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인 김상엽

Talon 2024. 5. 11. 12:40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만딩고 김상엽 님입니다~!

 

대구수창초등학교 - 경복중학교 - 대구고등학교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의 에이스로, 1987년 대붕기에서 4경기 완투를 하며 모교에 우승기를 바쳤으며 본인은 우수투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유망주로 연세대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삼성 라이온즈의 집요한 구애에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뛰어들었습니다. 최고구속 140km/h만 넘어도 강속구 투수 소리를 듣던 1980년대 후반에 최고 구속 150km/h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강속구와 함께 당시에는 희귀했던 낙차 큰 파워 커브를 주무기로 타자를 농락했습니다.

1989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1990년 선발과 구원을 오고 가면서 12승 18세이브 ERA 2.81의 성적으로 그해 삼성 마운드의 명실상부한 주축을 담당했습니다.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팀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고 그 해 4월 10일에 열린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둬 역대 개인 최다 점수차 완봉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97년 12승을 거두며 마지막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김시진, 이선희 등 삼성의 역대 에이스들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부진의 늪에 빠져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과는 달리, 김상엽 선수는 예외적으로 큰 경기에 아주 강했던 투수였습니다. 포스트 시즌에서 거둔 성적이 무려 7승. 특히 1997년 포스트시즌 준 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올라왔고 0:2 상황이었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도 LG 트윈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만 3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이스' 김상엽 선수의 모습도,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당시 상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했던 팀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김동수를 FA로 영입하며 보상 선수 자격으로 LG 트윈스로 이적했으나 부상이 지속돼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경기에 등판해 6.2이닝동안 2패를 기록한 후 2001년에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통산 78승 5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선수 생활은 허무하게 끝났으나, 성준, 박충식, 김태한 등과 함께 1990년대 중반의 암흑기를 누비던 삼성 라이온즈를 온몸으로 지탱한 등불 같은 존재였습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남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에는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습니다.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됐습니다. 2019 시즌 후 NC 다이노스와 재계약하지 않은 그는 2020년부터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를 맡았고, 김용국의 후임으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경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후 이선희에게 감독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경일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홀수 해에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에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김상엽 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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