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장문석 선수입니다~!
경남상고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동아대학교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습니다. 1997년 LG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해에 정경배에게 연타석 만루홈런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11월 KIA 타이거즈로 손상정, 한규식과 함께 마해영, 최상덕, 서동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2008년 이후에는 마운드에 많이 서지 못하고 2009년 10월에 방출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대신초등학교
대동중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동아대학교
1997년 LG 트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며 상당한 기대를 모았으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2000년에 부진했는데, 두산과 LG의 플레이오프에 등판해서 김용수가 다 잡아놓은 경기를 불을 지르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선발로서는 한계를 보였지만 불펜으로는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여, LG가 6668587667이라는 비밀번호를 찍기 전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경험하였던 2002년에는 이동현, 이상훈과 함께 든든한 승리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의 기록은 무려 10승 3패 4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1.60. 참고로 이 사람, 59경기에서 100이닝 넘게 소화했습니다. 이동현과 신윤호에 비해서 해당 선수가 묻혀서 그렇지 원조 살려조라고 봐조 무방한 수준.
그러나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또한 부상에 줄곧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2005 시즌이 끝난 후 손상정, 한규식과 함께 마해영, 서동욱, 최상덕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여, KIA 이적 후의 성적은 4년간 1승 3패 15세이브. 이 기록은 전부 2006년 한 해에만 기록한 것이며, 2007년과 2009년에는 1군 경기 출전 기록이 없습니다. 2008년에는 승패 없이 패전처리조 격으로만 나와 승, 패, 세이브, 홀드 중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2009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으로 들어와 재기하기 위해 SK 이적을 시도하였으나, 무릎 부상이 재발해 결국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은퇴 후 모교인 부경고등학교의 코치를 지냈고, 이후 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선수 본인이 대량실점하며 큰 인상을 남긴 경기가 꽤 있습니다.
입단 첫 해인 1997년 어린이날 3연전의 두번째 경기인 5월 4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등판했다가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중 첫번째를 헌납했고, 1⅓이닝 7피안타 10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 때 LG의 투수력은 가히 막장을 보여 주었던 것이, 삼성과의 3연전 중 홈런 17개를 포함 무려 49점을 내 주면서 시리즈를 스윕당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던 9회초 투아웃에서 김용수로부터 교체되어 등판하였으나 안경현에게 동점홈런을 허용하고, 그리고 연장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홈런까지 맞으며 LG의 21세기 고난의 서막을 열어제꼈습니다. 또한 2005년 5월 26일 롯데전에서는 무려 1이닝 7실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 경기는 결국 엄청난 난타전이 된 끝에 롯데가 13:11로 승리. 이 경기는 526 대첩으로 기록되었으며, 엘 꼴라시코의 원조격 경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장문석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