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레전더리스 배승익 대표 인터뷰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중계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선수들의 프로필 사진이 담긴 형형색색의 ‘네모 박스’다. 중계 화면 곳곳에 보이는 이것은 ‘LCK 레전더리스(레전더리스)’가 서비스하는 디지털 선수 카드다.
디지털 선수 카드는 ‘페이커(이상혁)’, ‘데프트(김혁규)’와 같은 LCK 선수들의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등을 결합해 제작된다. 팬들은 선수들의 시즌별 능력치가 기록된 카드나, 특정 경기에 해당하는 카드를 레전더리스 사이트에서 구매해 소장할 수 있다. 구매는 고유 화폐인 LC(레전더리스 캐시)를 이용해 진행한다. 가상화폐로 거래되는 NFT(대체불가능토큰)와는 거리가 있다. 소유한 카드는 마켓플레이스 등 2차 마켓에서 다른 이용자와 거래할 수 있다.
레전더리스는 심화되는 LCK의 수익성 악화를 타개할 상품 중 하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LCK는 2021년 프랜차이즈 도입 이후 과도한 선수 몸값 등으로 인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디지털 선수 카드는 이미 성공 사례가 있다. 레전더리스의 모티브이기도 한 미국프로농구(NBA)의 NFT 카드 서비스 ‘탑샷(TopShot)’이다. 경기 장면 NFT를 파는 탑샷은 선수 카드 수집에 익숙한 북미 시장에서 열풍을 불렀다. 2021년 기준 35만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와 10만명 이상의 구매 사용자를 보유했고, 매출은 하루 3700만 달러에 달했다. 르브론 제임스가 2020년 2월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하는 순간을 담은 NFT는 2021년 4월 38만 7600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해외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LCK를 대상으로 한 레전더리스에 기대감이 모이는 이유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롤파크에서 배승익 주식회사 레전더리스 대표를 만나 LCK 레전더리스 서비스의 방향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배 대표는 “디지털 콜렉터블을 통해 팬들에게 LCK를 보는 것 이상의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배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주식회사 레전더리스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제는 경력 11년 차의 콘텐츠 회사다. 기본적으로 IP(지식재산)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오랜 기간 게임 구단 사업과 게임 웹툰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LCK 기반의 디지털 콜렉터블 서비스인 레전더리스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를 거친 게임사 출신이다. 게임 웹툰 전문 사이트인 ‘배틀코믹스’를 운영하고 있고, 샌드박스 게이밍의 전신인 ‘팀 배틀코믹스’라는 LCK 게임단도 운영했다. 2018년 담원 게이밍(현 디플러스 기아)이 LCK로 승격할 때 매각했다. LCK 혹은 여러 게임단과 10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 또는 인연을 이어왔다.
레전더리스, 그러니까 디지털 콜렉터블 서비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앞서 말씀드렸던 인연들 덕분에 라이엇 관계자, 여러 게임단과 네트워크가 많이 쌓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세 가지 측면에서 레전더리스를 준비하게 됐다. 첫 번째로 저는 LCK의 ‘빅(Big) 팬’이다. 취미가 리그 경기를 보는 거고, 최소 하이라이트는 꼭 챙겨본다. 팬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다가, 문득 경기 시청 외에 팬들의 경험을 확장하고 다양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수익성이다. 리그 영속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2~3년 전부터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다들 그때부터 적자였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분명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업가는 많지만 저희처럼 LCK와 그 생태계를 잘 이해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에 고민하다가 NBA의 탑샷이라는 성공 사례에 착안해 본격적으로 리그와 소통했다.
언급한 것처럼 레전더리스는 탑샷과 매우 유사하다.
많은 영향을 주고 또 참고 사례가 된 것은 명확하다. 탑샷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서비스다. 성공적인 포스트 무버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건 맞다. 가장 큰 차이는 탑샷은 NFT(대체불가능토큰)다. 크립토커런시(가상화폐) 문법으로 접근을 했다.
