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김동기 선수입니다~!
인천신흥초등학교
동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1981년 : 인천고등학교 3학년 때 제1회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 국가대표로 뽑혀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1982년 이후 : 국가대표 시절 대륙간배 대표로 뽑혔습니다.
1986년 :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청보 핀토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주 포지션은 포수였고 이후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거쳤습니다.
전년도 너무 힘을 썼던 탓일까 95시즌 팀의 성적도 하락했고 또한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66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고 다음해 새롭게 바뀐 현대에선 48게임밖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위업은 96년 5월31일 인천 삼성라이온즈전에서 1천게임 출장 달성.
이는 프로 19번째이며 힘든 포수자리로는 이만수 이후 두 번째입니다. 전년도 성적이 저조하면 다음시즌에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마련. 94시즌을 맞는 김동기의 각오도 남달랐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을 자제하고 열심히 야구에만 매달려 후배 김경기와 함께 공포의 'KK포'라 불리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팀은 시즌내내 태평양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 2위를 차지했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시즌내내 팀의 안방을 지키며 0.264의 타율에 15홈런, 50타점을 올리며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고 올스타전에도 팬투표로 뽑혀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선 우승팀 LG의 김동수에게 2표차로 정말 아쉽게 밀리고 말았습니다.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었습니다.
이렇게 김동기 선수는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앞선 88년도에도 후반기에 어느정도 타석에 들어가 서있기만 했어도 타격왕 타이틀은 따논 당상이었습니다.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을 상대로 2번의 만루 홈런을 뽑아낼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보험업, 중학교 야구팀 감독, 건설업 등을 했었고, 사회인 야구 선수 지도를 거쳤습니다.
현재는 자신의 모교인 인천신흥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전 삼미 슈퍼스타즈 및 청보 핀토스 투수 김상기와 형제지간입니다.
이상 김동기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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