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축구감독 유상철

Talon 2013. 10. 17. 16:26

오늘 소개할 선수는 유비 유상철 선수입니다!

유상철 선수는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입니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준 선수 중 하나이죠.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뛸 수 있는 올라운드형 플레이어에요.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훈련을 통해 극복해냈고 2002년 FIFA 월드컵 폴란드전에서의 골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첫 승과 4강 달성에 일조했습니다.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1년 7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 프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나 2012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출생으로 응암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평소에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과 성씨가 '유'씨인 것에 착안해서 '유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또는, 유독 한일전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울 응암초등학교 졸업

서울 경신중학교 졸업

서울 경신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사회체육학과 졸업


대한민국 무대에서는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만 뛰었던 원 클럽 맨이었습니다. 1994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데뷔하여, 1998년 K리그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1999년 J리그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옮겨 2000년 J리그 준우승에 이바지한 뒤, 2001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활약하였습니다. 2002년 친정 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가 2003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재이적해 2003년과 2004년 팀의 J리그 2연패에 이바지한 뒤, 2005년 울산 현대로 재복귀하여 그 해 K리그 우승에 이바지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앓아 2006년 3월 12일, 상무와의 K리그 홈 개막전를 끝으로 울산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습다.


1998년 K리그 득점왕은 월드컵 이후 팀에 복귀해 부진한 공격진에 고심하던 감독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유상철 선수를 기용한 시즌

2002년 울산 현대 복귀 후는 전설적인 시즌. 8경기를 남겨두고 복귀하였는데.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도 경우의 수에 따라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복귀후 인터뷰에서 남은 경기 전승과 경기당 1골을 공언, 8경기 9골 기록. 경기당 1골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마지막 경기에서 스트라이커로 나와 헤딩으로만 해트트릭을 기록.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1998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하였습니다. 첫 월드컵이었던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전의 대참패로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어 분위기가 나쁜 상태에서 맞이한 벨기에전에서 동점 골을 넣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예선 1차전 폴란드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이바지했습니다. 월드컵에서 통산 2골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3월 30일, 우즈베키스탄과의 122번째 A매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습니다. 2006년 5월 26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경기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가져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습니다.



유상철 선수는 대한민국의 선수들 중 4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죠.


K리그 베스트 11에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부분에 모두 선정된 경험이 있고, 1998년에는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 중앙 수비수 등 대부분의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비수의 근성과 미드필더의 재간, 스트라이커로서의 결정력을 동시에 갖추었고, 대인마크 능력을 키웠습니다.


중거리 슛이 뛰어나며,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좀처럼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 점 또한 유상철 선수의 강점 중 하나이죠.


200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2005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하는 '2005 K-리그 유소년클럽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은퇴 후인 2006년에는 축구 해설자로 데뷔하여 활동하기도 하였고, 해피 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 코너에서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초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이죠.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중계를 맡은 JTBC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4년 ~ 1998년 울산 현대 호랑이

1999년 ~ 2000년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1년 ~ 2002년 일본 가시와 레이솔

2002년 ~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

2003년 ~ 2004년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5년 ~ 2006년 울산 현대 호랑이


1996년 AFC 아시안컵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대표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표


2009년 ~ 2011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2011년 ~ 2012년 대전 시티즌 감독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8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8년 FIFA 세계 올스타 선정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FIFA 월드컵 올스타 선정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02년 험멜코리아-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공격수 부문 선수상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4년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수상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우승 2회 

K리그 준우승 2회 

FA컵 준우승 1회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아디다스 컵 준우승 1회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 1회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A3 챔피언스컵 우승 1회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J리그 우승 2회 

J리그 준우승 1회 

일본 슈퍼컵 우승 1회 

A3 챔피언스컵 준우승 1회 


2000년 AFC 아시안컵 3위

2002년 FIFA 월드컵 4위


유상철 선수는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히딩크 감독이나 동료 선수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숨긴채 지내다가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자신의 한쪽 눈을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힘입어 남들보다 배로 더 힘들게 훈련에 임했으며, 그 후 2002년 FIFA 월드컵 당시에 소중한 한 골을 터뜨려 국민들의 꿈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10년 6월 9일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처음 밝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상 유상철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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