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

'신비 프로젝트'로 13살에 데뷔, 2년 만에 정상 오른 그녀

Talon 2021. 1. 29. 10:30

2021.01.28.

 

[응답하라 1990년대] 소녀가수에서 여성 솔로 레전드로 성장한 보아

 

지난 2007년 JYP 박진영이 야심차게 데뷔시킨 걸그룹 원더걸스가 정규1집 타이틀곡 < Tell Me >로 전국을 강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원더걸스 열풍의 일등공신은 단연 선미와 함께 막내라인에 있던 '만두' 소희였다. 소희는 뛰어난 노래실력도, 출중한 춤실력도, 현란한 랩실력도 없었지만 무대에서 깜찍한 표정과 필살기 '어머나'를 앞세워 전국에 있는 삼촌들을 설레게 했다. 당시 소희는 중학교 3학년의 어린 학생이었다.

원더걸스의 대성공 이후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걸그룹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멤버들이 속속 등장했다. 2008년 카라의 새 멤버로 합류했던 강지영이나 2009년에 나란히 데뷔한 2NE1의 공민지와 포미닛의 권소현, 2011년에 데뷔한 에이핑크의 오하영 등이 대표적이다. 2016년과 2018년에 방송된 <프로듀스 101>과 <프로듀스 48>에서 나란히 1등을 차지해 I.O.I와 아이즈원의 센터가 된 멤버도 만15세였던 전소미와 만14세였던 장원영이었다. 

이들은 모두 '그룹'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대 경험 부족이나 실수 등을 메워줄 '언니'들이 있었고 대중들도 막내의 실수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솔로 가수의 경우는 다르다. 무대에서의 실수나 경험부족,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만13세의 어린 나이에 솔로로 데뷔해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한·일 양국에서 정상에 등극한 소녀 가수가 있었다. 바로 '아시아의 별' 보아가 그 주인공이다.

실망스런 국내데뷔, 오리콘차트 1위로 대반전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하던 보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를 따라 춤대회에 나갔다가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에게 직접 발탁돼 SM의 연습생이 됐다. 보아의 남다른 재능을 눈 여겨 본 이수만 회장은 보아의 데뷔 과정을 '신비프로젝트'라 이름 붙이고 맞춤형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당시 SM에서 보아의 트레이닝을 위해 투자한 돈은 무려 수 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 졌다.

그렇게 2년 반의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보아는 2000년 8월 25일 '만13세의 춤추는 신비소녀'로 불리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H.O.T와 S.E.S, 신화의 히트곡들을 만들었던 SM의 메인프로듀서 유영진이 직접 작사·작곡한 데뷔곡 < ID:Peace B >는 인터넷을 통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한 노래다. 하지만 데뷔 당시 보아의 첫 인상은 그저 <스타킹>에나 출연할 법한 '춤 잘 추는 꼬마 소녀'에 불과했다.

데뷔곡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보아는 조금 이르게 후속곡 < SARA >로 활동했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보아는 2001년 < ID: PEACE B >와 < SARA >의 영어 버전과 중국어 버전이 들어 있는 1.5집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언니의 남자친구를 차지하고 싶다는 발칙한 상상을 담은 노래 < Don't Start now >로 잠시 활동했지만 역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1집과 1.5집 활동을 통해 국내에서 만족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 보아는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보아의 일본 활동은 국내 데뷔 전부터 이미 계획된 것으로 2000년대 SM의 중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90년대 후반 S.E.S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을 자양분 삼아 철저한 준비 끝에 일본시장을 공략한 보아는 4번째 싱글 < Listen to My Heart >로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은 K-POP 열풍으로 인해 BTS나 블랙핑크 같은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보아의 오리콘 차트 정복은 지상파 뉴스에 보도될 만큼 이례적이고 놀라운 성과였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소녀 가수가 더 큰 시장인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 국내에서도 보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성공은 2002년 4월에 발매된 국내 2집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달라진 보아의 위상, 2집 앨범 대박으로 연결

보아는 2000년에 발표했던 데뷔 앨범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일본 오리콘차트 1위라는 후광을 얻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덕분에 보아는 2집 앨범 컴백 당시 지상파의 주요 순위 프로램에서 인기가수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스페셜 무대'를 보장 받았다. 그리고 1년 만에 돌아온 보아는 인터넷 ID를 자랑하던 2000년 8월의 꼬마소녀와는 전혀 다른 아우라를 내뿜는 솔로 아티스트가 돼 있었다.

골반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화려한 안무와 한층 안정된 라이브, 그리고 무대에서의 여유까지 갖춘 보아는 타이틀곡 < No.1 >으로 단숨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원더걸스의 소희에게 필살기 '어머나'가 있었다면 보아의 < No.1 >에는 '퐈이눨뤼'라는 필살기가 있었다. '퐈이널뤼'는 지금도 보아를 패러디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문구이기도 하다.

보아의 인기는 후속곡 < My Sweetie >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SM의 음악적 대부 유영진이 만든 < My Sweetie >는 꼬마소녀 보아의 깜찍함을 강조한 노래로 < No.1 >만큼의 폭발력은 없었지만 '나 언젠가는 그대 맘을 사로잡는 여자가 되고 싶어 나를 기다려 줘요'라는 당돌한 가사로 남성팬들을 설레게 했다. 만약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없었다면 < My Sweetie > 역시 < No.1 > 못지 않게 사랑 받는 곡이 될 수 있었다.

