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K리그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 FC

Talon 2013. 8. 30. 10:55

오늘 소개할 팀은 인천 유나이티드 FC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클래식 소속의 프로축구단입니다. 2003년에 팀이 창단되어 2004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했으며, 인천광역시와 인천광역시민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시민구단이죠. 인천 유나이티드의 애칭이자 약칭인 '인유' 혹은 '유나이티드'로 불리고 있습니다. 홈 경기장은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에 있는 인천문학경기장을 사용했으며, 2012년부터 새로 완공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의 창단은 2003년 본격적으로 논의가 구체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구단은 가칭 인천시민프로축구단으로 불렸으며 초기 창단자금으로 150억원을 책정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르고 남은 자금 30억원과 기업 자금 유치, 시민주 공모 등을 통해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어 K리그 2004 시즌부터 참여하겠다는 발표가 이루어졌으며 9월에 TSV 1860 뮌헨의 감독으로 유명했던 독일의 축구 감독 베르너 로란트를 영입했습니다. 또한 10월에 시민 공모를 통해 구단의 명칭을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또한 선수 영입에도 박차를 가해 안양 LG 치타스에서 최태욱 선수를 영입하고 터키의 국가대표 알파이 외잘란을 영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성적은 저조하여 2004년 K리그 첫 시즌에는 전기리그 13위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후기리그에서는 기세를 올려 4위를 기록했습니다. 2004시즌 전반기가 종료된 8월에 로란트 감독은 부인의 건강 악화로 인한 개인적인 사정 으로 사임했으며, 장외룡 수석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인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크게 기록되는 시즌은 창단 이후 리그에서 2년차를 맞이한 2005년 K리그이죠. 팀의 간판 선수로 평가되던 최태욱 선수를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보내며 얻은 자금 15억원을 구단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구단과는 다르게 가용 자금이 부족했던 인천은 제대로 선수 수급이 안 되어 스쿼드가 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전용 연습구장도 없어 훈련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해야 할 정도로 팀 사정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 임중용 선수와 신인 방승환 선수, 외국인 공격수 3인방 아기치, 셀미르, 라돈치치등의 활약을 앞세워 전기리그 7승 3무 2패로 2위, 후기리그 6승 3무 3패로 5위로 통합 성적 13승 6무 5패로 우승을 기록, 리그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 전기 리그 우승 팀 부산 아이파크를 2대 0으로 누르며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 통합 우승의 기대를 한껏 높였습니다. 그러나 인천의 전진은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통합 스코어 3대 6으로 패하면서 끝났으며, 최종 기록은 리그 준우승으로 되었습니다. 비록 팀은 '기적같은 행보의 끝', '리그 방식의 희생양'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종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시민 구단의 돌풍' 이라는 찬사와 함께 인천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적으로 비춰졌습니다. 그 해 1월 3일에 감독 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되며 시즌 동안 인천을 이끈 장외룡 감독은 리더십과 전술 운용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인천 돌풍의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것은 울산의 김정남 감독을 투표에서 1표차로 제치며 올해의 K-리그 감독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장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리그 우승 팀이 아닌 감독이 수상을 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인천이 2005년에 일으킨 돌풍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2006년 12월 14일에 2005시즌의 인천 유나이티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이 개봉했습니다.



지난 시즌에서 정규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을 기록하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던 인천이었으나 2006 시즌에서는 전기리그에서는 2승 8무 3패로 10위, 후기리그에서는 5승 4무 4패로 6위를 기록, 통합 순위 9위에 자리하며 기대와는 다르게 우승권에서 멀어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7 시즌에는 리그가 시작하기 앞서 2007년 1월 25일 선진 축구를 배우고 특히 2군,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연구 및 체득을 위해 K리그구단 최초로 감독을 1년간 영국에 지도자 연수를 보내는 파격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장 감독이 연수를 가 있는 동안에는 박이천 기술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아 수행했습니다. 한편 인천의 서포터들은 2007년 8월 29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경기가 열리는 날에 인천광역시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K-리그 최초의 길거리 응원을 펼쳤는데,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중 응원 문화로 자리매김한 거리 응원 문화를 국가대표급 경기가 아닌 일반 클럽 경기에 적용시킨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한편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구분 없이 치러진 2007시즌에서 인천은 최종 순위 9위를 기록했습니다.


