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2.
[시장은 작고, 아이돌은 많다. 잠재적 팬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정확히 저격하는 일은 새롭게 탄생하는 아이돌 그룹에게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러블리즈와 레드벨벳, 여자친구, DAY6, 세븐틴, 아이콘은 각각 다른 무기로 데뷔 초반부터 고유한 팬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뉴 키즈’들이다. 이 여섯 팀이 대표하는 취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아이즈]가 분석했다. 각각의 그룹에 빠져드는 ‘결정적 입구’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덧붙였다.]
러블리즈, 순정만화의 향수
데뷔 당시, 그리고 이번 컴백에서 러블리즈가 각각 발라드곡‘어제처럼 굿나잇’과‘작별하나’를 타이틀곡에 앞서 공개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밝고 힘차게 출발하기 마련인 신인 걸 그룹의 특성상 의아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블리즈의 다른 면면과 함께 살펴보면 의도는 선명해진다. 부피감이 거의 없는 멤버들의 마른 몸과 발목까지 올라오는 새하얀 양말, 단정한 블라우스, 나풀거리는 스커트와 늘 바람에 날리는 기다란 머리카락 등 청순의 정석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러블리즈는 그야말로 순정만화의 정지된 한 페이지다. 화사한 파스텔톤으로 채색됐지만 어딘가 비일상적으로 연출된 학교에서 무표정하게 가위바위보를 하고 얼굴에 붙은 캔디를 떼어 먹거나(‘Candy Jelly Love’), 가만히 엎드려 있다 숨을 후 불어 꽃잎을 날리고(‘Hi~’), 오래된 책을 조심스레 펼쳐보는 등(‘작별하나’) 이들의 뮤직비디오에선 소녀다운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고운 소녀들을 그린 그림, 찍어 모아둔 스크랩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사랑의 설렘을 노래하지만 혼잣말처럼 느껴지는 ‘Candy Jelly Love’, 힘겹게 고백하는 과정을 그렸지만 엔딩은 알 수 없는 ‘Hi~’의 가사 등까지 더하면 러블리즈가 불러내려 하는 것은 순정만화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순정만화를 향한 향수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러블리즈 다이어리]를 통해 활기찬 멤버들의 모습을 꾸준히 노출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소녀의 이미지를 더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걸 그룹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걷기를 자처한 러블리즈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정적 입구: ‘Hi~’의 뮤직비디오. 쓸쓸하고 애달파서 더 아름다운 소녀의 장면들을 채집해둔 이 영상이 마음에 든다면, 좀처럼 요즘 소녀 같지 않은 러블리즈의 매력에서 빠져 나오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데뷔 당시, 그리고 이번 컴백에서 러블리즈가 각각 발라드곡‘어제처럼 굿나잇’과‘작별하나’를 타이틀곡에 앞서 공개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밝고 힘차게 출발하기 마련인 신인 걸 그룹의 특성상 의아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블리즈의 다른 면면과 함께 살펴보면 의도는 선명해진다. 부피감이 거의 없는 멤버들의 마른 몸과 발목까지 올라오는 새하얀 양말, 단정한 블라우스, 나풀거리는 스커트와 늘 바람에 날리는 기다란 머리카락 등 청순의 정석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러블리즈는 그야말로 순정만화의 정지된 한 페이지다. 화사한 파스텔톤으로 채색됐지만 어딘가 비일상적으로 연출된 학교에서 무표정하게 가위바위보를 하고 얼굴에 붙은 캔디를 떼어 먹거나(‘Candy Jelly Love’), 가만히 엎드려 있다 숨을 후 불어 꽃잎을 날리고(‘Hi~’), 오래된 책을 조심스레 펼쳐보는 등(‘작별하나’) 이들의 뮤직비디오에선 소녀다운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고운 소녀들을 그린 그림, 찍어 모아둔 스크랩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사랑의 설렘을 노래하지만 혼잣말처럼 느껴지는 ‘Candy Jelly Love’, 힘겹게 고백하는 과정을 그렸지만 엔딩은 알 수 없는 ‘Hi~’의 가사 등까지 더하면 러블리즈가 불러내려 하는 것은 순정만화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순정만화를 향한 향수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러블리즈 다이어리]를 통해 활기찬 멤버들의 모습을 꾸준히 노출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소녀의 이미지를 더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걸 그룹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걷기를 자처한 러블리즈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정적 입구: ‘Hi~’의 뮤직비디오. 쓸쓸하고 애달파서 더 아름다운 소녀의 장면들을 채집해둔 이 영상이 마음에 든다면, 좀처럼 요즘 소녀 같지 않은 러블리즈의 매력에서 빠져 나오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레드벨벳, 행복하고 이상한 힙스터 나라
