거. 중국에 있으면서 생각한 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업계를 일으키고 싶었다. 몇 개 프로젝트는 안 했지만 같이 해나가는 거 보면 사람, 회사가 좋다. e스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으로도 키울 수 있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오프닝 영상은 무엇인지
이호준 : 내용이 있는 시네마 적인 영상을 원한다. e스포츠의 시네마적인 영상. e스포츠가 거쳐온 역사를 그래픽으로 만들고 싶다. 임요환, '쌈장' 이기석 등을 좋아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영상물을 제작하길 원한다.
한소현 : 큰 건 바라지 않는다. 중국에 있으면서 느꼈던 건데 선수 오프닝은 멋있는 것만 나온다. 예전에 데마시아컵 오프닝을 작업할 때 느낀 게 선수들이 리그를 하면서 오프닝도 촬영한다. 그 와중에 데마시아컵이 있어서 쉬지를 못한다. 이걸 멋있는 게 아니며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콘셉트를 '선수들의 휴식'으로 잡았다. 당시 저도 즐거웠고 선수들도 좋아했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수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프닝을 만들고 싶다.
- 앞으로 오프닝 타이틀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한소현 : 오프닝 타이틀에 국한된 게 아니라 리그 하나를 전체적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펍지 리그가 각 지역으로 많이 진행되다 보니 어디서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게임 리그를 하나 만든다면 지역마다 우리가 디자인을 브랜딩을 해주고 싶다.
이호준 : 게임 틀에 벗어나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으면 한다. 그래픽, 실사가 합성된 스토리도 만들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호준 :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애정을 갖고 바라봤으면 한다. 그러면 VSPN 코리아에서 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한소현 : 팀이 만들어진 지 몇 개월 안 됐다. 진짜 고생하고 있다. PAI도 외주가 아닌 우리가 전부 준비했다. 연차 상관없이 밤을 새워서 만들었는데 잘 나왔다. 팀원들에게 감사하며 항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김기호 VSPN 코리아 지사장님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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