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독수리 최용수 감독입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출생으로 금정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동래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파워 넘치는 직선 슈팅과 공중전에 강하고 문전에서 한번 기회를 잡으면 놓치는 법이 없다 하여 '독수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J리그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일본 언론 측에 의해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클럽 경력
연세대학교 축구부에서 3학년까지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 후 1994년 LG 치타스에서 K리그 드래프트 2순위로 입단하여, 그 해 K리그 신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7년 상무에 입대해 1999년 군 복무를 마치고 안양 LG 치타스에 복귀하였습니다. 2000년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K리그 MVP를 받게 되었고, 2000년 5월 24일 대전 시티즌와의 원정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5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습니다. 2001년 한국 선수로는 최고 금액의 이적료였던 3억 엔으로 일본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로 옮겨 첫 해에만 득점 순위 2위를 기록하는 등 큰 활약을 펼쳤고, 2001년과 2003년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습니다. 특히, 2002년 9월 14일 J리그 8,000번째 골을 넣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2003년 4월에는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AFC 4월의 선수'에 선정되가도 하였습니다. 2004년 J리그 디비전 2의 교토 퍼플 상가로 1년간 임대되었다가, 2005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였습니다. J리그에서 총 121경기에 출전하여 75골을 기록하였고, 2006년 1월 친정팀인 K리그 FC 서울의 플레잉 코치로 복귀하였습니다.
2006년 8월 5일, 61,235명의 대관중이 운집한 FC 도쿄와의 친선 경기를 끝으로 선수 경력을 마쳤습니다.
국가 대표 경력
U-20 대표로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 U-23 대표로 1996년 하계 올림픽 출전 각급 대표팀에서 엘리트 코스를 거쳤으며 1995년 1월 31일, 홍콩 칼스버그컵에서 콜롬비아와의 경기로 성인 대표팀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첫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이후, 1998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는 대회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아시아 최고 스트라이커의 명성 또한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98년 11월 13일 사실상 대표팀간의 경기였던 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여 골을 터트렸지만 프로 선발팀 명목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 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A매치 69경기 출장 27골을 기록하였습니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1996년 하계 올림픽
1998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지도자 경력
FC 서울
2006년 FC 서울에서 은퇴한 후, FC 서울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이장수, 세놀 귀네슈, 넬루 빙가다 등 여러 감독들을 보좌하였습니다. 착실히 지도자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으며 2011년 4월 26일에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이 되었으며 2011년 12월 9일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였습니다. 2012년 FC 서울 감독 부임 첫 해에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서울의 우승을 이끔으로서 선수, 코치, 감독 시절 단일 팀에서 모두 우승을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2013 시즌 우승 후유증으로 리그 전반기 부진을 겪었지만 여름부터 구단 최다 연승 타이인 리그 7연승을 기록하여 다시 선두권에 복귀 시켰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지만 결승전에서 광저우 헝다와 2무를 기록했으나 원정팀 다득점 룰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5년 7월 중국 장쑤 궈신 순톈로부터 2년 6개월 50억원의 연봉으로 감독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FC 서울에 잔류하였습니다.
최용수 감독은 장쑤의 파격적인 제안에 처음에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FC 서울과 차두리, 박주영등 자신 때문에 서울에 입단한 선수들과의 의리 때문에 잔류를 택하였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6월 22일 안산과의 FA컵 경기를 마지막으로 FC 서울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장쑤 쑤닝
2016년 6월 21일 장쑤 쑤닝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습니다. 부임 첫해 중국 슈퍼리그와 중국 FA컵에서 각각 준우승을 거두었습니다. 2017년 6월 1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해설가 데뷔
2018년 아시안 게임 S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합류, 재치있는 입담과 애드립을 발휘하며 해설가로서의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잔기술보다는 투지 넘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제압하고 어느 위치에서든 슛을 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으며, 뛰어난 신체적 조건과 테크닉으로 득점은 물론 포스트 플레이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힘있고 거침없는 플레이로 파워형 스트라이커로 분류되었습니다.
1996년 나이키의 글로벌 축구광고 선 대 악 편에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출연하여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2005년 6월에 결혼했으나 2006년 11월에 이혼했습니다.
2007년 12월 전윤정 씨와 재혼하여 2008년 6월 첫 딸이 태어났습니다.
클럽 경력
1994년 ~ 2000년 LG 치타스 / 안양 LG 치타스
1997년 ~ 1998년 → 상무
2001년 ~ 2004년 일본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2004년 → 일본 교토 퍼플 상가
2005년 일본 주빌로 이와타
2006년 FC 서울
국가대표 경력
1992년 ~ 1993년 U-20 축구 국가대표팀
1994년 ~ 1996년 U-23 축구 국가대표팀
1995년 ~ 2003년 축구 A 국가대표팀
지도자 경력
2006년 ~ 2011년 FC 서울 코치
2011년 FC 서울 감독대행
2012년 ~ 2016년 FC 서울 감독
2016년 ~ 2017년 중화인민공화국 장쑤 쑤닝 감독
해설자 경력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SBS 해설위원
선수
FC 서울
K리그1
● 우승 : 2000
● 4위 : 2006
FA컵
● 우승 : 1998
● 3위 : 1997, 1999
리그컵
● 우승 : 2006
● 준우승 : 1994, 1999
● 3위 : 1998아, 1998필, 2000
슈퍼컵
● 준우승 : 1999
대한민국
FIFA 월드컵
● 4위 : 2002
코치
FC 서울
K리그1
● 우승 : 2010
● 준우승 : 2008
● 4위 : 2006
리그컵
● 우승 : 2010
● 준우승 : 2007
● 3위 : 2009
감독
FC 서울
K리그1
● 우승 : 2012
● 3위 : 2014
● 4위 : 2013, 2015
FA컵
● 우승 : 2015
● 준우승 : 2014
AFC 챔피언스리그
● 준우승 : 2013
● 3위 : 2014
개인
1994년 K리그 신인선수상 수상
1995년 K리그 인기상 수상
1999년 FA컵 득점상 수상
1999년 올해의 키카골 특별상 수상
200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0년 K리그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1년 체육인의 날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12년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3년 AFC 아시아 올해의 감독상
이상 최용수 감독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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