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선수 이범호

Talon 2017. 11. 25. 21:54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꽃범호 이범호 선수입니다~!


KBO 리그 KIA 타이거즈 소속이며 포지션은 내야수, 지명타자입니다. 명성에 비해 약간 낮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나, 선구안과 홈런 파워로 커버하며 특히 득점권 타율이 매우 높은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대 프로 야구 준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은 홈런 수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4년 홈런 23개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과 리그 최정상급 수비를 갖춘 3루수입니다.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팀 내 2루수는 박기혁이었습니다.

 이후 경운중학교를 거쳐 대구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는 경북고 야구부와 대구상고 야구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전력을 가진 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전국 대회 성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고, 1997년 제 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 번 우승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성적은 2무 13패로, 프로야구 팀의 스카우트들은 낮은 전력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대구·경북 지역의 최대어는 경북고 투수 배영수였습니다. 예상대로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다른 선수들은 2차 지명으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한화 이글스 시절

2000년

200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상을 뒤엎고 한화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스카우트를 담당한 사람은 당시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였던 정영기였는데, 그의 단단한 하체를 보고 지명을 고집하였습니다. 예상 외의 높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계약금은 2차 1순위 지명선수 치고는 적은 금액인 1억 1천만원이었습니다.


2001년~2003년

2001년까지는 주로 대수비 또는 대타로 출전했고, 2002년부터 타격에 눈을 뜨기 시작해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김태균과 더불어 팀의 차세대 거포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2006년

2004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였습니다. 유격수로서 기록한 3할 타율, 23홈런은 이종범, 장종훈에 버금가는 역대급 기록이었습니다. 다만 유격수 수비에는 다소 헛점을 보여 3루수로 포지션을 옮겼습니다. 그 후로 꾸준히 20홈런을 치는 타자로 성장했습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안정된 수비와 타격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2007~2009년

2008년 125경기에 출장하여 2할대 타율, 120안타, 19홈런을 기록하였고,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 전년보다 57.1% 인상된 3억 3천만원에 계약하였습니다. 2009년 4월 3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회 1사 만루홈런, 6회 우월 솔로 홈런, 7회 3점 홈런 등 한 경기에서 총 3개의 홈런과 8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싸이클링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타석 주자가 한 명 있는 상태에서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오선진으로 교체되어 싸이클링 홈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09년 WBC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009년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소프트뱅크의 러브콜을 받아 3년 간 최대 5억엔의 조건으로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리그 적응 실패와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1군 48경기, 124타수, 28안타, 4홈런, 8타점, 1도루, 2할대 타율에 그쳤습니다. 그 후 2군에서 안타 44개, 2루타 9개, 3루타 1개, 홈런 10개를 기록하였지만 2군에 머무르다 잔류 논란 끝에 방출되었습니다.


KIA 타이거즈 시절

귀국한 후 친정 팀 한화의 복귀 제의가 들어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거절하였습니다. 2011년 1월 27일 KIA 타이거즈와 계약금 8억, 연봉 4억의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습니다.

 그의 KIA 타이거즈 이적으로 인해 2011년 초 한화 이글스는 프런트의 무능력으로 맹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원성이 빗발쳤습니다. 팀 몰락의 장본인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2013년 시즌이 끝나고 김상훈에 뒤를 이은 차기 주장으로 낙점되어 2014년 시즌부터 KIA 타이거즈의 캡틴으로 이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 강타자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KBS2의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였던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꽃미남 역할로 나온 개그맨 오지헌과 닮아서 "꽃미남 이범호"가 되었고, 팬들은 이를 줄여 '꽃범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07년 준 플레이오프 3차전을 중계한 MBC 스포츠+에서 홈런을 기록한 그를 클로즈업한 화면의 주변을 '꽃'으로 시각 처리하여 별명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구수창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고등학교


2005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상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상, 골든 포토상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수 선수


2003년 8월 3일 ~ 2008년 6월 4일 615경기 연속 출장

2009년 4월 10일 대전 롯데전 : 1,000 경기 출장


이상 이범호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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