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라이더 조용준 해설입니다~!
종교가 원래는 불교였으나, 후에 천주교로 개종해서 천주교입니다.
아마추어 시절
순천효천고등학교 시절 당시 감독이었던 OB베어스 출신 장호연으로부터 슬라이더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후 1학년때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2학년때부터 동기동창인 채상병,안치용,이현곤을 비롯해 선배인 신명철과 함께 연세대를 대학리그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하였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8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입단하였습니다.
신인 시절 팀의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한 그는 데뷔 이후 30⅓이닝 동안 자책점을 1점도 허용하지 않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고, 이러한 활약으로 시즌 중반부터 붙박이 마무리 투수로 전업해 그 해 1.90 방어율 9승 5패 28세이브라는 기록을 세워 2002년 신인왕을 수상받았습니다.
2003년에는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빈번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그 해 평균자책 3.52, 2승 7패 26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2004년 시즌에는 10승 3패 34세이브 평균자책 2.28을 기록하며 팀의 마무리 투수로 빼어난 성적을 거뒀고, 그 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7경기에 등판, 12⅓이닝동안 2실점 호투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당시 두번의 무승부로 인해 9차전까지 가며 펼쳐졌던 2004년 11월1일의 마지막 승부는 빗속에 진행되었는데, 조용준 선수는 이 경기의 마무리 투수로 등장하여 마치 여름장마처럼 빗발치는 호우속에 팽팽했던 투타 싸움에서 세이브를 올리게 됩니다. 이 경기는 역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10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히 흥미진진했을 뿐 아니라 퍼붓는 비속에 진행된 초유의 9차전 경기여서 여러 야구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경기였습니다. 프로 4년차이던 2005년 6월 8일 잠실 LG전에서 197경기 만에 100세이브를 기록하여 역대 최소 경기 100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원반 같았던 특이한 궤적을 지닌 슬라이더로 유명하였고, 이를 본뜬 '조라이더'라는 애칭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시즌 종료 후 어깨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오랜 재활 기간과 자신의 오랜 방황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9년 8월 16일 1,430일 만에 1군에 등록하여 8월 1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등판하여 1이닝 1안타 무실점을 기록하였습니다. 2009년 9월 10일 두산전에서 4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히어로즈로 바뀐 이후 11경기에 등판하여 1패 1세이브 평균자책 4.00을 기록했으나, 이 해 9월 24일 군산 KIA 전의 선수 생활의 실질적인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2010년에도 마무리 보직으로 다시 가는 듯 했으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 캠프 중 부상이 재발하여 경찰청에서 갓 제대한 투수 손승락에게 마무리를 넘기고 조기 귀국했습니다. 이에 김시진 감독은 자기관리 부족을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손승락은 그를 대신하여 마무리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며 2010년 세이브왕에 올랐습니다. 그 후 계속 재활을 반복하였으나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군에서도 구위가 나아지지 못해 결국 시즌 종료 후 같은 소속 팀 투수 신철인 등과 함께 팀에서 방출되었습니다. 현역 복귀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은퇴했습니다.
은퇴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2011년에는 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암 수술을 받은 이후 회복이 되어 2013년부터 MBC 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7년 신일고등학교의 코치로 임명되었습니다.
2004년 제일화재 프로야구대상 최고구원투수상
200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
2002년 프로야구 신인왕
2001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
2000년 춘계리그 고교야구대회 MVP, 최우수투수상
1999년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감투상
여수백초초등학교
여수중학교
순천효천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상 조용준 해설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