2008 시즌에는 팀의 김시석 코치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셀틱 FC로 유학을 보내 장외룡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스태프 유학을 보냈습니다. 리그에서는 시즌 초반 제주 유나이티드, 전남 드래곤즈,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탔었으나 리그 후반에 승리보다는 무승부와 패배를 더 많이 기록, 전북 현대 모터스와 경남 FC와 함께 6강 플레이오프의 마지노선인 6위에 들기위해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1대 3으로 패하며 7위를 기록, 경남을 홈에서 3대 1로 꺾은 전북에게 6위 자리를 내주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2006년에 9위, 2007년에 9위, 2008년에 7위를 기록한 인천은 번번이 6강 플레이오프의 문턱에서 좌절하며 2005년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시즌에 앞서 인천은 팀의 지주이자 구단 차원에서 크게 투자를 한 장외룡 감독이 J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인천은 장 감독의 부재를 곧바로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을 영입하면서 메웠습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을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감독으로써 특히 월드컵 예선 때에는 최소 실점으로 본선에 올라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던 명감독이었습니다. 또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고교 시절부터 특급 공격수로 평가받던 홍익대학교의 유병수 선수를 영입했고, 이외에도 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맹활약하며 인천 서포터들의 큰 지지를 받았던 라돈치치가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면서 생긴 외국인 스트라이커의 자리를 마케도니아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출신의 드라간 챠디코프스키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K리그 구단 중 최초로 아시아 쿼터제를 사용하여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의 수비수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는 등 스쿼드를 강화했습니다. 시즌 전반기 14경기 6승 5무 3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단계 진출 가능성을 밝게 했던 인천은 그러나 8월 2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승리를 거둔 이후 6경기 연속 무승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불안함을 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용병 공격수 챠디의 부진과 시즌 초 활약한 강수일 선수의 침체, 시즌 중반에 영입한 세르비아 출신 용병 미드필더 오그넨 코로만의 부상 등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던 가운데 인천은 시즌 마지막 4경기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막판 승점 쌓기에 성공, 정규리그 순위 5위로 플레이오프 단계에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비록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4위팀 성남 일화 천마에 접전끝에 패하여 상위 단계에 진출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4년 만에 플레이오프 축구에 합류하는 성과를 거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특히 리그 27경기에서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었었던 K리그 1년차 신인 유병수 선수의 대활약은 2009 시즌 인천 축구에서의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죠. 하지만 K리그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FA컵에서 경희대학교에 일격을 당하며 32강에서 탈락하고 컵대회에서는 FC 서울에 져 8강에서 탈락하는 등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0 시즌 초에 전남 드래곤즈와 광주 상무를 꺾고 2연승을 하였으나 이후 성남 일화 천마에게 0대 6 대패를 당한 경기를 포함하여 5연패를 당하였습니다. 주 득점원이었던 유병수 선수 또한 침묵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4월 18일, 감독 교체 이후에 똑같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유병수 선수가 네 골을 쏟아부으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경기 이후로 인천 유나이티드는 무패 가도를 달렸으나 6월 8일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가 아내의 건강 악화의 이유로 돌연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페트코비치의 공백을 수석 코치였던 김봉길 감독 대행이 메꾸었으나 6강 챔피언십 순위까지 올라섰던 인천 유나이티드는 점점 순위권에서 멀어졌습니다. 페트코비치의 사임 약 세 달 후인 8월 22일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허정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맡은 인천은 2010 시즌을 11위로 마감하였고 유병수 선수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습니다.


