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전 야구선수 홍성흔

Talon 2016. 12. 13. 01:00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홍성흔 선수입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2008년까지 활약하였다가,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습니다.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이래 부동의 주전 포수였으나, 2008년부터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습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시즌 연속 골든 글러브 상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2012년 11월 19일 프로 데뷔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어 4년만에 친정 팀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면서 바로 주장직책을 맡았고, 김동주가 부진한 틈을 타 맹타를 휘두르면서 두산 베어스의 2년 연속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재학 중 2000년 하계 올림픽, 1998년 아시안 게임 등 각종 대회의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며, 1998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습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9년에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고,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두산 베어스의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입단 이후에는 그가 주전 포수 자리를 거의 독점하여 주전에서 밀린 진갑용과 이도형은 트레이드로 두산을 떠났습니다. 공수 양면에 능하고 파이팅이 넘치는 플레이와 잘생긴 외모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5년부터 포수 기량 문제로 김경문 감독과 잡음이 일기 시작했고 2007년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백업 포수였던 채상병이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 때부터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습니다. 그는 포수 포지션에 상당히 애착이 강해 두산 베어스 구단에 트레이드까지 요청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김경문 감독의 뜻을 받아들여서 2008년 포수에서 물러난 뒤,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전격 변경하였습니다. 2008년 시즌 3할3푼1리 8홈런 63타점을 기록하여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그 이전 2004년에 최다 안타왕에 올랐던 경험을 살려 뛰어난 성적을 내었던 것입니다.


2009 시즌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후,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두산 베어스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와 연봉 2억 7,900만원에 4년간 계약하였습니다. 배번은 49번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의 롯데행은 정수근이 도와 주었습니다. 그 때 두산 베어스에서는 보상 선수로 3루수 이원석을 지명하였습니다. 당시 집 앞으로 리무진을 보내여 롯데호텔 VIP룸으로 데려온 후 끈질기게 그를 설득하면서 열의를 보인 롯데 자이언츠를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이라며 고마워했고, 구단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겠다며 기쁨을 표시했습니다.

 롯데 이적 이후 2009 시즌 초에는 장타를 노리는 타격 매커니즘, 무릎 부상, FA에 대한 부담 등으로 잠시 부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복귀하여 시즌 내내 절정의 타격감을 유지하여 타율 0.371 12홈런 64타점의 호성적을 냈습니다. 특히 2009년 7월 16일 사직에서 열렸던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타점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고 10회말에는 끝내기 안타로 이적 후 첫 홈경기 수훈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즌 마지막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박용택 선수와의 타격왕 경쟁레이스에서 끝까지 출전을 고수, 2위로 마감했지만 수많은 팬들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연속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습니다.


2010 시즌

2010 시즌부터 외야수로 전업할 예정이었으나 캠프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 김주찬이 외야 수비의 한 축을 전담함에 따라 보류되었고, 지난 시즌에 이어 계속하여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였습니다.

