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e스포츠에서 한국의 힘은 여전했다. FPS 장르에서 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한국은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오버워치 리그에서도 한국인으로 구성된 뉴욕 엑셀시어가 정규 시즌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런던 스핏파이어가 출범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 밖에도 한국인 선수들은 많은 팀에서 활약했고, 출범 시즌이 끝난 이후 진행된 이적 시장과 신규 창단 팀에서 한국 선수들이 중심이 될 정도였다.
이러한 오버워치 내 한국 열풍은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팀의 팀 코칭스태프 중 한국인의 비중이 상당하다. 뉴욕 엑셀시어 유현상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오버워치 APEX 시절 LW팀에서 코치로 활동한 유현상 감독은 2016년과 2017년 두 해 모두 오버워치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어 올해 출범한 오버워치 리그에서도 팀을 정규 시즌 1위로 이끌었다. 아쉽게도 유현상 감독의 뉴욕 엑셀시어는 포스트 시즌 준결승에서 필라델피아 퓨전에게 패하며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버워치 월드컵 인천 예선 전승으로 한국 대표팀을 블리즈컨 현장에서 열리는 8강 경기로 진출시켰다.
뉴욕 엑셀시어 감독과 오버워치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이끌며 바쁘게 지내는 유현상 감독. 그가 오버워치를 선택하고 팀을 이끌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버워치 월드컵 일정을 위해 애너하임으로 출발하기 전 유현상 감독을 만나 오버워치 리그와 그의 e스포츠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뉴욕 엑셀시어 헤드코치, 한국으로 치면 감독인 유현상입니다. 소속팀인 뉴욕 엑셀시어는 내년 시즌을 위한 선수 구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지금은 오버워치 월드컵 코치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먼저 오버워치 리그 출범 시즌에서 정규 리그 1위, 그리고 포스트 시즌 4강까지 팀을 올렸습니다. 좋다면 좋은 성적이고 아쉽다면 아쉬운 성적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일단 긍정적인 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새로 8개 팀이 생기면서 선수 보강이 정말 힘들어졌는데, 거의 모든 팀 구성원들이 팀에 남아서 내년에도 최소 최종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올해도 스테이지3까지는 잘했는데, 마지막인 스테이지4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이기다보니 선수들이 지고 다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 부분을 잘 챙겨주는 게 코칭스태프의 일인데 제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 흔들린 게 아쉽습니다. 그래도 게임단 측에서는 괜찮은 결과였다고 저와 선수들을 위로했습니다. 연고지이자 결승전이 열리는 뉴욕에 갔을 때도 팬들이 계속 응원해줬습니다.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다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했죠. 길거리에서도 알아보는 팬들이 많았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음 시즌에는 꼭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오버워치 리그 출범 이후 거의 1년이 지났는데, 지금 같은 날이 올 거로 예상했나요? 오버워치 APEX에 출전하던 LW 시절에는 힘든 일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오버워치 리그는 상상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지역 연고제로 리그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오버워치 리그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죠. 출범 시즌보다 리그 가입비가 비싼 상황에서도 8개 팀이 새로 리그에 진입했고, 시청자 수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죠. 오버워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국내 대기업 위주의 리그가 생길 거로 예상했는데, 전세계 규모의 기업들이 리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 상상 이상이고, 인터뷰하는 지금도 꿈에 있는 거 같습니다.
2016년 오버워치가 출시되기 전에도 다른 게임을 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 오버워치는 어떻게 시작하셨고, 선수가 아닌 코치를 하게 된 이유는 어떻게 되나요
'시걸' 브랜든 라니드나 '플라워' 황연오, '파인' 김도현과 같이 팀 포트리스2를 하다가 오버워치로 넘어왔습니다. 블리자드에서 만든 게임이니만큼 e스포츠 무대가 생길 거는 확실하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있지만 자연스레 먼저 선수로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있고 집안 사정도 있으니 빠르게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4년 동안 팀장을 한 경력도 있는 데다가 같이 활동하던 동료들이 제가 코치 역할을 해주길 바라길래 코치로 전향했습니다. 잠재력 있는 선수를 키워보고도 싶었고요. 코치 전향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래도 서울 다이너스티의 류제홍 선수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하고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고있는 걸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죠.
