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이상혁 단독 인터뷰
“프로게이머로 살며 배운 것은
실패 역시 작은 성공이라는 것”
겸손.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28·사진)은 자신과 같은 청년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키워드로 이 낱말을 꼽았다. 그는 20일 국민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청년의 시기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시점이라 나도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관을 고민한다”면서 ‘겸손한 열정’을 갖고 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인 이상혁은 이달 초 세계 챔피언십(롤드컵)에서 다섯 번째 세계 제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e스포츠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칭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프로게이머로 살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실패 역시 작은 성공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혁에게도 부침이 있었다. 2013년 4월 만16세로 프로 데뷔한 첫해 롤드컵 세계 챔피언이 됐다. 2015년과 16년에도 내리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에 등극했다. 그 뒤 오랫동안 국제대회 우승에서 멀어졌다. 페이커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절치부심 끝에 7년 만인 지난해 챔피언에 복귀했다. 지난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올해 롤드컵 결승전에서도 소속팀 T1의 우승을 이끌었다. 역대 최연소 챔피언이었던 그가 11년 만에 최고령 우승자이자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것. 중국 중계진은 “제일 긴 강, 제일 높은 산이었던 페이커가 바다 끝에 이르러 하늘의 벽이 되고 스스로 봉우리가 됐다”라고 했다.
이상혁은 이날 외교부가 서울에서 개최한 ‘2024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대화’ 기조연설자로 나서 “무수한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웠다”며 “그것이 배움과 성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갈등과 혐오의 세태를 보면서, 어떻게 본인이 항상 옳다고 단언하는지 그런 것이 조금 안타까워요. 겸손이라는 키워드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무대 밖에서 스물여덟 살 청년일 뿐인 이상혁은 “올 한 해 팬 여러분의 응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되게 짧다고 생각하거든요. 더욱 짧은 청년의 시간,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시고, 열정을 가지고, 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남들을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외교부가 주최한 행사에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28·T1)이 기조연설자로 나선 것은 파격이었다. 20일 서울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2024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대화’는 국제사회가 당면한 과제와 해법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논의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행사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글로벌 청년 대화’가 주제였다.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에 한국의 청년세대가 어떻게 기여할지 논의하는 자리. e스포츠계의 최고 인기 스타인 이상혁이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참가 신청이 폭주했다.
이상혁 선수는 무대를 마친 뒤 이어진 본보와의 인터뷰 자리에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연설을 위해 차려입은 반듯한 양복과 남색에 줄무늬가 그려진 넥타이 차림 그대로였다. “살면서 가장 떨렸다”고 말했다.
“연설문을 따로 쓰지 않고 오늘 말하고 싶은 키워드만 생각하고 적어 왔어요. 어젯밤 연설문을 준비하다가 미리 써놓은 글을 읽으면 딱딱하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자신과 같은 또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도전과 겸손이었다. 평소 책읽기를 즐겨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선수는 “청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봤다. 책을 읽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 상담을 받았을 때 들은 이야기 등 자연스럽게 내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된 내용을 얘기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상 1등이 돼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저는 이기는 게 좋은 것이고, 지는 것은 나쁜 것, 실패는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막상 실패로부터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고, 실패 덕분에 더 잘하게 됐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는데, 저는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e스포츠는 전 세계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새로운 장르다. 최고 스타인 이상혁 역시 e스포츠 무대 밖에서는 전쟁, 기후변화, 노령화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가 강조한 ‘겸손한 도전’은 글로벌 이슈 해결에 나서야 할 청년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혁은 e스포츠 최고참 선수다. 전 세계 수만 명의 팬이 모인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강심장이지만, 글로벌 이슈를 얘기한다는 거창한 무대는 그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는 “연설이라는 게 무대 위에서 혼자 말하는 일이다 보니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더라. 이렇게 긴장감을 느껴본 게 오랜만이다. 나 역시도 재밌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도전 자체를 즐기자는 메시지 그대로였다.
이상혁은 이달 초 e스포츠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에 나서기 전 “네 번째 우승은 팀을 위한 것이었고, 다섯 번째 우승은 여러분(팬)을 위한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져 화제가 됐다. 사실 그는 프로스포츠 선수로서 쟁취할 수 있는 영광은 모두 얻었다. 정상에서도 더욱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팬이다. ‘팬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강조한 그는 “나의 우승 동기는 항상 똑같다. 앞으로도 팬들을 위해서 우승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슬럼프도 여러 번 겪었다. 지난해에는 손목 부상으로 프로게이머 인생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상혁은 “좋은 팀원들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많이 배웠다”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스스로를 변화시킨 게 주효했다”고 회상했다.
e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MZ세대의 아이콘으로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지 않게끔 그는 늘 엄격한 삶의 잣대를 자신에게 세운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뇌과학이다. ‘뇌는 달리고 싶다’ ‘운동화를 신은 뇌’ 같은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달리기와 관련된 책들도 읽는다. 그는 “도파민이란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일 만큼 전 세계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에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건강은 경기력과 직결되는 요소여서 (프로게이머에게도) 중요합니다. 신체와 정신은 절대 분리할 수 없으니까요. 최근 연구 결과를 봐도 몸을 움직이면 인지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요. 프로게이머들은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상처를 잘 입습니다. 몸을 움직여서 운동하지 않으면 컨디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집니다. 내년에는 재활운동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건강, 도전, 겸손. 그와 같은 청년세대가 공감하는 키워드다. 그는 “올 한 해 동안 응원을 보내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고 싶다”고 덧붙였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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