 2010 시즌에는 스윙폭을 좀더 늘려 장타력을 보강함으로써, 2009 시즌 롯데 이적 첫 해 활약의 옥에 티로 지적되었던, 타율에 비해 적은 타점 생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즌 전반기가 종료된 2010년 7월 22일의 성적만으로도 이미 97타점을 달성하게 되어 지난해 시즌 전체 기간동안 올린 타점 64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개인통산 기록 면에서도 7월 6일 시점의 성적만으로도 최초로 한시즌 20홈런 고지를 넘기게 되었고, 데뷔 이후 가장 많은 타점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3번 타순에 주로 배치되어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롯데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담당하였는데, 이 클린업 트리오는 이른바 홍대갈포로 불렸고, 이 클린업 트리오는 전반기 올스타전 전까지의 성적만으로도 74홈런, 249타점을 합작하며 맹위를 떨쳤습니다. 2년차 징크스를 겪지 않고 오히려 더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어 FA 제도가 생긴 이래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가장 성공한 FA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큰 활약에 힘입어, 2010 올스타 투표에서 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는 영예도 누렸습니다. 그는 이러한 팬들의 호응에 보답하고자 7월 24일 올스타 전에서 등 뒤에 최다득표 감사 라고 적은 특수 주문 유니폼을 입고, 턱수염을 단 채 출전하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7월 24일 올스타전에서는 동군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홈런 2개와 3타점을 기록하였고, 9회말에 내야안타로 출루하여 황재균의 안타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06년에 이어 2010년 올스타전 MVP가 됨은 물론 올스타전 역사상 최초로 이적 전 팀과, 이적 후 팀에서 각각 올스타전 MVP가 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2010년 7월 30일에는 역대 2번째로 93경기만에 시즌 100타점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는 89경기만에 100타점을 기록했던 2003년의 이승엽 다음으로 빠른 기록입니다. 100타점 달성 이후에도 8월 월간 타율 .370을 기록하는 등 전혀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아, 이승엽의 KBO 최고 타점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8월 15일 광주구장 대 KIA 타이거즈전에서 9회초 윤석민선수에게 손등에 사구를 맞아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왼손목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판명되어 그 이후 1달 넘게 출장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상을 입은 8월 15일 당시의 기록은 타점 113점, 홈런 26개, 타율 .356였습니다. 부상을 입은 당시에는 시즌 아웃까지 우려될 만큼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였으나, 본인의 강한 재활 의지로 한달만에 부상에서 완쾌되었고, 9월 17일 대 한화 이글스전에서 32일만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2011 시즌

신임 양승호 감독이 좌익수로 기용함에 따라 초반 엄청난 타격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이후 지명타자로 다시 출장하면서 페이스를 끌어올렸으나 2010 시즌의 26홈런을 친 장타력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후반에는 병살을 한경기 2병살등 계속 병살을 생산하여 1시즌 22병살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안경현의 통산 누적병살 개수도 갱신하여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시즌기록은 .306 6홈런 67타점. 2012년 시즌을 마치고 다시 FA 자격을 얻었으나, 롯데와 이견을 보여 친정 팀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그와 이대호, 가르시아의 각 글자를 딴 롯데 자이언츠의 "홍대갈"타선은 이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2013 시즌

2012년 11월 18일 친정팀 두산 베어스와 4년 31억으로 FA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보상선수로 김승회를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시켰습니다. 이적하자마자 두산 베어스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시범경기에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기대했던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 실망만 사는 듯 했습니다. 4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8회 무사 1루에 최영필을 상대로 복귀 후 첫 홈런을 신고하였습니다. 그러고 다음날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5회 2사 만루 풀카운트 접전끝에 리즈의 몸쪽 공이 삼진판정이 되자 당시 주심이던 문승훈 구심에게 방망이와 헬멧을 집어 던지면서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냐?"라는 말과 함께 거칠게 항의를 하자 문승훈 구심은 바로 퇴장선언을 내렸습니다. 2013 시즌 첫 퇴장이자 본인의 프로 데뷔 이후 첫 퇴장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부진에 시달리다가 5월 3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4회 선두타자로 나와 상대투수 임찬규를 상대로 시즌 2호 홈런을 신고하고 그 이후에는 팀에 활력소를 넣으며 본인의 임무는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에는 주로 5번 타자로 나왔지만, 4번 타자로 나왔던 김동주가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해 4번 타자로 복귀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인도 4번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보여 다시 5번으로 내려가고, 4번 타자는 상대투수에 따라 오재일, 최준석이 출장하게 됩니다. 2013년 9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4회 한화투수 송창현을 상대로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만들어내며 한국프로야구 통산 200병살타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시즌 이후 5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어 냈으며, 이는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기 바로 전년도가 최근 한국시리즈 진출이었으며, 두산 베어스로 복귀한 2013년시즌에 주장으로써 5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습니다.


