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라스칼’ 김광희의 이야기 ②

Talon 2024. 12. 15. 22:00

LCK의 ‘철벽’ ‘솔킬 머신’으로 불리며 활약한 ‘라스칼’ 김광희가 2024년 DRX에서의 활동을 끝으로 잠시 헤드셋을 벗는다. 1997년 10월생, 27세인 그는 내년 입대를 예정하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선수 활동을 이어가는 게 현재로서는 첫 번째 계획이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KT 롤스터 연습실에서 김광희를 만났다. 그는 요즘 KT의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다. 김광희를 만나 그의 지난 프로게이머 인생을 처음부터 돌이켜보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②편에서는 2022년 KT, 2023~2024년 DRX에서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그의 향후 계획을 들어본다.

 

2022년 KT 입단, 올-LCK 팀 선정

2020~2021년의 반지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김광희도 2021년 겨울 젠지와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자유 계약(FA) 신분이 된 그는 KT 롤스터에 합류했다. 롱주 게이밍 시절의 지도자였던 강동훈 감독과 재회했다. “2021년은 제가 심적으로 많이 괴로웠던 해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서 ‘내가 프로 생활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어요. 스스로 선수로서의 경쟁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KT 사무국 분들과 강동훈 감독님께서 제게 긍정적인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 팀이라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22년의 KT는 김광희와 ‘커즈’ 문우찬, ‘아리아’ 이가을, ‘에이밍’ 김하람, ‘라이프’ 김정민으로 로스터를 구성했고 도중에 ‘빅라’ 이대광을 콜업했다. “로스터가 처음 구성됐을 때 선수들 각자가 갖고 있는 ‘고점’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잘할 거 같다고 생각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즌을 시작했죠.”

KT는 LCK 스프링 시즌을 7승11패, 7위로 마무리했다. 선수들이 각자 다른 팀에서 모였기에 게임 방정식의 풀이법이 제각기 달랐던 게 고전의 이유였다. “다들 에고(ego)가 셌어요. 서로 양보해야 할 부분도, 맞춰가야 할 것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선수들의 ‘체급’은 좋았기에 스프링을 7위로 마쳤음에도 서머 시즌을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색깔을 하나로 맞춘다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KT는 서머 시즌에 10승 8패를 해 5위를 기록했다.

김광희 개인으로서는 슬럼프에서 탈출한 해였다. 스프링 시즌에 LCK 올-프로 세컨드 팀, 서머 시즌에 서드 팀으로 선정됐다. “팬분들은 저의 최전성기로 2022년을 꼽아주시지만 저는 2020년이 첫 번째, 2022년이 두 번째라고 생각해요. KT에서는 제가 더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프로 신에는 분명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거든요. 그런 보이지 않는 데서 팀에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는 세컨드 팀이었던 스프링 시즌보다 서드 팀으로 뽑혔던 서머 시즌을 더 만족스럽게 여긴다. “처음에는 ‘내가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는데도 왜 졌을까?’에 대한 고민과 고찰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팀원들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KT가 이기기 위한 방향을 함께 찾아봤어야 했는데. 스프링 시즌에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드렸지만 그런 점이 부족했다면, 서머 시즌엔 개인 퍼포먼스가 줄어든 대신 팀을 더 잘 조율했다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팀이 강해진단 느낌도 받았죠.”

 

시작과 끝은 DRX

2022년 겨울 국내 두 팀, 중국 한 팀에서 그에게 오퍼를 보냈다. 친정팀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다년 계약을 제시한 DRX 쪽으로 마음이 갔다. “선수분들은 공감하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선수도 스토브리그에 받는 스트레스가 정말 커요. 팀에서 우선순위로 뽑는 포지션이 있잖아요. 탑은 보통 우선순위로 두지 않아요. 선수가 정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좋은 성적을 낸 게 아니라면 제 경험상 탑라이너를 우선 순위로 두고 팀을 구성하진 않아요. 다른 포지션이 완성되는 걸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서운함과 불안함이 있어요.”

