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유시’ 이민형 인터뷰
7일 서울 강남구 T1 사옥에서 ‘구마유시’ 이민형을 만났다. 지난달 20일 2023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결승전에서 젠지에 져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친 이후 줄곧 휴식을 취해왔다는 그는 “잠시나마 게임을 잊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휴식에만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불편할 수도 있는, 하지만 꼭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던졌다.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지는 제리 숙련도에 대한 생각, 지난해부터 이어진 스프링 시즌과 서머 시즌 활약의 차이…그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고, 소속팀 T1에 대한 애정과 잔류의지, 그러기 위한 선결 과제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했다.
-준우승으로 마무리한 서머 시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어땠나.
“다사다난한 시즌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도 있었다. 앞선 스프링 시즌과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가 쉬는 기간도 없이 바로 서머 시즌이 이어지니까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전했다.
그래도 결국 준우승으로 마무리하고, 월드 챔피언십에도 직행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던 시즌으로 총평하고 싶다. 이번 시즌의 경험이 향후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8경기에서 1승7패를 하는 동안 심적으로 고통이 심했을 듯하다. 어떻게 이겨냈나.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잘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심리상담도 도움이 됐다. 독서와 산책으로 기분 전환을 해보기도 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타인의 일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잘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 깊더라.”
-플레이오프에선 팀이 제 궤도에 올라왔다. 선전할 거란 자신이 있었나.
“다 이길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준비 과정에서 KT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보니 젠지전 준비가 부족했다. 앞선 플레이오프 경기도,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도 KT를 만난 뒤 젠지와 붙는 상황이 나왔다. 당장 앞의 경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KT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상대로 T1을 골라 화제가 됐다. 지목당할 걸 예상했나.
“KT가 우리를 고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KT가 우리를 고르지 않은 세계가 있다면 아마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다르지 않을까. 동시에 (지목당하지 않아도) 언젠간 만날 상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KT전에 앞서서 ‘리헨즈’ 손시우 선수의 핵심 챔피언들을 밴하는 전략과 원거리 딜러 간의 구도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두 차례 젠지전 패배가 아쉬울 듯하다. 무엇이 부족했나.
“KT를 앞서 한 차례 이기긴 했지만,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 다시 만나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KT전 준비에 비교적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했고, 자연스레 젠지전 준비 시간이 줄어들었다. 돌이켜보면 밴픽에 아쉬움도 남는다. 3세트에선 내가 실수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했다면 이겼을 게임이다.”
-이 선수는 스프링 시즌에 강하고 서머 시즌에 약하단 평가가 있다. 동의하나.
“여름에 더 못한다는 의견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닌데, 서머 시즌이 체력적으로 더 힘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휴식 기간이 충분해야 잘하는 편인 거 같다. 휴식 없이 계속 달리면 지쳐버린다. 스프링 시즌이나 월드 챔피언십은 개막 전에 휴식 기간이 충분하고 길다. 그래서 내가 상대적으로 좋은 기량을 발휘하는 것 같다.
반면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면 서머 시즌은 휴식 없이 바로 임하게 된다. 그게 내 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는 몰라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는 느낌을 받긴 한다. 나는 쉬면서 생각을 깨끗하게 비우고, 다시 정신 무장을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앞선 대회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거두고서 바로 시즌에 돌입하니까 힘든 점이 있었다.”
-챔피언 폭, 특히 제리 숙련도에 대한 의문도 꼬리표처럼 붙는다.
“제리를 이번 결승전 전까지도 솔로 랭크에서 많이 연습했다. 대회에서 충분히 꺼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연습했다. 내가 유달리 잘하는 챔피언이 있듯 반대로 숙련도가 아쉬운 챔피언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팀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숙련도를 끌어 올리고, 준비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챔피언마다 숙련도가 다르다. 본인은 어떤 챔피언을 왜 잘 다룬다고 보나.
“나는 사거리가 길고, 먼저 포지션을 잡고서 카이팅을 하는 챔피언들을 잘하는 것 같다. 인파이팅에 치중하는, 사거리가 짧은 챔피언들은 아쉬운 면이 있는 것 같지만…단순히 그렇게 규정하기에는 내가 루시안이나 자야를 잘한다. 챔피언 스타일에 따라 숙련도가 나뉜다기보다는, 각각의 챔피언마다 숙련도가 나뉜다고 본다.”
-이 같은 지적을 이 선수는 매일같이 보고 들을 것이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A원챔이다’ ‘B원챔이다’라고 말한다. 매 시즌 원챔인 챔피언이 바뀐다. 스프링 시즌엔 아펠리오스 원챔, 루시안 원챔이라고 했고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에선 징크스 원챔이라고 했다. 서머 시즌엔 자야 원챔이라고 하더라. 못한다고 하는 챔피언도 계속 바뀐다. 이런 평가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그런 반응을 일부러 찾아보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월드 챔피언십이 내달 개막한다. 이번 월드 챔피언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또 T1과의 계약이 올해로 끝나는 선수들이 많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월드 챔피언십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 하는 얘기가 내가 올해를 끝으로 T1에서 나간다는 뜻은 아니다.(웃음) 그래도 어쩌면 이 멤버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즌이니까… 꼭 우승하고 싶다.”
-이적시장 취재를 하다 보면 ‘구마유시는 T1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되더라.
“처음 T1에 들어온 이유는 모기업이 대기업이어서, 내가 좋아하던 김정균 감독님이 있어서였다. T1은 최고의 팀이니까,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단했다. 지금은 팀에 정이 많이 들었다. 여기에 팬들과도, 팀원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이 환경에 익숙해져 버렸고, 다른 팀에 가는 건 어색해져 버렸다.”
-그렇다면 첫 번째 목표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앞으로도 T1과 함께하는 것인가.
“우선 다가오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앞으로도 T1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팀과 선수의 관계는 사적인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T1은 최고의 팀이다. 그리고 내가 최고의 선수여야만 최고의 팀에 남을 수 있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T1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팀원 3명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들의 컨디션, 아시안게임과 월드 챔피언십 간 패치 버전 차이의 괴리감 등이 걱정되기는 한다. 3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충분한 휴식 없이 월드 챔피언십에 나서는 만큼 컨디션 관리가 중요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팀원들의 아시안게임 출전은 축하할 일이다. 긍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어서, 아쉽게만 생각하진 않는다.”
-올해 LCK의 경쟁력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중국 LPL이 작년보다 조금 더 강해졌단 느낌은 받는다.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전하면 T1이고, 월드 챔피언십하면 T1이니까. 정규 리그와 국제대회는 환경이 많이 다르다. 약 1달이란 짧은 시간 동안 노련하게 체력관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불태우는 게 중요하다.”
-작년에 한 끗 차이로 챔피언 자리를 놓쳤다. 지난해 대회로부터 배운 점이 있다면.
“항상 대회가 끝나면 밴픽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작년 대회가 끝났을 땐 내가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서, 자신감을 가지고서 밴픽 단계부터 임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승전 4세트에서 바루스 상대로 칼리스타를 골랐다. 아펠리오스도 준비했는데…라인전을 조금 더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만약 아펠리오스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더라. 이번엔 더 열심히, 더 잘해보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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