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하는 나의 노력이 우리 선수들에게 과분한 것 같다."
이정효 광주 FC 감독은 25일 오후 7시 30분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1부) 2024 19라운드 광주-수원 FC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장에서 격정을 토로했다. 광주는 볼 점유율은 6대4 정도로 우세했지만 마무리가 부족했고, 정승원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엇비슷한 레벨의 팀간 대결. 광주는 중상위권으로 올라갈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이 감독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그는 경기 후 "광주 원정 팬들이 많이 와주셨는데, 응원이 과분할 정도로 '의미 없는 축구'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선수들도 거품이 많이 껴있다. 지난해 3위는 기적이었음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고 팬분들도 내려 놓으셨음 좋겠다. 다시는 우리가 3위를 할 수 있을까"라며 격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실 이 감독이 이런 워딩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건 하루이틀은 아니다. 지난해 안익수 전 감독이 이끌던 FC 서울을 상대로 격노해 "저런 축구를 하는 팀에 져서 분하다"라거나, 뒤로 라인을 물러 승리를 쟁취한 전북 현대 전 감독(단 페트레스쿠)의 연봉을 물었던 멘트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현장 기자와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처럼 이 감독의 화법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어중간하게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받아 적어 퍼트리는 미디어는 쓸거리가 있어서 좋고, 고만고만한 감독 멘트에 식상해하는 팬들은 열광한다.
개인적으로도 모호하게 에두르는 화법보다는 쏙쏙 들어오는 화법을 선호한다. 대화의 수신자, 즉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메시지가 꽂히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연차가 쌓이면서 메시지를 받기보단 주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지만, 이건 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요즘 같은 시엔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이유를 명쾌하게 밝혀줘야 뭐가 잘못됐는지도 납득을 하고 서로 뒤탈이 없다.
사실 화법은 개인 고유의 영역이다. 이걸 갖고 누가 뭐라할 순 없다. 조제 모리뉴 전 AS 로마 감독은 직설적이고, 호셉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그보다 간접적이다. 둘을 경험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를 통해 자기를 유령인간 취급했던 과르디올라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다. 반면 뜨거운 눈물을 흘린 모리뉴에게는 충성심을 표출했다. 모리뉴는 자기 새끼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해 주고 챙기면서 조직원들에게 충성심을 득템 하는 유형이다. 어떤 상황도 포용력 있게 아우르는 지도자 유형은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다. 그의 자서전 <카를로 안첼로티: 카를레토 리더십>에는 위아래를 폭넓게 아우르는 그의 넉넉함과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다만 원만한 인간관계의 힘, 시쳇말로 '꽌시'를 잘 활용하는 안첼로티는 다소 정치적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 감독 화법은 '모리뉴식'에 가깝다. 화끈하고 직설적이다. 뒤는 보지 않는 듯하며, 언론을 잘 활용한다. 그렇지만 화법만 같지 성향은 다르다. 모리뉴는 정치적인 면모가 강하다. 이 감독은 어떨 때는 극단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모든 극단엔 반작용이 따르는 법. 메시지가 시원하고 잘 꽂히는 대신, 듣기에 따라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모든 걸 감안했더라면, 반대로 메시지의 전달력과 이에 따른 바이럴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 감독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라는 건 축구판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미지의 축구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시쳇말로 축구에 미친 독종이다. 아랫사람 의견도 선입견 없이 받아 들이며, 그래서 지난 시즌 우승권 바로 아래인 리그 3위라는 성적을 거둬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획득했다.
이 감독은 노력파 지도자다. 실력으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냈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단은 해산하겠지만, 그는 남아 새벽까지 왜 졌는지 고민하고 분석한다. "오늘 경기하면서 내가 이렇게 많은 걸 짊어질 필요가 있나 싶다. 카페 가서 새벽 3~4시까지 노력하는 게 선수들에게 과분한 것 같다. 나도 12시면 그만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여유 있게 선수와 구단에 맞춰보겠다." 이 감독이 그간 해왔던 고군분투와 상대적으로 따라주지 않는 아웃풋에 대한 허탈감이 묻어났다. 걷고 있는 길이 대단히 외로울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그랬다. 고독해도 걸어야 하는 게 리더의 길이라고. 어떤 조직이든 혼자의 힘으로 끌고 가긴 어렵다. 건강한 리더십의 구현을 위해선 리더를 떠받치는 소수의 조력자와 다수의 팔로워가 필수적이다. 시즌은 길고 경기는 많은데 매 라운드를 균질하게 끌고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 K리그를 숱하게 제패했던 모 감독은 우승팀도 서너 차례는 고비가 온다고 했다. 그럴 땐 어떤 기점마다 자극과 전환점이 필요한데, 이 감독은 그 시기를 현시점 즈음으로 직감한 듯하다. 이대로 패배가 쌓인다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니 그런 위기의식의 발로가 이해는 간다.
그래도 광주는 아직 갈 길이 먼 팀이다. 지난해 3위를 했기에 더 나은 순위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겠지만, 그게 일종의 조급함과 채찍질로 발현되어선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지나친 허심탄회함이 때로는 독이 된다. 이 감독은 선수단의 자극과 동기부여를 의도했겠지만, 솔직함이 과했다는 생각이다. 어떤 멘트에서는 구성원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팀원에 대한 존중은 필수다. 리더의 고군분투를 '과분함'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선수들의 속내는 과연 어떨까. 더군다나 이 감독은 경기 직후 선수들에게 "기사를 통해 보라"라며 선수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론을 통해 보길 의도했다. 이러한 경로의 메시지 전달법이 과연 선수들에게 자극으로 다가갈지, 아니면 오히려 반발심만 부추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선수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요즘 선수는 감독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이나 존경심을 비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존중심' 정도는 보여야 한다. 어떤 측면에선 리더십 못지않게 중요한 게 팔로우십이다. 다만 두 마인드십의 상호작용은 건강한 선순환이어야 한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고단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뤄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최선을 해야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오롯이 리더의 몫이다. 식상하고 원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조직의 리더는 조직과 연관된 모든 것에 책임을 갖고 있다. 부하 직원이 제 입맛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도 가혹하지만 리더의 책임이다.
세상에 선수단에 억지 춘향식 사기 진즉을 하고 싶어하는 감독은 없다.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필요가 있을지 회의감이 들 것이다. 그렇다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열기가 뻗치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의 자극은 필요하겠지만, 횟수가 잦으면 통할 것도 먹히지 않는다. 이 감독은 앞날이 창창하다. 실력은 물론, 톡톡 튀는 스타성까지 겸비했기에 K리그 나아가 한국 축구의 블루칩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감독 생활을 하면서 지금보다 더한 난관을 숱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그가 시행착오와 배움을 통해 지혜와 운영의 묘를 찾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 출처 : 베스트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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