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유도 선수 안창림

Talon 2021. 7. 28. 12:30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유도의 안창림 선수입니다~!

 

2015년 11월 수원시청에 입단하고 2016년 용인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2016년 7월 기준 73kg 이하급 세계 랭킹 1위의 선수이다.

재일교포 3세로 2014년 11월 한국에 온지 9달만에 국가대표 1진에 선발된 후 줄곧 국가대표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우승하며 리우 올림픽에 출전, 일본의 오노 쇼헤이와 함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습니다.

32강전 시리아의 모하메드 카셈에게 절반에 이은 한판승을 거두며 16강전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16강전 벨기에의 디르크 판 티첼트에게 절반패를 당하며 탈락했습니다. 경기 시작 47초만에 먼저 지도를 따냈지만 경기 종료 2분 14초를 남기고 절반을 내주며 끝내 만회하지 못했습니다. 판 티첼트와의 역대 전적에서 2승을 거뒀지만 올림픽에서 패배하였습니다.

2016년 2월 용인대학교

2020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73kg에 출전했습니다. 첫 상대로 유럽의 강자인 파비오 바실레와 대결하여 골든스코어에서 절반 승을 거두어 5년 전 안바울의 아쉬움을 대신 설욕했습니다.

16강 전에서 키크마틸로크 투라에프를 골든스코어 혈투 끝에 누르고 8강에 진출하였으며, 8강전에서 토하르 부트불 선수를 골든스코어 승부 끝에 절반으로 꺾으며 준결승에도 진출하였습니다. 준결승에서는 라샤 샤브다투아슈빌리와 결승 진출을 다투었으나, 골든스코어 끝에 반칙패인 지도패로 통한의 패배를 당하였습니다.

곧이어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루스탐 오루조프를 만나 서로 지도 2개를 받았고, 이후 경기 종료 약 10초를 남겨두고 절반을 얻어내면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연이은 연장전으로 체력소모가 컸을 상태에서 따낸 값진 메달과 함께 병역특례를 얻으면서, 3년 전에 석연치 않은 오심으로 놓쳤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018 아제르바이잔 세계유도선수권 혼성단체전 동메달, 남자 -73kg급 금메달
2018 제 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유도 혼성단체전 동메달, 남자 -73kg급 은메달
2016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남자 -73kg급 동메달 / 파리 그랜드슬램 남자 -73kg급 금메달
2015 제 96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대학부,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남자, 제주 그랑프리 남자 -73kg급,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73kg급 금메달 / 도쿄 그랜드슬램 남자 -73kg급, 유러피안 오픈 남자 -73kg급 은메달 / 카자흐스탄 세계유도선수권 남자 -73kg급,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남자 -73kg급 동메달
2015 제28회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도 남자 단체전 은메달, -73kg급 금메달
2014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남자 -73kg급, 제 95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대학부 -73kg급, 제주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남자 -73kg급 금메달 / 도쿄 그랜드슬램 남자 -73kg급 동메달
2013 전일본학생 유도선수권 남자 대학부 -73kg급 1위
2011, 2012 재일동포 대표로 대한민국 전국체전 지역예선 참여

안창림 선수는 일본 교토 태생으로 재일교포 3세입니다. 교토는 와세다대 유학생이었던 그의 할아버지가 정착한 곳입니다. 유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가라데 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가라데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으나 곧 유도에 더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나의 꿈>이라는 작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라고 하였습니다.

중학교 때 쓴 글에는 '내가 패하면 우리 가족들이 슬퍼한다. 재능이 부족하다면 남보다 3배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입학할 당시만 해도 평범한 선수였으나 인근 토인대 유도부를 찾아 궂은 일을 해가며 유도를 배우는 근성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하였습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유도 명문 쓰쿠바 대학에 입학, 2학년이던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 66kg 이하급 1위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학 감독은 일본 귀화를 권유하며 한국행을 만류했으나, 태극마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안창림 선수는 2014년 2월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전 유도 국가대표 안정환이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안정환의 삼촌은 1984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병근 용인대 교수입니다. 안병근 교수의 도움으로 용인대 3학년에 편입한 안창림은 불과 한 달 만에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3개월 후 열린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는 1위에 오르며 국내 유도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국제대회 경험이 없어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권이 주어지는 대표 1진 명단에는 속하지 못했고, 국가대표 파트너 자격으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습니다. 안창림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는 2014 러시아 첼랴빈스크 세계유도선수권입니다. 이 대회 2라운드에서 당시 세계랭킹 2위이던 사기 무키에게 패했지만 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10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어 이 대회 우승이 가장 기뻤다고 합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출전한 국내외 대회마다 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6 파리 그랜드슬램 우승 직후인 2월, 세계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안창림 선수는 원래 힘보다는 업어치기와 안뒤축걸기를 주무기로 포인트를 따내 승리하는 '경기 운영형 선수'였으나 한국에 오면서 경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체중을 늘이며 '한판승의 사나이'로 진화했습니다. 그는 최근 들어서 업어치기와 안뒤축걸기는 물론 빗당겨치기, 들어매치기, 조르기, 누르기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합니다. 주특기인 업어치기도 외깃, 양팔, 한팔 등 다양하게 쓰면서 대부분의 시합을 한판승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유도를 모두 체득해 힘과 기술을 모두 갖춘 '완전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상 안창림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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