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가 출시된 지 1년 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났다. 오버워치는 국내 게임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고,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어느 PC을 가든 오버워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대학교 축제에서는 오버워치 대회가 주요 콘텐츠로 떠올랐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에게도 오버워치는 콘텐츠 창고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e스포츠 현장에서 볼 수 있다. 오버워치는 출시와 함께 리그 오브 레전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종목이 됐다. 하지만 기존 e스포츠 종목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성 팬들의 뜨거운 열기다.
물론,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 싸이퍼즈 등 다른 대회들도 많은 여성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하지만 상암 OGN e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오버워치 에이펙스를 찾는 팬들의 남녀 성비는 9대1이 넘을 정도로 여성팬들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특히 루나틱 하이나 LW 블루, 콩두 판테라 등 인기 팀들이 출전하는 날에는 경기장인지 아이돌 콘서트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몰린다. 경기장 근처의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는 한 프로게이머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붙기도 했다. 프로게이머가 아이돌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의아해 했다. 하지만 단기간 내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원인에 대해 속시원히 답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 팀 관계자들도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잘 생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팬들을 대거 끌어 모은 오버워치 e스포츠. 도대체 왜 그녀들은 오버워치에 열광하는지,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몇 그룹의 팬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빠? No!
그녀들이 오버워치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한결 같았고 자연스러웠다. 게임이 인기를 끌자 친구들을 따라 혹은 자발적으로 게임을 접하게 됐고,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게 되면서 프로게이머들에게도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루나틱 하이 선수들과 관련된 콘텐츠 노출 빈도가 높기 때문에 루나틱 하이를 통해 입문한 팬들이 많았다. 한 팬은 "시작은 루나틱 하이로 했지만 다른 팀 팬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녀들은 소위 말하는 '얼빠'는 아니었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프로게이머들을 좋아하는 것이 외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선수들의 외모보다는 실력에 감탄해 팬이 된 것이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TV와 인터넷으로 챙겨보다가 '직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한 번 직관을 경험한 뒤에는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그녀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직관의 매력, 대체 뭐길래?
그녀들이 말하는 직관의 매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경기장에 처음 들어서면 커다란 화면과 화려한 무대에 시선을 빼앗기는데, 이는 보통의 극장 같은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한다.
여기에 TV에서와는 달리 중계진의 목소리가 좀 더 입체적으로 들리고, 다른 팬들과 함께 응원할 수 있다는 동질감까지 느낄 수 있다. 오버워치 직관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A씨(22)는 "경기가 시작될 때 응원 구호를 크게 외치는데, 그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노래방과는 또 다른 희열을 느낄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직관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TV에는 나오지 않는, 선수들의 부스 내 모습이나 연습 과정 등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자신의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경기 후 이뤄지는 팬미팅은 직관의 백미로 꼽힌다. 팬들은 자신이 준비한 편지나 선물 등을 선수에게 주거나, 함께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기도 한다. 루나틱 하이 같은 인기 팀은 선물의 양이 많다보니 선물 받는 시간이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을 동경하다 오버워치를 접한 뒤로 오버워치 경기 직관을 더 많이 다니고 있다는 B양(19)은 "아이돌은 그저 우러러만 보는 머나 먼 존재인데, 프로게이머는 같은 게임을 하면서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는 존재로 느껴진다. 연애 감정보다는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선수들도 사소한 선물 하나까지 기억해주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팬미팅의 매력을 설파했다.
고3 수험생이라는 B양은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데, 프로게이머가 그 다음에 만났을 때도 나를 알아봐주면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돌처럼 일방적 사랑이 아닌 쌍방 소통을 할 수 있어 좋다. 이런 것들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를 위해 열정을 쏟고, 그것을 통해 힘겨운 세상 속에 흐려지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과 자정 능력
어떤 스포츠건 팬이 많이 몰리다보면 사고가 나고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여성팬들이 많은 오버워치도 다를 건 없다.
어떤 이들은 팬미팅에서 노골적으로 프로게이머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사적인 만남을 노리기도 한다. 프로게이머와 여성팬의 만남으로 인한 문제는 이미 여러 번 발생했기 때문에 팀 차원에서 조심할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은 팬들 사이에서 감시의 대상이 된다.
뿐만 아니라 경기 관람에 방해가 될 정도로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행위나, 티켓팅 연습도 가장 큰 비매너 행위로 꼽히고 있는데, 팬들 사이에서도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자정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뭉치나
오버워치 팬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팬 카페를 구축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친목을 다진다. SNS 플랫폼 중에서는 트위터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인터넷을 통해 친해진 팬들은 직관을 통해 실제로 만남이나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가 빠르다보니 기사가 나지 않아도 프로게이머들에 관한 웬만한 소식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 정보 공유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줄 도시락이나 선물 등을 위해 모금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개인방송을 자주 하지 않는 선수가 방송을 시작할 경우 팬들은 빠르게 관련 정보를 공유해 시청자수를 늘리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여러 팀 선수들을 두루 좋아한다는 팬 C씨(22)는 "트위치TV를 켜놓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다. 많을 땐 3~4개 방송을 동시에 시청한다"고 말했다.
의견 개진이 자유롭다보니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인터넷상 싸움으로 번지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덕질'을 방해하는 요소들
대부분의 오버워치 팬들은 자신의 팬 활동을 '덕질'이라 칭하는데, 이 '덕질'을 방해하는 요소들도 여럿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여성 게이머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나오는 비하 발언이다. "여자는 게임을 잘 못한다", "경기를 봐도 모를 것"이라는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외모 비하도 상당하다. 대부분 여성팬들은 응원 도중 중계 카메라에 자신이 잡힐 경우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린다. 얼굴이 노출될 경우 인터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외모 품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캡처가 돼 커뮤니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극심한 심리적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늦은 귀가 시간도 덕질 방해 요소 중 하나다. 경기가 늦어지는 날엔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팬미팅을 포기하거나, 막차를 놓치고 경기장 인근에서 배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장에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가는 길에는 찜질방도 없어 대부분 술집이나 24시 카페 같은 곳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상암 파출소는 오버워치 에이펙스 경기가 있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주변 순찰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자나깨나 선수 걱정
선수들을 위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앞서다보니 팬들이 나서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스 뒷자리의 경우 중계 카메라에 잘 잡히기 위해 작은 단상을 설치한다. 에이펙스 시즌2까지만 해도 이 단상이 좁아 선수들의 의자가 뒤로 넘어갈 수도 있어 위태로웠다. 이에 팬들이 꾸준히 민원을 제기했고, OGN 측은 이를 받아들여 에이펙스 시즌3에서는 단상을 더욱 넓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팀 운영과 관련해서는 팬들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선수 방출이나 영입 건이 특히 그렇다. E씨(22)는 "한 시즌이 끝날 때마다 팀이 해체되거나 선수가 방출되는 건 응원하는 입장에서 정말 마음 아픈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스타크래프트부터 10년이 넘게 블리자드의 e스포츠를 지켜봐왔다는 열성팬 F씨(24)는 "오버워치 팀들 상황이 좋지 않은데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리그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블리자드의 정책에 불만과 걱정을 드러냈다.
F씨는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선수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을 정말 좋아했는데, 은퇴 후 개인방송을 하며 망가지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오버워치 선수들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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