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칰금님 조인성 코치님입니다~!
아마추어 시절
서울 출신으로 수유초등학교,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거쳤습니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4학년 때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하였습니다.
LG 트윈스 시절
1998년 1차 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습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도루 저지 능력을 보여 주어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포수 스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데뷔 첫 시즌을 마치고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을 해결했습니다. 2007년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의 성적을 바탕으로 LG 트윈스와 최대 4년 간 34억원의 FA 계약을 맺었으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여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강인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리그 정상급의 도루 저지 능력으로 '앉아 쏴'라는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6일 KIA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심수창과 내분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말다툼 사건 이후 벌금형 등 내부 징계를 받고 심수창과 함께 2군으로 강등당한 후,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기존 그의 백업이었던 김태군을 주전에, 백업에는 박영복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기간에 김재박이 1군에 올리지 않겠다고 하여 사실상 시즌을 접었습니다. 박종훈 감독 부임 이후 심수창과의 불편한 관계를 완전히 청산한 그는 타격에서 부활하여, 2010년 4월 24일 역대 56번째로 통산 500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2010년 7월 15일 KIA전에서 투수 안영명을 상대로 3점 홈런을 치며 역대 62번째로 통산 1,500루타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9월 1일 포수 최초 한 시즌 100타점을 기록하여 2009년의 아픔을 씻어 냈습니다. 이 해 3할대 타율에 28홈런, 107타점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SK 와이번스의 박경완을 2표 차로 제치고 데뷔 13년 만에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아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SK 와이번스 시절
2011년 2번째 FA를 선언했으나 LG 트윈스와 큰 이견을 보여 결별했습니다. 2011년 11월 22일 3년 간 최대 19억원의 금액을 제시한 SK 와이번스와 FA 계약을 체결하고 이적했습니다. 이에 LG 트윈스에서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임정우를 받았습니다. 홍성흔처럼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보직을 옮긴다는 설이 있었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가 포수로 출장시킨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박경완 및 정상호의 부상으로 2012년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포수로 이름을 올렸으며, 박경완의 공백이 장기화되어 사실상 SK 와이번스에서도 주전 포수로 자주 출장했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10년 만에 포스트 시즌 및 한국시리즈에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2012년 한국시리즈에 출장하였던 그는 10년 전이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때처럼 그가 보는 앞에서 이승엽에게 홈런을 허용하여 또 다시 눈물을 삼켰습니다.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6월 3일에 이대수, 김강석을 상대로 한화에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8일 현역에서 은퇴 후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8년부터 두산 베어스 배터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잉'여 + '금'강불괴'를 합쳐서' '잉금님'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칰금님'이라고도 불립니다. 바깥쪽으로 볼을 많이 요구한다고 하여 '조바깥', '바깥양반'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신일고등학교
신일중학교
수유초등학교
이상 조인성 코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