2011 시즌 초반 유병수 선수의 부진으로 득점 난조에 시달리며 부진하였으나 6라운드를 기점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며 15라운드가 종료된 후엔 5위까지 랭크되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좋은 모습을 이어가지 못하고 리그를 13위로 마무리 지었고 FA컵에서도 성남에 패하며 16강에서 탈락하였습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인천 구단은 푸른색 위주의 새로운 유니폼 디자인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창단 이후부터 고수해오던 푸른색과 검은색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갑작스럽게 바꾼 것에 대하여 팬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바뀐 유니폼에 대해 지지 발언을 한 허정무 감독에 대하여 비판 여론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새로운 시즌을 위하여 김남일 선수, 설기현 선수, 네이선 번즈, 김태윤 선수, 윤준하 선수 등을 영입하며 대대적으로 전력을 보강하였으나 시즌 초반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강등권을 맴돌았습니다. 이에 대해 허정무 감독에 대한 책임론이 일었고 4월 10일 결국 허정무 감독이 자진 사퇴하였습니다. 이후 김봉길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후임 감독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김봉길 감독 부임 이후 성적이 반등하자 구단은 김봉길 감독 대행을 7월 16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인천은 김봉길 감독 정식 취임이후 순위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여 25~29라운드 동안 5연승을 기록하며 8위에 안착했지만, 30라운드에 제주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경남에 골 득실차가 뒤져 9위로 밀려났습니다. 그 뒤 그룹B에서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19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지만 44라운드 강원과의 경기에서 2-1로 패하며 연속 무패경기는 19경기로 끝이 났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인천 월드컵 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경기장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1-0으로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한 역사가 있는 경기장이죠.


기존에 사용하던 문학경기장은 종합 경기장인 이유로 인해 관람 시야 등의 문제로 축구전용경기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인천광역시가 2014년 아시안 게임 유치을 염두에 둠과 동시에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도원동과 남구 숭의동 일대에 걸친 옛 인천공설운동장 및 도원야구장터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하면서 2012년부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는 경기장의 운영권을 구단에서 넘겨받아 구단이 직접 경기장을 관리,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미추홀 보이즈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서포터즈이죠. 인천 유나이티드는 연고지 인천광역시와 그 주변의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의 수도권 지역 거주자를 주로 근거로 한 팬층이 존재합니다. 기존에 6개로 분리되어 있던 서포터즈 그룹들이 유나이티드의 지지자를 하나로 규합하는데 뜻을 모았고, 6개의 독립된 그룹들이 연대를 이루어 2009년 5월 1일 탄생하였습니다. 이전부터 존재해오던 ULTRAS HAWK와 포세이돈, 血盟NaCl, ICFC, T.N.T., 레인보우 등 6개 지지자 그룹들은 미추홀 보이즈 내의 소그룹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미추홀 보이즈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대한 응원행위를 우선으로 하며, 열정적인 응원을 통해 인천 유나이티드의 승리에 기여하고 로컬리즘의 고취와 발전된 응원문화를 이룩하기 위한 목적으로 합니다.


르꼬끄 스포르티브 : 공식 스포츠 용품 파트너

신한은행, 인천광역시 : 주 스폰서

캐시비, 교보증권, 서해그랑블 : 기타 스폰서

자유투어, 삼천리도시가스, 인천도시가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 협력 파트너


인천 유나이티드는 어린이 축구교실인 아이 유나이티드와 U-12, U-15, U-18 유소년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U-18팀인 대건고등학교는 2008년부터 인천과 제휴를 맺었으며 선수 선발 및 관리, 훈련, 대회참가 등 전반적인 운영은 인천 구단이 담당하게 되고 선수들의 학교 공부와 학사관리는 대건고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U-15팀은 광성중학교와 협약을 맺어 U-18팀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천은 인천광역시 관내 소재 중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축구대회인 미들스타리그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참가할 수 없으며 순수한 아마추어 대회로 인천 유나이티드가 주최하고 관내 사업자가 후원하는 대회이죠. 각 학교에서 홈엔어웨이로 예선을 치르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본선을 치릅니다.


