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감독 조범현

Talon 2018. 10. 2. 09:58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조갈량 조범현 감독입니다~!


1960년 10월 1일 출생의 대구 출신으로 대건고등학교의 포수를 맡던 조범현 선수는 대건고등학교 야구부의 해체설로 팀내 분위기가 흉흉하자 동기생 몇 명과 함께 공주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공주고등학교에는 김경문이라는 걸출한 동급생 포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결국 몇 달 만에 조범현 선수는 다시 대건고등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부터 나이는 2살 많지만 프로 입단 동기이자 평생의 라이벌인 김경문과의 묘한 인연이 시작됩니다. 대건고 야구부가 결국 해체되자 우여곡절 끝에 서울 충암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는데 전학한 충암고등학교가 1977년 제7회 봉황대기 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인은 MVP를 차지하는 겹경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후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연인지 악연인지 또 다시 만나게 된 같은 팀의 김경문과 함께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로 주전 경쟁을 벌였습니다. 1990년 시즌 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투수 윤석환과 함께 현금 트레이드되었고, 1992년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하였습니다.


OB 베어스 시절이었던 1990년 6월 5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와의 연속 경기 1차전 도중 OB 투수 김진규가 던진 볼로 인한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강기웅의 빈볼 시비로 일어난 KBO 리그 사상 최악의 집단 난투극에 먼저 가담하여, 22분 가량 계속된 집단 패싸움 후 포수 김태형 등과 함께 경기장에서 즉시 퇴장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상벌 위원회에 의해 벌금 30만원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해의 시즌이 끝나고 그가 난투극을 벌였던 고향 팀으로 옮기게 되는 묘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충암고등학교 시절부터 김성근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OB 베어스 시절에는 프로 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에는 지도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성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던 김경문과 달리 그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1992년에 은퇴한 후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배터리 코치로 옮겼습니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다시 돌아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2003년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해 SK 와이번스는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 시즌 4위를 거두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며 최하위를 전전하는 팀의 리빌딩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송은범을 조부의 발인식에 보내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정규 시즌을 6위로 마감한 후 사임하고 김성근 감독에게 감독 자리를 넘겼습니다.

2007년 6월에 서정환 감독의 부름을 받아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로 임명되면서 KIA 타이거즈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KIA 타이거즈의 성적 부진으로 시즌 종료 후 서정환 감독이 사임하자 뒤이어 감독 자리에 올랐습니다.


2008년 시즌에는 KIA 타이거즈 주축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과 부진으로 시즌 6위로 마감하였습니다.


2009 시즌 전반기가 시작되면서 김상현을 트레이드하여 친정 팀 KIA에 복귀시킨 후 용병 투수 구톰슨, 로페즈를 비롯한 선발 투수진의 안정과 최희섭, 김상현의 뛰어난 활약, 잇따른 대타 작전의 성공 등 짜임새 있는 팀의 바탕으로 '조갈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2009 시즌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그의 감독 생활 첫 부임 팀이자, 스승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를 꺾음으로써 팀의 10번째 우승이자, 감독 생활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하여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2010년 KIA 타이거즈는 주축 내야수 김상현의 부상, 그리고 투수 윤석민의 자해 소동, 로페즈의 덕아웃 의자 난동 등으로 인하여 16연패를 기록하였고 예상치 못해 KIA 타이거즈 팬들이 과도한 사퇴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서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어 금메달을 이끌어 이러한 논란을 가라앉히게 됩니다.


2011년 전반기를 1위로 마친 KIA 타이거즈는 주축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후반기 4위로 시즌을 마치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1승 3패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그 해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에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따른 일부 극성 팬들의 사퇴 압박으로 인해 준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었으나 결국 물러나게 되었고 그 이후 KBO의 육성 위원장으로 위촉되었습니다.


2012년 11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훈련 때 포수 인스트럭터로 합류해 한 달 동안 삼성 라이온즈의 젊은 포수들을 가르쳤습니다. 포수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2013 시즌 삼성 라이온즈 포수들의 기량 향상을 도왔습니다.



2013년 8월 2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포함 총액 15억 원에 계약을 맺고 신생 팀 kt 위즈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하지만 1군에 참여한 2시즌 동안 장성우의 사생활 공개, 오정복의 음주 운전, 김상현의 자위 행위 등 선수단 내에서 잡음이 있었고,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해 2016 시즌을 마치고 재계약하지 못했습니다.


대구초등학교

대건중학교

충암고등학교

인하대학교


이상 조범현 감독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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