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축구감독 김병수

Talon 2018. 1. 11. 12:42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비운의 축구 천재 김병수 감독님입니다~!


강원도 홍천초등학교 재학 시절 축구화를 처음 신은 김병수 선수는 축구를 잘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 미동초등학교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이 무렵 포항제철 감독이었던 한홍기가 그의 축구 실력을 눈여겨 보아 포항제철 선수들과 함께 연습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축구 명문인 경신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87년에는 제6회 KBS배 추계 중고축구대회에서 16강전 결승골, 준결승전 동점골 및 결승골, 결승에서는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대회 첫 우승을 이끌었고, 본인은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1988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카타르에서 열린 제26회 U-19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그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겪었던 발목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아픔을 무릅쓰고 운동에 매진했던 결과, 양쪽 발목 인대가 1인치 가량 늘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1990년이 되어서야 어릴 적 포철에서 인연을 맺었던 최순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87년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신태용,서정원, 노정윤 등과 함께 출전하여 8강 진출에 일조하였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경기 종료를 1분 남기고, 극적인 발리슛 결승골을 성공시켜 본선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크라머 감독이 '축구 인생 50년 만에 만난 천재다. 독일로 데려가고 싶다'고 극찬할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이후 다시 발목 부상이 재발하면서 끝내 올림픽 본선 엔트리에는 합류하지 못하였습니다.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1992년 제일은행에 입단하였으며, 이후 1993년 일본 실업축구팀인 코스모석유 축구단에 입단하였습니다. 훈련 없이 경기만 뛰면 되고, 발목 부상에 대한 수술과 재활 치료를 전부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이후 1997년 오이타 트리니타를 거쳐 선수 생활을 은퇴하기에 이릅니다. '비운의 축구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을 만큼 안타까운 은퇴였습니다.


선수 은퇴 1998년부터 모교인 고려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맡았습니다.


1999년부터 포항 스틸러스 산하 U-18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코치를 맡았고, 이후 포항 스틸러스의 2군 코치, 기술부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2008년 영남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였는데, 당시 영남대 축구부는 폐부 직전의 상태로 18명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간판만 내건 상태였으며, 1년 가까이 운동을 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춘계대학연맹전과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성적을 냈으며, 2010년 춘계대학연맹전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33년 만에 팀에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2012년에는 추계대학연맹전 우승을, 2013년에는 지방 팀 최초로 U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FA컵 2014에서는 8강에 진출하여 역대 대학팀 최고 성적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습니다. 신태용 전 성남 감독 이후로 스타 배출의 맥이 끊겼던 영남대는 김병수 감독의 지도 하에 신진호, 이명주, 임채민, 김승대, 손준호 등의 프로 선수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2016년 1월 9일 서울 이랜드의 3대 감독으로 선임되어 프로무대에서 감독으로 첫 출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승강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하였고, 11월 17일 구단 대표이사와 동반 사임하였습니다.


이상 김병수 감독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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