LCK 레전더리스는 크립토 결제가 없다. 저희는 레전더리스를 IP 기반의 팬덤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정의한다. 페이커 카드를 구매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개념이 탑샷의 문법이라면 레전더리스는 ‘나는 페이커가 너무 좋아’, ‘페이커가 23년도에 플레이했던 챔피언 카드들을 전부 가져보고 싶어’ 등 연예인 팬 카드와 같이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저희 주변에는 이미 카드 수집가들이 많다. 당장 어린 친구들이 모으는 포켓몬 스티거가 좋은 예다. 오프라인에서 일상화 된 카드 수집을 디지털로 옮기는 서비스를 시작한 거다. 어찌 보면 생소할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국내외 디즈니나 FIFA 등 큰 IP를 갖고 있는 회사들이 수집 문화를 디지털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레전더리스도 그 노력 중 하나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실물 카드와 비교했을 때 디지털 카드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디지털 카드라고 실물 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항상 사진을 찍고 인화를 해서 앨범에 보관해야만 의미가 있었다. 분실의 위험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어디서나 쉽게 휴대폰 앨범을 통해 사진을 보며 추억을 즐긴다.
디지털 카드만이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에 포함된 영상이다. 실물 카드는 왜 이 카드의 능력치가 높은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지만, 디지털 카드는 영상을 통해 수십 년이 지나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찐’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중에는 앱을 통해 친구에게 카드를 자랑하는 등 여러 기능들을 디지털의 재미에 맞게 추가하는 것이 목표다.
레전더리스에 퀘스트 등 수집형 게임 요소를 넣은 것도 수집욕을 자극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맞다. 팬덤을 겨냥한 디지털 수집 카드이지만, 결국 우리의 상당 부분은 LoL 혹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돈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에 해당하는 즐거움을 줘야한다. 카드를 구매하면 롤파크 입장 n회권 등을 제공하는 효용성 중심의 가치보다는, 수집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싶었다.
현재 공개된 퀘스트들에는 내러티브를 많이 넣었다. 일례로 브리온 같은 경우에는 브리온의 LCK 신고식이라는 퀘스트가 있다. ‘신인팀 농심 레드포스를 잡고 첫 승리를 가져온 브리온의 원년 멤버 카드를 모으세요’라는 퀘스트다. 브리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감이 높지 않을 수 없다. T1은 첫 번째 퀘스트 이름이 ‘커다란 벽’이다. 과거 해설진이 T1의 상체 3인방을 두고 ‘커다란 벽’이라고 언급한 것에 착안했다. 리그나 T1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카드를 수집하고 싶게 만든 방식이다.
보상도 있다. 레전더리스의 메인 커뮤니티인 ‘디스코드’에 칭호가 생기고, 다른 이용자가 칭호를 클릭하면 컬렉션을 볼 수 있는 형태다. 해당 팀과 관련한 팩도 랜덤으로 선물한다.
다음 시즌부터는 포켓몬스터의 도감과 같은 수집 퀘스트도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서비스 중인 카드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선수 카드는 총 4가지 등급으로 나눠진다. 제일 낮은 등급은 ‘커먼 카드’다. ‘레어’와 ‘슈퍼 레어’, ‘레전더리’ 순이다. 이런 등급은 오버럴이라는 점수로 결정된다. 피지컬이나 라인전, 멘탈, 팀워크 등의 기준에 따라 전문가들의 평가와 더불어 선수들의 스코어를 매긴다.
기본적으로 카드를 얻기 위해선 랜덤 박스인 팩을 까야 한다. ‘스탠다드’ 팩은 커먼 카드만 5장이 나오는 팩이다. ‘엘리트’ 팩은 레어 2개와 커먼 3개가 들어있다. 프리미엄 팩은 슈퍼 레어 1장과 커먼 3장이 나오는 식이다. 단 경기 후 발매되는 POG 카드는 직접 구매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팩들이 출시할 예정이다. 특정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단 팩 같은 것 말이다. 지난해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DRX를 기념한 선수 팩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페이커 카드 같은 인기 카드를 뽑기 위해선 가챠를 계속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어떤 선수가 나오는지는 오픈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팩 위주로 구매를 하면 된다. 또는 마켓플레이스에서 내가 원하는 카드를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LCK 카드는 어디에 보관되나?
