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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오늘] '韓 대중음악의 기둥' 윤상, 도전으로 점철된 음악 인생

Talon 2018. 3. 31. 08:45

2018.03.27.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가수 겸 프로듀서 윤상이 최근 의미있는 경력을 하나 더 추가했다. 북한 평양 공연을 위한 남측 예술단의 수석대표로 내정된 것.

그동안 1세대 아이돌 가수의 노래부터 최근 세대의 노래까지 두루 프로듀싱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올곧게 보여온 윤상. 그의 발자취가 '남측 수석대표'라는 직함을 얻으면서 뮤지션 경력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지난 19일 통일부는 윤상을 남한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위한 수석대표로 내정했다고 전했다. 그를 내정한 이유로 "우리 대중음악의 세대별 특징을 잘 아는 적임자이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20일 윤상은 판문점 통일각에서 북한 대표인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을 만나 공연에 대해 약 4시간 가량 협의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당시 삼촌에게 물려받은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같은 반 친구와 밴드 페이퍼 모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졸업한 뒤에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려 했지만 군대와 금전적인 문제로 현실에 부딪혀 해체하고 말았다.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던 윤상은 페이퍼 모드로 활동했을 때 만들었던 몇 곡을 데모 테이프로 준비해 신촌의 한 기획사를 찾아갔다. 이 과정에서 윤상의 곡을 듣게 된 故 김현식이 관심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윤상의 데뷔곡이 탄생했다. 김현식은 윤상의 곡 '한 여름밤의 꿈'을 1988년 발표한 자신의 4집에 수록했다. 작곡가 윤상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첫 작품이었다. 그때 윤상의 나이 19세였다.

또 이 데모 테이프에는 '추억 속의 그대'라는 곡도 담겨있었는데, 이 곡도 故 황치훈이 1988년 발표한 1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선정돼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윤상은 작곡가로서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어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에서 베이시스트로 약 1년 활동하기도 했다.

윤상이 작곡가로 더욱 주목을 받았던 때는 1990년이었다. 강수지 '보랏빛 향기', 김민우 '입영열차 안에서'를 작곡해 연달아 히트시켰다. 두 곡은 강수지와 김민우를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들을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같은 해 윤상의 실루엣 활동이 끝나갈 즈음, 그의 곡을 접한 음반 기획자 김광수가 솔로 가수를 제안해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1991년 윤상의 정규 1집 앨범이 탄생했다. 타이틀곡 '이별의 그늘'은 9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단숨에 히트했고 작곡가에 이어 가수로서도 명성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1992년 발표한 정규앨범 2집으로는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맛봤다. '파트 1'과 '파트 2'로 1년의 시차를 두고 두 가지로 나누어 발매했는데, 대중적인 곡들이 담긴 '파트 1'은 100만장 넘게 팔렸고 타이틀곡 '가려진 시간 사이로'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반면 대중성을 의식하기 보다 윤상이 하고 싶은 음악으로만 채웠던 '파트 2'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음악 평론가들에게 호평받았지만 앨범 판매량은 30만장에 그쳤다.

이처럼 대중에게 외면받을 때도 있었지만 윤상은 도전 정신을 잃지 않았다. 1996년 1월 발매한 비정규 앨범 '레나시미엔토(Renacimiento)'를 통해 또 새로운 음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윤상은 군 복무 이전에 썼던 자신의 곡을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출신의 프로듀서를 섭외해 그 나라의 언어로 개사하고 월드 뮤직 풍으로 편곡해 부른 버전을 수록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영위해 나갔다.

같은 해 동료 故 신해철과 노 댄스(No Dance)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골든 힛트'라는 앨범도 발매했다. 천편일률적인 멜로디만 가진 테크노 음악에 기초적 방법론을 제시하겠다는 게 노댄스의 포부였다. 윤상과 신해철은 컴퓨터 전자악기를 이용해 독자적으로 창조해낸 테크노 음악들을 선보였고, 신선한 시도를 담아낸 이 앨범은 수작이라고 호평받았다.

2002년 4집을 통해서는 일렉트로닉한 느낌과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묘하게 공존시킨 음악을 선보였다. 또한 브라질 풍의 라틴 음악도 좀더 깊이있게 다뤘고 가야금을 이용해 한국적인 색깔도 드러냈다. 4집은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호평이 이어진 앨범으로 남아있다.

2003년 윤상은 정규앨범 5집 발매 후 돌연 유학을 떠나 미국 버클리음대 뮤직신서시스학과와 뉴욕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그는 상명대, 성신여대에 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2010년 4월 '팝스 팝스'의 DJ를 맡아 라디오 방송 활동을 재개해 청취자들과 소통했다. 같은 해 9월 한 게임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멘토이자 심사위원을 맡아 활약했다. '꽃보다 청춘', '집밥 백선생', '무한도전'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아이유 '나만 몰랐던 이야기', 레인보우 블랙 '차차', 러블리즈 '아-추(Ah-Choo)', 수지 '취향' 등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한국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이끌어 나갔다. 더불어 2014년 데뷔 후 처음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인 '날 위로하거든'을 발표해 제12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점령하다시피한 가요계에서 받은 의미깊은 상이었다.

윤상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제3세계 음악을 대중가요에 가미하는가 하면 테크노, 발라드, 일렉트로니카, EDM까지 성역 없는 장르를 넘나들었다. 음악에 편협하게 다가가기 보다 열린 시각으로 접근한 그의 음악 세계가,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에 영향력을 미치는 뮤지션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는 무엇보다 그에게 실험적인 정신이 점철됐기에 가능했다. 31년간 늘 도전의식을 품고 전진해온 윤상. 그의 진가 발휘는 지금까지 한계없이 펼쳤던 그의 음악 정신처럼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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