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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가 말하는 한화생명의 2024시즌

Talon 2024. 12. 21. 23:00

절반의 성공을 거둔 해였다. 한화생명 e스포츠는 올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우승으로 팀 창단 이후 첫 우승트로피 획득의 숙원을 이뤘다. 여름이 달콤한 계절이었다면 가을은 쓴맛의 계절이었다. LoL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중국 비리비리 게이밍(BLG)에 지면서 조기 귀국길에 올랐다.

 

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한화생명 연습실 캠프원에서 최인규 감독을 만났다. 한화생명의 지휘봉을 잡은 지 올해로 2년 차. 지난겨울 팀이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면서 했던 고민들, 서머 시즌 성공의 비결과 월즈 8강 탈락의 패인 그리고 올해 겪고 느낀 점을 토대로 3년 차에는 어떤 변화를 줄 계획인지 들어봤다.

 

-월즈 이후 휴식기를 가졌다. 한화생명의 2024년을 총평한다면.
“올해 월즈에서 거둔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보니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마냥 마음 편히 쉬지는 못했다. 올해 팀이 세운 업적과 경기력을 고려한다면 분명 만족스러운 점도 있다. 하지만 LoL e스포츠 팀의 궁극적 목표는 월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쉬움이 남는 한 해다.”

 

-본격적인 2024시즌 시작 전 고민했던 점이 있다면.
“주전 5인 중 3인이 바뀌어서 서로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선수마다 플레이스타일이 달랐다. 선수들끼리 서로의 플레이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프링 시즌에 접어들면서 서로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선수단의 멘탈 관리와 인게임 피드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피넛’ 한왕호나 ‘도란’ 최현준은 경력도 길고 여러 팀에서 활동해 봐서 그런지 새로운 스타일에 빠르게 적응했다. ‘딜라이트’ 유환중도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외향적이어서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스프링 시즌 기자실 인터뷰에서도 팀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여러 차례 얘기했다.
“5개의 생각이 1개로 통일되지 않았다. 스프링 시즌 초반 경기력이 안 좋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때는 오더의 통일을 가장 강조했다. ‘오더가 하나 나오면 따르자’고 했다. 그런 플레이엔 장단점이 있다. 정규 리그엔 장점이 나왔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처럼 높은 무대에서는 선수들이 유동적인 판단을 내리고 가장 좋은 선택지를 찾아야 한다. 정해뒀던 대로 플레이하는 방식의 단점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스프링 시즌은 3위로 마쳤다. 결승진출전에서 T1에 졌다.
“T1이 우리보다 더 잘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두 팀은 앞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한 차례 붙었다. 그날 T1이 우리에게 진 뒤로 우리의 약점과 본인들이 보완해야 할 점을 더 잘 찾았다. 반면 우리는 전략의 기조를 유지했다. ‘2라운드 때 이 방식으로 이겼으니까 결승진출전에서도 이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 컸던 게 패인이다.
사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급격한 메타 변화가 한 번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패치에 잘 적응하지는 못했다. 라인 스와프로 한 번 세트승을 따내긴 했지만 그때는 한 번 통하는 묘수에 불과했지 두 번, 세 번 쓸 전략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우스’ 최우제가 꺼낸 챔피언들의 상대법이 더 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스프링 시즌 종료 후 했던 고민은.
“스프링 시즌을 치르며 우리는 메타에 영향을 많이 받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단 역시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서머 시즌을 준비할 땐 다양한 시도에 초점을 맞췄다. 연습이든 실전이든 도전적인 밴픽의 빈도를 늘렸다. 시즌 초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둘지언정 장기적으로 본다면 반드시 팀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사실 시즌 초까지도 메타 적응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런데 메타가 바뀌면서 이번엔 오히려 수혜를 받았다.”