해외 활동을 목표로 한 보아답게 2집 앨범은 영어로 된 제목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한글로 된 제목의 노래는 단 2곡이 있는데 한글제목의 두 곡은 모두 H.O.T의 메인보컬이었던 강타가 만들었다. 비트가 강한 댄스곡 <난(Beat It)>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홀로서기를 다짐하는 여성의 외침을 담은 강렬한 노래다. 반대로 짝사랑하는 여자의 슬픔을 노래한 발라드 <늘>은 슬픈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5명의 외국인 작곡가가 참여한 < Happiness Lies >는 바랑둥이 남자친구에 대한 배신감을 노래한 댄스곡으로 보아의 변화무쌍한 음색을 들을 수 있다. 팬들을 위해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 Listen to my Hear >의 한국어 버전을 보너스트랙으로 수록하는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앨범에 실린 보아 최초의 자작곡 < Realize > 역시 대중적으론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아와 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곡이다.

보아 2집의 숨은 명곡이자 이 앨범의 '히든카드' 같은 노래는 10번 트랙에 들어 있는 < My Ginie >다. 떠난 연인이 <알라딘>에 나오는 요술 램프 속의 수호천사처럼 나를 지켜 준다는 내용의 발라드 넘버다. 사실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하고 꿈 속을 허우적거리는 한심한 내용의 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아는 성숙한 보컬을 통해 청승 맞을 수 있는 가사를 따뜻하게 표현해내며 보컬리스트로서 큰 성장을 보였다.

보아는 2002년 한 해에만 일본에서 5장의 싱글 앨범과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국내에서도 한 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스패셜 앨범을 선보이는 등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보아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자 국내에서는 '제2의 보아'를 꿈꾸며 소녀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보아는 이미 '넘사벽'이 돼 있었고 제2의 보아를 꿈꾸던 후발주자들은 대부분 '아류' 취급을 받은 채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일 양국 넘나들며 최고의 여성 솔로 가수로 군림

보아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5월에는 정확히 1년 만에 3집 앨범을 발표해 <아틀란티스 소녀>로 또 한 번 국내 차트를 휩쓸었고 일본에서도 < Shine we are >, < Double >, < Rock with you > 같은 싱글을 차례로 발표했다. 보아는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고교 진학까지 포기했다. 지금이야 아이돌 활동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는 가수들이 비교적 흔해졌지만 그 시절 고교진학 포기는 매우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보아는 2004년에 발표한 4집 < My name >을 통해 국내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달렸다. 보아는 타이틀곡 < My name >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녀가수' 이미지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특히 파워풀하면서도 여성스런 < My name >의 안무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잘 만들어진 여성 솔로가수 안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카라, 소녀시대의 윤아, 트와이스 등 세대를 뛰어넘는 많은 후배가수들이 < My Name >을 커버했다.

보아는 2005년에도 오랜만에 유영진과 손을 잡고 5집 < Girls on Top >을 발표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넘버원 여성 솔로가수'의 자리에 올랐다.  2005년 7월에는 '아시아 스타 보아의 성공'이라는 제목으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했고 영국 BBC에서는 '세계에 한국을 알릴 새 얼굴'로 보아를 취재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는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만찬에서 특별 공연을 하기도 했다. 

보아는 미지의 시장이었던 일본에서 정상에 오르며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길을 터준 '한류의 선구자'이자 가수로서의 성공에 학력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낸 주인공이다. 실제로 소녀시대의 티파니와 f(x)의 루나, 시스타의 다솜, 시크릿의 한선화, 레드벨벳의 아이린과 예리, 러블리즈의 케이, 오마이걸의 유아 등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든 많은 후배 가수들이 보아의 무대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많은 여가수들의 롤모델이 된 '거물' 보아

많은 이들이 각 분야에서 재능 있는 인재를 보면 '천재'라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묶어 버리지만 사실 사람들이 보는 화려함 뒤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땀과 노력, 그리고 남모를 아픔이 있다. 오늘날 보아가 만들어낸 화려한 기록과 성과들 역시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평범한 10대 소녀의 생활을 포기하고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강행군을 소화하며 이룬 결과물들이다.

그랬기에 4분도 채 안 되는 곡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 보아가 수만 관객 앞에서 3시간짜리 단독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 '대가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말로 인터뷰하는 것도 수줍고 어색해 하던 꼬마 소녀는 이제 영어, 일본어 인터뷰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보아는 지난 2015년 정규 8집에서는 앨범 수록곡 전체의 작사·작곡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년 8월 데뷔 20주년이 된 보아는 12월 정규 10집 앨범을 발표했다. 물론 지금은 SM 내에서도 직책이 '이사'일 정도로 후배들이 많아져 새 앨범이 나와도 한창 활동하는 가수들에 비하면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한다. 하지만 데뷔 2년 만에 한·일 양국에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보아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된 후배들에게나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이미 '레전드'로 불리는 위대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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