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창간 특집]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최고인 게이머, 이영호를 만나다

Talon 2016. 4. 29. 08:48
▲ 포모스 창간과 데뷔년도가 같은 이영호.

프로게이머 은퇴 후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시작한 이영호는 방송 첫 날 7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기록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스타1) 플레이가 주 콘텐츠인 이영호의 방송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만 명이 넘게 볼 정도로 인기를 끈다.
 
e스포츠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타1에서 이영호는 자타공인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다. 중학생 시절 홀로 상경해 프로게임단에 입단했고 kt 롤스터에 입단한 뒤로는 은퇴하기 직전까지 프렌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리지 않고 최강자로 군림하며 ‘최종병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난 2015년 12월, 데뷔 9년차를 공식 은퇴를 선언한 이영호야말로 포모스 창간 9주년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만났던 터라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한 이영호는 혼자 살기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다고 했다. 방송하는 모습도 직접 볼 겸 인터뷰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이영호의 원룸 안에서 진행됐다.
 
- 프로게이머 은퇴 후 BJ로서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데, 일과라든지 근황이 궁금하다

“화, 목, 일은 무조건 방송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랜덤으로 해서 주 4회 정도 방송해요. 불금, 불토는 일부러 방송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거나 쉬죠. 월요일마다 대전에 내려가서 치과 치료도 받고 나름 규칙적인 일정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 오랫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는데 강남 한복판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해방감을 느낀다거나 설렌다거나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고요. 처음엔 되게 설렜는데 지금은 그런 건 없어요. 그래도 일단 혼자 살아 본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일단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제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좋죠. 만족스러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이영호의 방 창문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 아프리카 방송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별풍선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사실인가

“별풍선, 사실 받으면 기분 좋죠. 사람들도 좋아하고 방 분위기도 살거든요. 하지만 저는 새로운 느낌의 방을 만들고 싶었고 제 방에 오는 팬들,시청자 역시 제가 하는 방송은 뭔가 달랐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아프리카에도 클린 방송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 클린방송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인기를 끄는 방송이 없을 뿐이지. 이것도 이영호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저의 가장 큰 장점은 게임이잖아요. 무엇보다 게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철구님처럼 리액션을 잘하거나 방송을 자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이렇게 하는 게 편해요."
 
- 첫 방송에 7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몰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저도 깜짝 놀랐고요. 너무 고마웠고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선수 시절과 달리 편하게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 머리가 아닌 손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영호.
 
- 선수 시절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기량을 회복한 것 같은지

“지금은 많이 회복한 것 같아요. 요새 거의 안 져요. 그래도 전성기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방송할 때는 선수 시절 마인드까지 돌아오는 것 같아요.”
 
- 프로게이머에게는 실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BJ로서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편하게 게임을 해도 되지 않나?

“그렇게 편한 마음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방송을 하다 보면 달라져요.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거든요. ‘이제 퇴물이네’ 같은 얘기 들으면 ‘아, 진짜 제대로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고쳐 먹거든요.”
 
- 많은 경기를 했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기나 상대가 있다면

“몇 경기가 있었는데 딱 하나를 꼽기는 힘들다. (윤)용태 형이랑도 그렇고 최근에 (도)재욱이 형 이겼을 때도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스타1 때도 힘들게 역전하는 경기가 많았잖아요. 신기하게 요즘 계속 그런 경기들이 나오고 시청자 분들도 그래서 더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요.”
 
- 전적상 밀리는 상대는?

“아마 없을 걸요.”
 
- 만약 이 정도로 빨리 기량이 회복되지 않고 계속 ‘퇴물’ 소리를 들었다면 방송을 접었을까?

“그러지는 않고 훨씬 더 치열하게 연습했겠죠. 오로지 이기기 위한 연습? 다행히 기량이 빨리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솔직히 머리는 기억 못해도 손이 기억을 해요. 제가 스타1을 많이 하긴 했나 봐요.”
 
- 계속 이기니까 재미있을 것 같다

“재미있죠. 또 제가 이기면 방 분위기가 살아요. 저희 방은 팬들이 응원하는 분위기에요. 만약 지면 말 한 마디가 없으세요(웃음). 이기는 것이 제 콘텐츠인 것 같아요. 그래도 팬들이 응원해 줘서 든든하고 얼마 전에는 9주년이라고 해서 작은 냉장고도 사주시고, 잘 쓰고 있어요.”
 
▲ 이제는 팬의 입장에서 다양한 e스포츠 리그를 챙겨보고 있다고.
 
- 포모스도 창간 9주년을 맞았다

“그러니까요. 정말 신기하네요. 선수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많이 가는 사이트에요.”
 
- 요즘 BJ를 장래 희망으로 적어 내는 청소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지금 1인 미디어 시대라고 하지만 5년 후, 10년 후에는 훨씬 더 발전할 것 같아요. 대신 자신만의 확실한 콘텐츠가 있어야겠죠.”
 
- 프로게이머들이 스트리밍을 하는 것도 당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네. 저는 좋게 생각해요. 사실 제가 처음에 스트리밍 한다고 했을 때 제재가 많이 들어왔어요. 다른 팀은 못하고 있는데 너만 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였죠. 그래도 저는 그냥 한다고 했죠. 좋더라고요. 실시간으로 소통도 하고. 뭐가 나쁘겠어요.”
 
- LoL 종목에서는 상위권 프로게이머들이 스트리밍 만으로 연봉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내가 한창 잘했을 때 이런 시장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없는지

“만약 그렇다고 하면 LoL 선수들이 시대를 잘 타고난 거죠. 하지만 시대를 잘 탄 것은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임요환, 홍진호 같은 선배들 때보다 제가 활동할 당시에 선수 연봉도 훨씬 높아졌고 안정적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잖아요. 물론 지금 LoL은 중국 진출도 가능하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 나 때도 이랬으면” 하는 생각은 안 해요. 왜냐하면 저도 정말 많이 누렸거든요. 오히려 운이 좋아서 이렇게까지 잘 된 경우라는 생가도 들어요.”
 
