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인터뷰] 게임 음악 고수 ESTi, e스포츠에 발 디딘 이유는…

Talon 2023. 2. 6. 15:10

난관의 연속이었던 선발전부터 시작된 DRX의 놀라운 롤드컵 도전은 T1과의 풀세트 접전 끝 새롭게 리뉴얼된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며, LCK는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의 리그로써 자리잡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알린 2023 시즌, 스프링 스플릿의 개막과 함께 공개된 오프닝 영상은 ‘베릴’ 조건희가 LCK 로고 모양의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10개 팀의 선수들을 웅장한 음악과 함께 보여줬다. 특히 ‘페이커’ 이상혁을 태양, ‘데프트’ 김혁규를 달로 표현하며 두 사람이 교차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국내외 많은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프닝의 음악을 제작한 사람으로 예상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1997년부터 게임 음악 및 영상 전문 제작업체인 에스티메이트를 이끌고 있는 ‘ESTi’ 박진배 대표가 그 주인공으로, 리그 개막 후 박진배 대표는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채널을 통해 해당 곡이 자신임을 공개하며 곡의 제목이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임도 함께 알렸다.

 

■ 게임 음악 전문가, e스포츠 관심이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다

“그동안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나 즈롱게임즈의 ‘아르케랜드’의 OST에 참여했고, 앞으로 공개될 ‘스텔라 블레이드’나 ‘마비노기 모바일’ 등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돌마스터’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으며, ‘디제이맥스’ 시리즈 파트너십도 이어가고 있지만 저보다는 후임 스태프 분들을 소개하는 쪽으로 관여하는 중입니다.”

25년 이상 꾸준히 게임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박진배 대표는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로 지금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알려오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으로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e스포츠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주요 종목 게임과의 인연이 없었기에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저도 ‘스타크래프트’를 조금씩 즐겼던 세대이긴 합니다만 대세가 ‘리그 오브 레전드’ 쪽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거리가 생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엔터테인먼트 쪽에 관여하면서 유키카라는 가수를 담당할 때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 유명 선수분들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서 경기를 조금씩 챙겨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소소한 관계를 유지하던 박진배 대표가 덜컥 LCK와 협업을 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11주년을 맞아 ‘원점으로의 회귀’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시즌을 준비하던 LCK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한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LCK 제작 관계자 분들 중 게임 방송국에 몸을 담으셨던 분들이 계시다 보니 제 음악을 방송에 사용하면서 익숙하셨던 분들도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께서 연락을 주셔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조하신 부분이 ‘초심’이었고 덕분에 저도 제 게임 음악 제작에 있어서의 ‘초심’에 대해 생각하며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 ‘언브레이커블’ 콘셉트는 ‘초심’, 그리고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음악’

제작을 시작한 박진배 대표가 가장 먼저 진행했던 것은 그동안 LCK 방송에서 오프닝으로 주로 사용되던 곡에 대한 조사였다고 한다. 한 동안 서브컬처 쪽에 특화된 음악을 선보여왔던 박진배 대표는 최근 흐름을 고집하기보다는 LCK 등 e스포츠의 오프닝에서 팝송이나 프로덕션용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 만큼 기존의 흐름에서 큰 거부감이 없이 스며드는 것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경력 초기의 MMORPG용 곡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방향성이 잡혔다고 소개했다.

“영상 콘티가 이미 나와있는 시점이었는데 제작 측에서 강렬한 모습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고 절제된 세련미를 살리는 쪽으로 영상을 만들고 보컬 역시 내지르기보다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쪽으로 가는 것을 원하셨기에 선수가 돋보일 수 있도록 조금 더 사운드트랙에 가까운 쪽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곡보다 먼저 나왔던 가사는 지난해 롤드컵 영상을 보며 썼는데, ‘언브레이커블’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후렴구는 곡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이어 박진배 대표는 곡을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로 한국에서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DJ로 활동중인 샘 카터와 역시 에스티메이트 소속의 ‘베닉스(Benicx)’를 이야기했으며 이 중 샘 카터는 단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사를 다듬는 동시에 영어 가사를 소화하는 보컬 로서의 역할로 활약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베닉스’는 곡에 오케스트라의 느낌을 더하며 곡을 한 층 ‘웅장하게 보이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기자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테일즈 위버’ 등 과거 작업물의 느낌도 난다”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이러한 ‘웅장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다고 평가했다.

“2주라는 짧은 작업 기간 끝에 곡이 완성됐기에 아쉬움도 있지만 안정적인 곡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이맥스인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데프트’ 김혁규 선수가 교차하는 장면의 경우 해와 달이라는 콘셉트만 듣고 상상해서 만들었는데, 가사에서 두 선수 모두를 담고 싶었지만 화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적이 흐릿해져 결국 무난하게 후렴구를 반복하는 것으로 조정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외에도 곡이 시작되면서 ‘베릴’ 조건희가 LCK 로고 모양의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키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효과에 맞춰 사운드가 추가될 것으로 생각해 비워 뒀는데 노래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결정을 내리셔서 그대로 사용됐습니다. 그 부분이 다소 허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영상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잘 조합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더 많은 사람들에 음악 들려주는 도전 나설 것

한편 SNS를 통해 직접 곡의 제작 사실을 발표하며 많은 팬들 사이에 ESTi라는 이름이 회자된 것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e스포츠에서도 이 이름을 볼 수 있게 되어 놀랍다.”라는 반응부터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다.”라는 반응, 그리고 “ESTi가 누구냐?”라는 반응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20년 이상 업계 일을 해왔음에도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며 폭넓은 일을 하지 못했던 점에 반성하게 됐다는 것.

“‘언브레이커블’을 제작하며 그 동안의 쟁쟁한 프로덕션 음악 및 유명 팝송들과 경쟁하게 되는 만큼 신인 작곡가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래도 e스포츠 팬 분들 중에도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e스포츠에 대한 거리감이 좁혀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LCK의 새로운 역사를 선보이는 동시에 자신 역시도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쓰게 됐다는 박진배 대표는 일 자체는 지금까지 해오던 작업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장르와 분야에 있어 조금 더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수년 전 대중가요 쪽에 관여하면서부터 서브컬처 게이머들만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기억에 남는 장면 뒤에 ‘ESTi’라는 이름이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 생각하며 장르와 분야에 상관없이 꾸준히 좋은 음악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이번 스프링 스플릿 오프닝 ‘언브레이커블’로 e스포츠 팬 여러 분들께도 인사를 드릴 기회를 갖게 됐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꾸준히 모습 보이며 저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25년 이상의 경력자이면서도 아직까지도 더 많은 도전을 꿈꾼다는 박진배 대표는 e스포츠 팬 들과의 첫 인사를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희망했다.

 

-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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