인천은 다양한 스폰서들의 지원과 선수 이적 시에 발생한 금액으로 2006년 5억여 원의 경영 흑자를 달성하여, 시민구단 최초의 흑자구단으로 기록되는 쾌거를 누렸습니다. 또한 이러한 흑자경영을 바탕으로 2009년엔 코스닥 상장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천의 흑자경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대기업이 경영하지 않는 시민구단의 한계로 인해 항상 자금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주요 핵심 선수들을 자금의 융통을 위해 타 구단으로 이적시키는 일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선수가 최태욱 선수, 최효진 선수, 김치우 선수 등이에요. 또한 광고, 상품판매, 입장수입 등의 수입원이 전체 수입의 3분의 1씩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한데 여러 스폰서를 광고해주는 댓가로 받는 자금과 선수 이적료가 주 수입원을 이루는 것이 인천의 흑자 구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팀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인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고, 특히 인천은 3년 연속으로 흑자 경영을 이어가면서 시민구단이 리그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2003년 6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창단 발표

2003년 8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법인 설립

2003년 9월 인천구단 초대 감독 베르너 로란트 감독 취임

2003년 10월 "인천 유나이티드" 명칭 공모 최우수작 선정

2003년 10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1차 시민주 공모 실시

2003년 1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창단 승인


2004년 1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2차 시민주 공모

2004년 4월 K리그 데뷔

2004년 삼성 하우젠컵대회 8위

2004년 삼성 하우젠 K-리그 전기 13위

2004년 삼성 하우젠 K-리그 후기 4위


2005년 삼성 하우젠 K-리그 준우승

2005년 삼성 하우젠 K-리그 정규리그 통합 1위


2006년 하나은행 FA컵 3위

2006년 삼성하우젠 K-리그 통합순위 9위

2006년 삼성하우젠 K-리그 전기리그 10위

2006년 삼성하우젠 K-리그 후기리그 6위

2006년 삼성 하우젠컵 14위 

2006년 2군리그 우승


2007년 삼성 하우젠 K-리그 통합순위 9위 

2007년 삼성 하우젠컵대회 4강

2007년 하나은행 FA컵 4강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통합순위 7위 

2008년 삼성 하우젠컵대회 조별 예선 탈락 

2008년 하나은행 FA컵 1라운드 탈락 

2008년 2군리그 우승

2008년 U-18팀 대건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2009년 K-리그 통합순위 6위 

2009년 피스컵 코리아 2009 8강

2009년 하나은행 FA컵 32강

2009년 2군리그 우승

2009년 U-15팀 광성중학교 축구부 창단


2010년 소나타 K리그 통합순위 11위 

2010년 포스코컵 2010 예선 조별리그 C조 4위

2010년 하나은행 FA컵 8강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통합순위 13위 

2011년 러시앤캐시컵 2011 예선 조별리그 A조 4위 

2011년 하나은행 FA컵 16강


2012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통합순위 9위 

2012년 하나은행 FA컵 16강


홈 경기에서의 첫 승리 : 2004년 3월 1일 vs 감바 오사카

홈 경기에서의 첫 패배 : 2004년 5월 5일 vs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에서의 첫 승리 : 2004년 4월 17일 vs 성남 일화 천마

K리그에서의 첫 패배 : 2004년 4월 10일 vs 포항 스틸러스

K리그 통산 100승 : 2012년 8월 18일 vs 울산 현대 

최다 점수 차 승리 : 2004년 3월 1일 vs 감바 오사카(경기장 : 인천 문학 경기장, 스코어 : 4-0), 2010년 4월 18일 vs 포항 스틸러스(경기장 : 인천 문학 경기장, 스코어 : 4-0)

최다 점수 차 패배 : 2010년 3월 14일 vs 성남 일화 천마(경기장 : 탄천 종합 운동장, 스코어 : 0-6)