 

-미드에 원거리 AD 챔피언을 패치하는 이른바 ‘쌍포 메타’가 오자 팀의 경기력이 상승했다.
“쌍포 메타는 조합을 구성하는 난도가 낮다. 대신 조합 특성상 운영이 어렵다. 상위 3개 팀(젠지·T1·한화생명)은 운영적으로 강점이 있다. 그래서 게임 후반에 빛을 발하는 조합을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쌍포 조합은 파워 그래프가 중후반에 우상향한다. 게임 양상에 따라 우리가 강한 타이밍과 약한 타이밍을 확실하게 캐치하고 오브젝트를 설정하는 게 핵심이다. 연습을 통해 메타의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 우리만의 약속된 플레이들을 만들었다. 바텀 듀오의 라인전이 워낙 강력한 것도 도움이 됐다. 최소 5대 5 이상의 구도를 만들어줬다. 다른 팀들보다 오브젝트를 하나 더 챙길 힘이 됐다.”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고 했다. 당장 떠오르는 건 쉬바나다.
“스크림에서 많은 팀이 쉬바나를 연습했다. 우리는 쉬바나로 거의 모든 스크림을 이겼다. 파훼하는 팀이 안 나오더라. 연습에서는 선수들이 더 공격적, 적극적이다. 쉬바나라는 챔피언은 오브젝트 챙기기와 레벨링이 강점인데 앞선 스크림에선 라인 개입으로도 성과를 봤었다. 라인 개입을 통한 득점이 없을 때 챔피언의 파워 그래프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했는데 그런 점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밴픽의 최종 결정권자는 나다. 한왕호가 밴픽에서 어필을 세게 하는 타입이 아닌데 그날(KT전)은 쉬바나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밴픽을 짜는 코치진으로서도 충분히 꺼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정규 리그 순위에 큰 영향이 없는 경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밴픽은 더 틀에 갇힐 거로 봤다.”


-스프링 시즌 정글 노틸러스, 서머 시즌 결승전 아이번·아지르 조합도 화제였다.
“정글 노틸러스는 세나·노틸러스 조합이 한창 유행할 때 준비했다. 레드 사이드 팀이 노틸러스에 무조건 밴 카드를 투자해야만 했던 상황으로 기억한다. 노틸러스를 밴하지 않고 정글러로 쓰는 건 어떨까 싶어서 준비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
아이번·아지르는 서머 시즌 플레이오프 시작 전에 했던 젠지와의 스크림에서 비롯됐다. 쌍포 메타였고 미드 챔피언이 많이 밴 되는 밴픽 구도가 나왔다. ‘쵸비’ 정지훈이 아지르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양쪽 미드가 약한 조합이 구성된다면 오히려 (AD 챔피언보다) 아지르가 좋다는 결론을 냈다. 플레이오프 시기의 특성상 연습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근거가 빈약한 데이터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번·아지르 조합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밴픽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결과로 증명해내는 게 우리의 업 아닌가.”

 

-서머 시즌 결승진출전에서 다시 한번 T1을 만났다.
“그때 T1 상대로는 자신이 있었다. T1은 당시 메타에서 어려움을 겪는 게 보였다. 반면 우리는 그 메타에 강점이 있는 상태였다. 역으로 선수들이 자신감에 취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거나 필요 이상으로 고양되는 일이 없게끔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결승전에서 젠지를 만났다.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다.
“젠지가 어떤 걸 잘하는지는 앞서 졌던 승자조 대결 때부터 알고 있었다. 가령 트리스타나·직스를 같이 안 준다든지. 결승전에서도 비슷하게 젠지의 필살기를 견제하려 했다. 동시에 우리가 레드 사이드에서 쓸 수 있는 깜짝 밴픽을 준비했다. 메타에서 크게 벗어나는 챔피언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팀들이 많이 쓰는 조합도 아니었다. 젠지의 강점을 빼앗기 위해 역으로 트리스타나를 가져오는 밴픽도 준비했다. 선수들이 플레이를 잘 해내 주기도 했다.
LoL이라는 게임은 지면서 배우는 게 이기면서 배우는 것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한화생명은 스프링 시즌을 부족한 성적으로 마무리해서 서머 시즌 우승에 대한 갈증이 그 누구보다도 심했다. 서머 시즌의 우리는 잃을 게 없는 도전자였다. 반면 젠지는 왕좌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양 팀의 심리 차이도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거로 본다.”

-2·3세트를 내리 내줘서 1대 2로 핀치에 몰리기도 했다.
“2세트 때 아이번·아지르 조합을 꺼냈다가 졌고 3세트에서 요네를 필두로한 조합을 썼다가 졌다. 쌍포까지 포함해 3개의 조합을 꺼낸 건데 결국 1세트 쌍포만 이긴 셈이었다. 사실 잭스·요네 조합은 내부적으로 쌍포보다 더 신뢰한, 승률도 더 높은 필살기였다. 그런데 4세트를 앞두고 요네 조합을 포기하고 쌍포로 돌아가자고 의견이 모였다. 4세트에서 트리스타나로 이겼으니 결과적으로는 승부수가 됐다.”