일단은 저희 서버에 기록이 된다. 향후에는 다르게 소장할 수 있는 방식을 계획 중이다. 다만 IP 홀더인 라이엇과의 협의도 필요하다. 서버 외부에서 카드를 소유하는 방안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소위 저희가 망하면 구매한 카드가 다 날아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외부로 오픈해야 한다. 그러나 외부에 오픈하면 NFT 커뮤니티에 확산하는 등 자산성으로만 여겨질 우려가 있다. 저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감안해 정책을 세울 생각이다.
카드로 발생한 수익은 게임단에 어떻게 배분되나?
당연히 IP 홀더인 LCK에게 매출이 간다. 구체적으로 말씀은 못 드리지만 LCK 매출의 50%가 팀들에게 배분된다.
LCK 시청자들이 정말 많지만, 이것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수요 예측은 어떻게 했나?
LCK 트래픽이 다 구매층으로 연결됐다면 모든 팀들이 다 흑자로 전환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뉴욕 양키스와 같은 팀이 됐을 거다. 매우 보수적으로 보고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다. ‘스노우볼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수집 카드에 대한 의아한 반응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200만 명에 달하는 LCK 시청자 중 1% 내외의 시청자를 초기 타깃으로 잡았다. 레전더리스 서비스는 다년 계약이다. 다년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 한 단계 한 단계 가설들을 검증해 가면서 궁극적으로는 LCK를 좋아하는 팬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누구나 자기의 로스터 카드를 갖고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기 성과는 어떤가?
라이엇과 긴밀한 협의를 해야 해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다. 적당한 타이밍에 하려고 한다. 아직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되었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리그에서 중계나 SNS를 통해 서비스 홍보를 잘 도와주고 있어서 인지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엠비션(강찬용)’이나 ‘울프(이재완)’ 등 인플루언서나 현직 선수들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온다. 단적인 예로 케리아 선수가 유료 광고가 아닌데도 VIP 팩을 구매했다. 케리아 선수가 자신의 카드 등급이 높다면서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것이 문화처럼 자리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물론 지나치게 고가인 것 같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카드가 부족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계속 발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마케팅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든다. 마케팅 방향성이 궁금하다.
적합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로란트’도 처음에 한국 들어왔었을 때는 차가운 시선이었지만 이제는 ‘서든어택’을 거의 잡아먹을 정도로 성장했다. 리그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게임이니, 여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생각이다. 현재 레전더리스 치어풀 등으로 자연스럽게 중계를 통해 노출하고 있다. 현재 마련된 작은 커뮤니티를 탄탄하게 빌드업해 이용자를 모으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조만간 롤파크에서 시범 삼아 상위 콜렉터들이 가진 카드를 3D 홀로그램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향후 로드맵이 있다면 간략하게라도 설명 부탁한다.
현재 레전더리스는 베타 버전이다. 최우선은 수집을 어떻게 재밌게 만드느냐인 것 같다. 커뮤니티를 보면 ‘누가 세체원이냐’, ‘아시안게임 로스터는 누구냐’ 등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수와 로스터를 갖고 토론한다. 이를 카드 수집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 레전더리스 서비스다. LCK 카드를 소유한 이용자들이 모인 디스코드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즐기고, 그런 이용자를 불려 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피파 온라인’ 등 스포츠 게임에서 능력치 좋은 선수 카드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17 앰비션’, ‘13 페이커’ 카드를 보유한 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방향을 꿈꾸고 있다. 라이엇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수집한 카드를 통해 팀을 경영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다.
아울러 회사의 입장에선 LCK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발로란트’ 등 다른 IP나 다른 엔터테인먼트로 디지털 카드 수집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스포츠와는 관계가 없는 창업가였지만 게임단을 만들었다. 또 디지털 콜렉터블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금 리그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어떤 스포츠가 이런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프로야구의 빅팬이지만, 향후 10년을 내다보면 나는 e스포츠의 성장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LCK)가 LPL(중극 프로리그)의 선수 공급처가 되지 않고 지금의 위상을 계속 가져갈 수 있는 데 조금이라도 더 기여하고 싶다. ‘재미있다’, ‘디지털 콜렉터블 덕에 LCK가 잘 돌아가고 있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 출처 :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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