K리그 1호골 : 2004년 4월 17일 vs 포항 스틸러스, 안젤코비치

K리그 400호골 : 2013년 7월 21일 vs 제주 유나이티드, 권정혁


2009년 5월 4일 기준


1위 : 37,242명 - 2004년 5월 5일, vs 울산 현대 호랑이

2위 : 35,356명 - 2005년 11월 27일, vs 울산 현대 호랑이

3위 : 34,275명 - 2008년 3월 8일, vs 부산 아이파크


2013년 5월 14일 현재 K리그/리그컵 기준 인천 소속으로 출장한 경기 수 


1위 : 임중용 : 219경기

2위 : 전재호 : 212경기

3위 : 이준영 : 134경기

4위 : 노종건 : 132경기

5위 : 방승환 : 127경기

6위 : 김학철 : 125경기

7위 : 라돈치치 : 122경기

8위 : 김이섭 : 121경기

9위 : 안재준 : 99경기

10위 : 박재현 : 97경기

11위 : 윤원일 : 90경기

12위 : 안재준 : 89경기

13위 : 장경진 : 84경기

14위 : 정혁 : 83경기

15위 : 김상록 : 79경기


김현수 : 2004년

임중용 : 2005년 ~ 2008년 6월, 2009년 ~ 2010년 

노종건 : 2008년 6월 ~ 12월

이준영 : 2009년 ~ 2010년

전재호 : 2010년

배효성 : 2011년

정인환 : 2012년

김남일 : 2013년~


1 GK 권정혁

2 DF 박지수

3 DF 전준형

4 DF 김태윤

5 MF 김남일 (C)

6 MF 손대호

7 FW 남준재

8 FW 김재웅

9 FW 설기현

10 FW 이천수

11 FW 브라질 찌아고

13 DF 박태민

14 DF 김창훈

15 FW 진성욱

16 DF 이윤표

17 MF 문상윤

18 DF 한재웅

19 FW 브라질 디오고

20 DF 안재준

21 GK 조수혁

22 DF 유재호

23 MF 이석현

24 MF 구본상

25 MF 최종환

26 DF 전형섭

27 FW 한교원

28 FW         이효균

29 MF 이대명

31 GK 김교빈

32 DF 김주빈

35 DF 강영연

37 DF 강용

41 GK 윤평국


12번 :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축구팬과 서포터스에게 등번호 12번을 헌정하고 영구결번으로 결정했습니다.


구단주: 송영길 

사장: 조동암


감독: 김봉길

수석코치: 유동우

코치: 명진영

골키퍼 코치: 김현태

피지컬 코치: 반델레이

트레이너: 이승재, 김도완, 이동원

스카우터: 신진원


유소년 총감독: 박이천

U-18 감독: 신성환

U-18 코치: 임중용

U-18 골키퍼 코치: 김이섭

U-15 감독: 우성용

U-15 코치: 이성규

U-15 골키퍼 코치: 윤진호

U-12 감독: 김태종

U-12 코치: 최재영


취임은 공식 취임식 일자이며 취임식이 없거나 미상인 경우 공식 선임 일자를 기재합니다.


1대

독일 베르너 로란트 2003/09/25 2004/08/30 2004 초대 감독

대행

장외룡 2004/08/31 2005/01/02 2004 로란트 감독 중도 사임으로 감독대행직 수행

2대

장외룡 2005/01/03 2006/12/28 2005-2006

대행

박이천 2007/01/04 2007/12/20 2007 장외룡 감독 축구유학 기간 중 감독대행직 수행

2대

장외룡 2007/12/21 2008/12/09 2008

3대

세르비아 일리야 페트코비치 2009/01/29 2010/06/08 2009-2010 2009년 1월 7일 기술고문으로 영입 후 정식감독으로 선임

대행

김봉길 2010/06/27 2010/08/21 2010 페트코비치 감독 중도 사임으로 감독대행직 수행

4대

허정무 2010/08/23 2012/04/11 2010-2012

대행

김봉길 2012/04/12 2012/07/15 2012-현재 허정무 감독 중도 사임으로 감독대행직 수행

5대

김봉길 2012/07/16 2012-현재


이상 인천 유나이티드 FC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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