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前 권투 선수 故무하마드 알리

Talon 2022. 7. 24. 12:40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故무하마드 알리 선수입니다.

 

1964년 맬컴 엑스 등이 이끄는 이슬람 운동에 가담하기 전까지 이름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였습니다. 30년 동안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오면서도 권투선수로써 위상을 날렸던 무하마드 알리는 2016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고, 전 세계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캐셔스 클레이 주니어는 1942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마추어 복서로 로마 올림픽에 참가하여 복싱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알리는 그의 자서전에서 로마에서 돌아온 후 인종 차별을 겪고 강에 메달을 던져버렸다고 하였으나 이 일화의 진위는 후에 논란이 되었습니다.

1964년 소니 리스턴을 이기고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본래 침례교 신자였으나 맬컴 엑스가 소속되어 있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 운동에 감화되어 리스턴과의 시합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였습니다. 1967년, 미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하며,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양심을 들어 징집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였습니다. 알리는 곧 체포되어 병역 회피로 유죄 선고를 받고 챔피언 타이틀도 박탈당했습니다. 1971년 대법원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을 변론하여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이 시기까지 거의 4년 동안 시합을 하지 못하였으며, 운동선수로서의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기간을 상실하였습니다. 전쟁에 대한 양심적 거부자로서의 알리의 행동은 그를 대안문화 세대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1976년 일본 도쿄에서 레슬링 선수이자 김일 선수의 라이벌로 유명한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한 이후 태권도인 이준구의 주선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알리는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문화방송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습니다. 비행기 시간 문제로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은퇴 후에는 파킨슨 병을 앓았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성화 점화자로 참여하였습니다. 2016년 6월 3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폐혈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알리는 당시 선수들이 매니저에게 발언을 맡긴 것과 달리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였으며 도발적인 말로 상대방을 자극하였습니다. 알리는 복싱에서의 트래시 토킹을 위하여 라임 구성과 스포큰 워드를 즉흥적으로 구사하였고, 자신의 활동을 지지하기 위한 정치적 시의 일종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구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랩과 힙합 음악을 예견한 것이기도 합니다.

알리의 한국 방문을 주선한 이준구는 알리가 기자들 앞에서는 기상천외한 내용이나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과묵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달변가이기도 했는데, 일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의 발언은 당시 미국의 사회문제로 대두된 인종차별을 명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묘사한 복싱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이상으로 故무하마드 알리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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