▲ SK텔레콤 소속 '페이커' 이상혁.

- LoL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페이커’라는 후배 프로게이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LoL은 5명이 하는 게임이잖아요. 그 안에서 돋보이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해설자들이나 기자들이 다같이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페이커의 경우 유독 잘하는 것이 느껴지잖아요. 공격적이고 화려하고 멋있고. 대단한 것 같아요. LoL도 선수의 세대교체가 빠르고 변화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페이커라는 선수가 지금처럼 꾸준히 활약해 줬으면 좋겠어요.”
 
- 혹시 직접 만나본 적은 있나?

“있어요. KeSPA에서 주최하는 클린 e스포츠 캠페인 영상을 같이 찍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코치님이 이상혁 선수한테 “너 영호 알아?”라고 했더니 “당연히 알죠”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저도 그렇지만 말수가 별로 없더라고요. 오히려 김정균 코치님이 스타 때부터 저를 좋아했다면서 프로로서의 마인드나 그런 걸 자기 선수들에게도 얘기해 주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영광이라고 말씀 드렸죠.”
 
▲ 페이커와 함께 찍었던 캠페인 광고.
 
- 나중에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던데, 실제로 기회가 주어지면 팀을 우승시킬 자신은?

“있죠. 전 항상 자신감이 있어요. 제가 9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해왔고 코칭스태프를 많이 봤잖아요. 실력도 중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해요. 마치 개인리그 우승과도 같아요. 선수들과 팀워크, 운이 따라야 하죠. 제가 팀을 맡는다고 해서 100% 우승은 확신할 수 없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 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추천을 해주셔서 지도자 수업도 받을 생각도 있고요.”
 
-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일 텐데 프로게이머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인가, 노력인가?

“재능이 중요하죠. 그런데 노력이 8~90% 차지하는 것 같아요.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딱 하나에요. 게임에 지면 화가 나고 열 받는 것은 누구나 똑같아요. 졌을 때 얻는 것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냥 계속 게임만 하는 사람이 있죠. 거기에서 차이가 나는 거에요. 져도 똑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고 뭔가를 배우고 깨달아서 다른 게임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거기에서 나머지 10%의 재능이 필요한 거죠. 90%의 노력이 있으면 다 커버된다고 생각해요.”
 
-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프로게이머를 시킬 생각도 있나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웃음). 원래는 반대를 안 할 생각이었는데 만약 제 아들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하면 더 주목 받긴 하겠지만 제가 했던 것 이상을 하기가 힘들 거라고 봐요. 얼마나 부담감이 심하겠어요.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자식이 아빠 이상으로 하기가 힘든 것처럼요. 반대해야겠네요.”
 
▲ "아들아,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해도 이 아빠만큼 하기에는 힘들 거다."

- 한 인기 BJ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방송을 하겠다고 했다.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BJ들끼리 만나서 얘기할 때도 이건 평생 직업이다 라는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저는 게임 전문 BJ잖아요. 제가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제가 하는 게임의 전문성이 유지될 때까지만 해야겠죠. 사실 지금은 스타1만 하고 있고 시청자 분들이 엄청 좋아해 주시는데 다른 게임에 손을 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도 오버워치나 그런 신작들을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
 
- 프로게이머 출신 BJ가 많지만 큰 인기를 얻기는 힘들다. 매년 열리는 BJ 대상에서 수상하고 싶은 욕심도 있나


“전혀 생각 안해봤고요.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웃음). 주지도 않겠지만.”
 
- 논란의 중심 철구를 어떻게 생각하나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고 사실은 잘 몰라요. 방송 콘셉트가 다르니까 가까이 가기가 힘든 사람이긴 한데 재미있는 것 같아요. 방송 콘셉트가 실제 성격이랑 같은 건지 헷갈려요. 그래도 방송하다가 콘텐츠로서 경기가 잡히고 하면 굳이 게임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에요.”
 
▲ 집에서는 두 개의 모니터를 사용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 지도자 말고 전혀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본 적 없는지

“일단 BJ로 활동하다가 군대에 다녀와서 게임이나 e스포츠 쪽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주식이나 경영 쪽으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요.”
 
- 주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TV 주식을 추천해 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한 뒤)장기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죠.”
 
- BJ로서의 수입은?


“꽤 괜찮아요. 별풍선 말고 배너 수익도 있어서 안정적인 편이고 프로게이머 생활할 때와 비슷한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지금 생활에 만족하나

“네. 만족해요. 매일 매일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가 생기고 많은 분들이 제 방송을 봐주시는데, 인터뷰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이영호는 익숙한 듯 음악을 켜고 방송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입장했고, 첫 게임에서 일부러 테란이 아닌 저그를 고른 이영호는 누군지 알 수 없는 프로토스를 상대했다. 손풀기였다는 듯 손쉽게 gg를 받아낸 이영호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팬클럽 가입 감사합니다” 

시청자들의 채팅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 처음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가운데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상대는 바로 전 프로게이머 도재욱이었다. 이번에도 이영호는 저그를 골랐다. 팬서비스인지 부대 단위의 퀸을 생산해 현란한 손놀림으로 테란의 시즈탱크를 브루들링으로 변태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이번에도 승리.  평소 아프리카 방송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기자였지만 보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적어도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최고의 선수'임에 틀림 없었다.
 
▲ "저의 스타1 플레이를 보고 싶다면 아프리카TV를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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