 

-서머 우승에 힘입어 LCK 1번 시드 자격으로 월즈에 나섰다. 사전 준비 과정은.
“월즈 시기가 되면 메타가 조금씩 바뀐다. 바뀐 메타를 빠르게 캐치하는 게 코치진의 목표였다. 대회 개막 전 여러 팀과 스크림을 하면서 다양하게 데이터를 쌓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8강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들이 밴픽하는 데 도움은커녕 방해가 됐다. 스크림이든 실전이든 확 무너지는 패배를 당했다면 준비 방향을 확 트는 계기가 됐을 텐데 대부분 애매한 패배를 당했다.”

 

-스위스 스테이지를 처음 치러봤다.
“생각 이상으로 변수가 많았다. 어느 팀을 만나든 조금만 방심해도 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젠지전은 서머 시즌 결승의 기억을 토대로 준비했다. 반면 젠지는 새로운 조합을 준비해왔다. 스크림에서 젠지가 꺼낸 것과 비슷한 조합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우리의 조합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실전은 또 달랐다.
G2나 플라이퀘스트는 지역이 다르니 조합의 선호도도 달랐다. 서양 팀과는 대회 기간 내내 스크림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 플라이퀘스트전은 어느 정도 분석을 했다고 생각하고 임했는데 고전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챔피언을 준비했더라. 그들이 8강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거기서도 보여줄 게 더 남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8강에서 BLG를 만나 탈락했다.
“‘빈’ 천 쩌빈과 ‘나이트’ 줘 딩을 견제하면서 우리의 승리 플랜을 만들고자 했다. 교전과 오브젝트 싸움이 핵심인 메타였다. 거기서 웃기 위한 빌드업이 중요했다. 한화생명이 라인 스와프나 초반 운영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선수들도 라인 스와프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시리즈 내내 라인 스와프에서 손해를 봤다. 거기서 손해를 보게 되니 싸움이 중요한 메타인데도 싸움을 피하게 됐다. 밴픽의 방향성을 틀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라인 스와프 전략을 더 준비해서 상대의 노림수에 잘 대응했다면 게임이 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올해 월즈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내년에 변화를 주고 싶은 바가 있다면.
“LoL e스포츠의 일정은 1년짜리 긴 마라톤이다. 올해를 겪으면서 에너지 분배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스프링 시즌 초반부터 챔피언 폭 늘리기를 비롯해 준비를 다양하게 해봤다면 어땠을까 싶다. 서머 시즌 우승을 하긴 했지만 눈앞의 성적에만 매몰돼 놓친 것들이 월즈에서 후폭풍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더 냉철하게 판단하고 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작업들을 미리미리 해두려 한다.”

 

-로스터에 변화가 생겼다. 최현준이 나가고 최우제가 들어왔다.
“최우제는 다른 선수들이 따라하기 힘든 밴픽적·인게임적 장점이 있는 선수다. 그를 적으로 상대할 때도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분명 탑을 견제해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밴픽에 따라 바텀을 신경 쓰는 동선을 짜야 할 수도 있으니까. 최우제가 특정 픽을 잡았을 때 그냥 편안하게 성장하게 둬도 될까 걱정돼서 T1전 전략을 준비할 때 꽤나 골치 아팠다. 최우제는 공격적인 챔피언 ‘칼챔’이 장점이다. 하지만 탱커를 잡았을 때도 특수한 장점이 있다고 보인다. 팀의 조합에 맞춰 칼과 방패, 양방향으로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LCK 컵에는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도입된다. 감독으로서 고민이 많을 듯한데.
“시스템이 복잡해진 만큼 코치진으로서는 생각할 게 더 많아진다. 하지만 모든 팀이 다 똑같은 환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보시는 분들이 재미를 느끼시는 게 중요하다. 최근 스크림에서 피어리스로 밴픽을 해봤다. 3세트까지 가면 20개 챔피언이 밴을 당하고 추가로 밴 카드가 들어간다. 당연히 조합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익숙한 게임 양상이 안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협곡 지형의 변화도 현재로서는 까다롭게 느껴진다.”

 

-끝으로 한화생명 팬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서머 시즌 결승전 무대 위에서 팬분들의 응원 소리를 들었다. 뒤로 갈수록 더 큰 소리로 응원을 보내주시더라. 그게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응원이 우리의 원동력이다. 내년에도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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