2014 시즌

2013 시즌 저조했던 득점권타율과 홈런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프링캠프부터 많은 훈련을 하였고 시즌 시작전 목표를 20홈런 80타점으로 잡았고 작년보다 좋은 득점권타율을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장타율 출루율 OPS 등 타격부문에서 2013시즌보다 향상하였습니다. 비록 팀이 6위에 머물며 4강에 진입하지는 못하였으나 개인에게 있어서 작년 0.299였던 타율이 0.315가 되는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특히 2010년 26홈런이후 첫 20홈런의 고지를 기록하였습니다. 2년 연속으로 두산 베어스의 주장 완장을 찼습니다. 2013년 시즌이 끝나자 팀의 주축선수였던 이종욱, 최준석, 손시헌이 떠나고, 김진욱 감독마저 경질이 되면서, 그의 부담은 배가 되었습니다. 5월 6일 롯데 자이언츠 투수 셰인 유먼을 상대로 개인통산 1000타점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는 KBO 리그 통산 10번째 기록이며, 종전기록은 롯데 자이언츠의 장성호였습니다. 시즌 초에 부진을 겪었으나 현재 칸투의 뒤를 받치는 5번 타자로서, 칸투가 없을 때에는 4번 타자로서, 또 후배들을 이끄는 주장으로서의 제 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정수빈이 그의 조언을 듣고 타격 슬럼프에서 탈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타고투저에다가 팀의 약한 불펜진으로 인해 팀 성적이 좋지 않았고 결국 2006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2015 시즌

2015년 6월 14일 잠실에서 최금강을 상대로 우타자 최초 2000안타를 달성했고, 2015년 9월 24일 사직에서 만루홈런으로 3000루타를 달성했고, 2015년 10월 18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자신의 포스트시즌 개인 통산 100안타를 자축하는 1점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2016 시즌

시즌 종료 후, 2016년 11월 21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서울공릉초등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서울 중앙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그는 FA 자격을 얻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그 해 겨울 캠프 때 방망이를 든 왼손이 중견수 쪽으로 뻗고 오른손은 1루 덕아웃 쪽으로 뻗는 타법을 고안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포수의 얼굴을 가리는 동작 때문에 사용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으나 그 해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때부터 자신이 개발한 타법을 선보였고, 이후 그의 타율이 무려 0.411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그의 특이한 타격법이 '갈매기가 날개짓 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팀의 연고지 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의 이름을 붙인 갈매기 타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친정팀 두산 베어스로 복귀하면서 타격법은 바뀌었고 이에 갈매기 타법대신 베어스를 의미하는 웅담 타법이라는 신설명칭이 탄생하였습니다.


2009년 9월 25일 잠실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연속 볼넷으로 출루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상대 팀의 박용택과 타격왕 경쟁 중이었는데, LG 트윈스 투수들은 박용택의 타격왕을 밀어주기 위해 그에게 노골적으로 볼넷을 허용하였고, LG 트윈스 김재박 감독 또한 박용택을 출전시키지 않아 그 날 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홍성흔이 볼넷으로 1루에 나갈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그가 인터뷰에서 "내가 부산에서 못친 게 후회된다. 내가 타격 1위였어도 팀 동료들이 도와줬을 것"이라며 자책하였지만, 롯데 자이언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창피한 작전"이라며 분노하였습니다.

2009시즌 3할 7푼 1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타점은 64점에 그쳤습니다. 이는 앞 타순의 이대호가 100타점을 기록하는등 본인에게 찬스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탓도 있으나 짧은 스윙폭으로 인해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2010시즌 시범경기부터 스윙폭을 좀 더 늘린 스윙을 선보였으나 아주 낮은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뒤 새로운 타격 폼에 적응하여 시즌 중간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이대호와 타격 주요 부문에서 1위를 다투는등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2008년 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3시즌 연속 타격 2위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자신은 KBO에게 3년 연속 타격 2위가 세계신기록이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3월 8일 부산에서 불법 유턴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2013년 4월 5일 잠실 LG전 5회초 레다메스 리즈와의 풀카운트 승부끝에 삼진 아웃을 당하자 문승훈 주심에게 바락바락 성질을 내며 항의를 하다 프로 데뷔 첫 퇴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KBO에서 징계를 벌금 1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질타를 받았습니다.

2015년 5월 28일 마산 NC전 7회초 에릭 해커와의 벤치클리어링으로 징계를 받게되었습니다. 하지만 KBO에서 벌금 1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질타를 받았습니다.


부인 : 김정임

딸 : 홍화리

아들: 홍화철


2009년 《나는 갈매기》 ... 본인 역

2014년 《오늘의 연애》 ... 놀이동산 남 역


이상 홍성흔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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