 

“프로게이머에게 1년은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시간이에요. 이 중요한 시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결정으로 바뀌는 게 기분이 썩 좋진 않아요. 그래서 다년 계약을 맺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DRX는 다년 계약을 선호하는 팀이었어요. 서로 생각도 잘 맞았던 셈이죠. 거기에 제가 처음으로 LCK 선수 인생을 시작했던 팀이 DRX니까 그곳에서 입대 전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김광희는 ‘크로코’ 김동범, ‘페이트’ 유수혁, ‘덕담’ 서대길, ‘베릴’ 조건희와 한 팀이 됐다. 전년도에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뭉친 만큼 내부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김광희는 “적어도 4~5등은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조건희는 월즈 우승을 하고 남았고, 김동범은 리브 샌드박스의 에이스였어요. 다른 선수들도 2022년에 워낙 잘했으니까 최소 플레이오프 진출에 4등까지는 노려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습에 들어갔었죠.”

김광희의 예상과 달리 DRX는 스프링 시즌을 3승15패, 9위로 마쳤다. 돌이켜보면 김광희의 기나긴 프로 커리어 중에 외풍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 해가 더 적었다. DRX의 2023년 스프링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스프링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팀원들끼리 얘기했던 게 있어요. 저는 팀원들 모두 체급, 피지컬, 교전 능력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못하는 선수들은 아니다. 서머 시즌엔 그 어떤 외부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자’고 했어요.”

 

하지만 서머 시즌에 찾아온 풍파는 더 요란했다. 유수혁 대신 ‘예후’ 강예후를, 서대길 대신 ‘파덕’ 박석현을 기용하기로 했다. 그는 지금도 그점을 몹시 아쉬워한다. 여차저차 6등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긴 했지만 김광희는 기쁘기보다 속상했다. “우리가 잘해서 서머 시즌에 치고 올라갔다기보다는 다른 경쟁팀들도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부진한 덕을 봤다고 생각해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도 되게 속상했거든요. 자력 진출을 한 게 아니라 아마 KT가 피어엑스를 잡아줘야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는 상황이었을 거예요.”

 

DRX가 광동 프릭스를 2대 0으로 이기고 KT가 피어엑스를 이겨야 한다는 플레이오프 진출 경우의 수가 충족됐다. 당시 KT는 피어엑스전 1세트를 이기고 정규 리그 1위를 확정 짓자 2세트에 전원 2군을 내보냈다. “저는 KT가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롱주 시절에 팀 성적이 좋았을 때 출전 기회를 받고 성장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그 경기 결과에 영향을 받는 입장이 되니까 너무 속상한 거예요. 그래서 플레이오프에 갔는데도 눈물이 나왔어요. 경기 후 사옥에서 팬미팅을 했는데 저 혼자 울기 직전이었던 게 기억나요. 이겼는데도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괴로웠던 2023시즌을 뒤로하고 그는 새로운 팀원들을 맞았다. 2024년을 함께하는 건 신인 ‘스펀지’ 배영준, ‘세탭’ 송경진과 강예후. 그리고 ‘테디’ 박진성, ‘플레타’ 손민우. “연습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게 느껴졌어요. 신인 선수들로선 정말 좋은 기회를 받은 거잖아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열정적이었어요. 박진성도 성적을 향한 열망이 강한 선수였어요. 그동안 패배에 잠식되어 가던 제게 어린 팀원들이 활력을 불어넣어 줬어요. ‘아, 함께 열심히 하면서 발전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지’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아서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신인 선수들의 열정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곳이 LCK이기도 했다. 3승15패, 9위로 스프링 시즌을 마쳤다. 김광희는 “결국엔 부족한 점들이 드러났다”면서 “그럴 때일수록 내가 팀을 이끌어줘야 했는데 나 또한 기량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에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팀의 우하향이 너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정말 좋은 선수들은 선수단에도 좋은 영향을 퍼트린다고 생각해요. 제가 예전에 갖고 있던 장점도 선수단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능력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장점이 희미해졌다 싶었어요. 올해 신인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예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설령 경기에서 지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밝은 느낌. 긍정적인 영향력을 팀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내가 여전히 발전할 수 있고 여전히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기분과 성적이 반비례한 해이기도 했다. 사실 2024시즌 김광희의 개인 기량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서머 시즌부터 2군 탑라이너 ‘프로그’ 이민회와 번갈아가며 투입되기 시작했다. “처음 교체를 당했을 땐 화가 많이 났어요. 스스로도 플레이가 아쉽다고는 느꼈지만 한 세트만 치르고 교체될 만한 상황이었을까,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이런 감정을 쭉 갖고 있으면 제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작년에 교체됐던 동료들이 그랬듯 저도 제가 팀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어요. 이민회는 성격이 밝고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수였어요. 곁에서 지켜보는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민회와 경쟁을 한다기보다는 제가 아는 것들을 다 알려주고 싶었어요. 처음 교체당했을 땐 화가 많이 났지만 나중에는 이 애들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응원했어요.”

