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가을동화 조동화 선수입니다~!
그의 동생은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조동찬입니다.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신고선수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습니다. 2000년에 입단한 후 총 10경기만 출장하여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상무 야구단에 2002년 시즌 종료 후에 입단하였습니다.
제대한 후 2005년 시즌에 1군으로 올라와 110경기 출장하여 2할대 타율, 74안타, 19도루를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1군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2007년 시즌에는 25도루로 첫 20도루를 넘겼고 2010년 시즌에는 정규 이닝에서 필요할 때마다 적시타를 뽑아내는 해결사의 모습도 보임과 동시에 외야수에서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주며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3년 시즌에는 첫 규정타석을 채우며, 2할대 타율, 24도루를 기록하였고, 2014년 시즌에는 37개의 도루와 52타점을 기록하면서 데뷔 이후 최다 도루, 최다 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FA에서 4년 총액 22억원에 SK 와이번스와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재빠르진 않지만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민첩함과 집중력, 그리고 주루 센스로 외야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정규 시즌보단 후반기와 포스트 시즌에서 더 많이 활약을 했었기 때문에, '가을동화'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중학교
공주고등학교
너무 고평가가 되어 있습니다.
발도 빠르고 배트 컨트롤 능력도 있으며, 수비를 잘 하고 번트도 잘 댄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스탯을 뜯어 보면 한 번도 3할을 기록하지 못한 선수가 파워도 없으며, 선구안 역시 전혀 장점이 아닙니다. 내야안타 비율도 높기 때문에 BABIP이 타율에 비해 많이 높습니다. 가장 직관적으로 공격력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인 OPS를 보더라도 조동화 선수는 OPS 7할을 넘겨 본 적이 없습니다. 이대형이 OPS 6~7할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며 똑딱이, 주루 1툴...이라고 까였는데, 조동화 선수는 한술 더 뜬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대형만큼 도루를 많이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냉정히 말하면 그 터지기 전의 LG 이대형과 비교해도 오히려 떨어지면 떨어졌지 크게 나은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통산 WAR가 0에 가깝다는 점이 그를 대체 선수의 훌륭한 표본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까 조동화 선수로만 타선을 꾸리면 타선의 통산 WAR는 0이고, 조동화 선수 9명으로 이루어진 야구단은 3할보다 약간 아래의 승률을 기록한다는 망상이 야구팬 사이에서 잠시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도 빠르고 수비력도 좋기 때문에 훌륭한 백업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주전감으로서는 영 아닙니다. 박재상보다 떨어지는 타율과 안습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장타력을 보면서 이 선수가 어떻게 22억은 받아갈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는 팬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가치는 공격보다는 주자, 번트 배터, 수비수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루 자체는 많지 않지만, 성공률은 높기 때문에 주자로서는 굉장히 위협적입니다. 번트가 필요할 때 무조건 대줄 수 있는 능력도 그가 종종 2번 타자로 기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수비 범위도 굉장히 넓어 넘쳐나는 SK 외야진에서도 중용되었습니다.
약간의 추억보정도 있는 편. SK 왕조 시절에는 기동력, 번트 능력, 수비력 등이 선수평가에서 꽤나 주요한 지표로 활용되었는데, 이는 김성근 감독의 지론인 스몰볼 야구에 맞는 지표들입니다. 출루를 많이 하지는 못해도, 일단 출루했을 때는 상대 투수를 흔들며 언제나 다음 베이스를 노릴 수 있는 센스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중용받았으나 이런 추억 속 평가도 김성근의 퇴진과 함께 거품이 빠지면서 팬들의 냉철한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상 조동화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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