음악과 비주얼을 겹쳐 그린다면, 레드벨벳은 언제나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들이다. 이들은 ‘레드’ 콘셉트를 통해 꾸준히 들떠 있는 분위기를 드러내고 컬러풀한 이미지로 극대화한다. 자칫 촌스럽게 비춰질 수도 있는 전략이지만 현재 트렌드보다 몇 발자국 앞선, 다시 말해 힙해 보이게 연출된 이미지는 식상함을 완전히 덜어낸다. 정글 같은 세트와 소녀들의 모습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던‘행복’과 미국 하이틴 같은 분위기를 담아낸‘Ice Cream Cake’는 물론, [말괄량이 삐삐]를 레퍼런스 삼아 장난감 같은 공장의 마네킹처럼 멤버들을 변신시킨‘dumb dumb’의 티저와 뮤직비디오까지, 한 컷 한 컷을 캡처하면 콘셉트가 있는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풍의 화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심지어 이러한 이미지들은 기본적으로 화사하고 예쁘지만, 한편으로는 괴이하고 위험한 무드를 덧붙이며 사랑스럽되 만만하지 않은 레드벨벳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결국 이들의 비주얼 전략은 새로운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위 힙스터 취향을 저격한다 할 만하며, [The Red] 앨범의 티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것 또한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난해한 이미지, 자기중심적인 가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회사 소속의 f(x)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f(x)가 ‘NU 예삐오’, ‘Electric Shock’처럼 무슨 뜻인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자신들만의 언어를 보여주었다면, 레드벨벳은 최소한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른다.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와는 관계없이 나는 나라서 즐겁다는 ‘행복’, 사랑의 반짝임과 짜릿함을 표현한 ‘Ice Cream Cake’, 그리고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소녀의 마음을 담은 ‘dumb dumb’ 모두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는 게 어렵지 않다. 스타일링은 마니악하게, 음악은 좀 더 직관적으로. 어쩌면 레드벨벳은 SM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대범한 실험작이자 야심작일지도 모르겠다.
결정적 입구: 다섯 차례에 걸쳐 공개된‘dumb dumb’의 티저 영상. 인스타그램에 맞게 정사각형 비율로 편집된 티저 영상은 대부분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들을 따온 것이었고, 삐삐처럼 꾸민 소녀들과 쨍한 색감, 괴상한 이미지의 조합은 그 자체로 레드벨벳의 독특한 포지션을 설명해주었다.
여자친구, 언제나 씩씩한 일본 아이돌
출발은 소녀시대와 에이핑크였다.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입고 머리 꼭대기까지 힘차게 발차기를 하거나, 다소 복고적인 멜로디의 후렴구가 먼저 치고 나오는‘유리구슬’은 여자친구가 앞선 걸 그룹들의 유산에 너무 기대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작 이들의 뮤직비디오가 가리킨 것은 항상 발랄하고 씩씩하며 사이가 좋은, 평범한 여자아이들에 가까운 모닝구 무스메 같은 일본 걸 그룹 특유의 정서였다. 한국 여고생의 체육복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부르마에 가까운 의상을 입은 채 뜀틀을 넘는 소녀들의 모습, 서로 수다를 떨며 도시락을 까먹거나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장난을 치는 장면 등은 남성들의 판타지에 가까운 여고생의 이미지이기도 했다.‘오늘부터 우리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대의상은 일본풍 세라복과 유사하고,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 [케이온]과 같은 소녀들의 일상물처럼 연출되어 있다. 한적한 시골로 그들만의 휴가를 떠나고, 나란히 앉아 수박을 먹거나 햇살이 뽀얗게 내려앉은 헌책방에서 함께 깔깔거리는 모습은 굳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들에게 귀엽고 건강한 소녀들의 캐릭터를 덧칠했다. 여기에 더해 무대 위에서의 뜀틀 안무, 팔다리를 크게 쭉쭉 뻗고 돌리는 동작 등은 수줍은 사랑을 용감하게 고백하는 ‘오늘부터 우리는’의 가사와 연결되며 여자친구의 얼굴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예쁘고 가녀리지만, 결코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소녀들을 응원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다만 상당 부분 남성들의 익숙한 성적 판타지에 기대고 있다는 점, 종종 순진무구한 소녀들을 훔쳐보는 것 같은 뮤직비디오의 연출 등은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일본 아이돌의 공식에서 태어난 여자친구가 앞으로 자신들만의 공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정적 입구: 이미 SNS와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진라디오 공개방송 ‘직캠’. 연약해 보이는 소녀들이 몇 번이나 넘어져가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 끝까지 보고 있기가 괴로울 정도지만, 씩씩하고 건강한 여자친구의 캐릭터만큼은 의도치 않게 훨씬 더 단단해졌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여자친구가 자신들의 서사를 스스로 쓰기 시작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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