 

팀도 개인도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해였지만 김광희는 2024년을 감사하게 여긴다. “점점 내려간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처음엔 너무 속상했어요. 나만의 장점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잃어간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하지만 긍정적이고 열정 있는 선수들을 만났고 덕분에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이번처럼 추락하진 않을 것 같아요. 누구나 인생에서 굴곡을 경험하잖아요. 저는 올해를 겪으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힘과 방법을 배웠어요. 웃음도 다시 많아졌고요.”

 

전역 후에도 프로 복귀 도전할 것

김광희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프로 생활을 했다. 그는 포지션별 최고의 팀원,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적수를 꼽았다. 우선 포지션별로 가장 뛰어났던 팀원으로는 ‘피넛’ 한왕호, ‘비디디’ 곽보성, ‘데프트’ 김혁규, ‘투신’ 박종익을 꼽았다. 그는 “‘케리아’ 류민석과 킹존 드래곤X 시절 함께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류민석이 연습생이었다. 한 팀으로 활동하며 가장 본받을 점이 많았던 서포터는 종익이 형이었다”라고 말했다.

까다로웠던 상대 5인으로는 ‘너구리’ 장하권과 ‘캐니언’ 김건부, ‘페이커’ 이상혁, ‘고스트’ 장용준, ‘베릴’ 조건희를 꼽았다. 탑라이너로 ‘제우스’ 최우제와 장하권을 놓고 고심하던 김광희는 결국 장하권이 더 힘든 상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2023년 이후로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모든 경기가 힘들게 느껴졌다. 2019~2022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이 가장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캐니언’ 선수는 틈이 안 보여요. 탑라이너는 공격적으로 플레이해서 상대 정글러의 턴을 빼앗거나 줄타기 플레이를 했을 때 살 확률을 높이거나 해야 하거든요. ‘캐니언’ 선수 상대로는 줄타기가 잘 안 통했어요. 리스크가 없는 플레이인데 허를 찔린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페이커’ 선수는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규격 외라고 느껴져서 뽑았어요.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성기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어떻게 연습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존경스럽기도 하고. 저도 ‘페이커’ 선수를 보면서 나중에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거든요. 그래서 뽑고 싶어요.”

김광희는 내년 입대를 예정하고 있다. 전역 후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의지가 있다. “저는 프로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신 내가 재능 넘치는 이들 상대로도 잘할 방법, 다른 선수들과 차별점을 둘 방법 등을 고찰하고 전략을 잘 세웠기에 롱런했다고 봐요. 보성이나 ‘칸’ 김동하, ‘프레이’ 김종인, ‘고릴라’ 강범현, 혁규 형처럼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많이 배웠고 ‘너구리’ 선수를 보며 그의 습관까지 따라 했을 정도였어요. 전역 후에도 프로 선수로서 이런 강점을 잘 살려서 현역 선수로 재도전하고 싶어요.”

 

“설령 프로 복귀에 실패하더라도 팬분들께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목표고요.” 그는 “신인 시절엔 ‘웃음이 예쁜 선수’라고 팬분들이 불러주셨다”며 겸연쩍다는 듯 웃었다. 이어 “신인 시절엔 팬분들께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렸는데 2021년 이후로는 그렇지 못했다. 팬분들도 많이 힘들어하시는 게 느껴졌다”며 “팬분들은 결국 저희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고 싶으신 것 아닌가. 그런 에너지를 더 많이 드릴 수 있도록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장 입대 전까지는 KT 소속의 스트리머로 활동한다. 그는 차기 시즌에 KT 팬들과 팀의 LCK 경기를 같이 보며 응원할 예정이다. 그는 내년 ‘퍼펙트’ 이승민, ‘웨이’ 한길과는 2022년에 KT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문우찬, 곽보성, 서대길과도 인연이 있어 새로운 KT 선수단과 각별하다. 김광희는 “이승민, 한길은 2022년부터 각광받는 유망주였고 나머지 선수들도 친분이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응원하고 싶은 한 명을 꼽으라면 서대길을 꼽고 싶다. 서대길이 시원하고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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