한국에서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팀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저도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죠. 말이 코치지 팀에서 빨래도, 요리도 해야 했고, 코치 일도 해야 했죠. 그래도 선수들과 오버워치의 잠재력을 믿고 힘든 시기를 버텼습니다. 오버워치 리그 소식도 들었고, 블리자드에서 하는 일이니만큼 잘 될 거라는 희망 하나로 버텼죠. 점심 즈음에 일어나서 식사 준비하고 빨래하고 저녁 식사를 만들고 시장도 본 후에 밤에는 선수들의 연습까지 봐줘야 했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쉴 수 있으면 다행인 시절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쉬지 않고 일해봤는데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인 데다가 중퇴한 대학을 계속 다닌다는 생각으로 보낸 시절이었습니다.
힘든 생활을 지낸 만큼 오버워치 리그 제의를 받았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났을 거 같습니다. 뉴욕 엑셀시어에서 인수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제의를 받기 전까지는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어요. 누가 팀을 만들고 어디를 연고지로 한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어서 뜬구름을 잡는 느낌이었거든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좋지 않은 팀 환경에서 힘들어했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생활이기에 더 힘들어했죠. 선수들이 어리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동요했는데, 팀에서 인수 제의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심지어 뉴욕 말고도 몇 팀에서 더 관심을 보였고, 뉴욕 게임단 측에서 한국까지 와서 보여준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세계 최고의 도시인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팀에 우리가 들어간다는 생각에 다른 팀은 생각도 안 들었어요.
장기간 외국 생활을 하면 쉽지 않을 텐데, 한 시즌을 해외에서 보내니 어떠시던가요.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 해를 외국에서 보내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거 같습니다
팀에서 정말 지원을 잘해줬어요. 시즌 중반까지는 식사를 한식 케이터링으로 했는데, 이후부터는 직접 요리를 해주시는 분이 오셔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덕에 정말 집밥을 먹는 느낌이었어요. 선수들도 좋아하고요. 시즌 도중에 구단에서 얼마간 지원해줘서 선수들이 한국에 다녀오기도 했죠. LA팀들과 하면 어웨이 경기 분위기였지만, 뉴욕 팬들이 전해주는 응원을 보고 열심히 했죠. 게임단에서도 팬이 있어야 선수가 있다고, 처음 팀에 영입할 시기부터 소개 영상을 만들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팬과 성적을 모두 잡은 팀으로 인정받아 다행입니다. '파이브 데들리 메놈즈'라는 이름의 팬클럽인데, 스테이지1 서울전에서 만들어 준 응원 영상을 SNS에서 보니 정말 뿌듯했어요. 미국 출신 선수도 아니고 한국 출신인 뉴욕 연고지 선수들인데도 그렇게 응원해주는 걸 보니 정말 고맙더라고요.
패치 적응은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게 팀의 능력입니다. 시즌 중이라도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패치가 아니고 합리적인 한 적응해야 하는게 숙제입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우승을 하기에도 충분했는데, 중간에 팀 분위기가 흔들렸을 때 제가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정말 아쉽습니다. 필라델피아 퓨전과의 준결승에서 패배하고 나서 선수들이 정말 아쉬워하더라고요. 정규 시즌에 그렇게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결승에 가지 못해서 그랬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시작이고 다음 시즌에 더 열심히 해서 우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고, 선수들도 이해해주더라고요. 이번에 한 번 좌절했으니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오버워치 리그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뉴욕 팬들은 압도적인 응원을 보내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시즌 후 뉴욕에서 팬미팅도 진행했는데, 팬들의 열기는 어땠나요
출범 시즌 결승 이틀 전 뉴욕에서 팬미팅을 진행했죠. 팬들이 정말 많이 왔고, 즐거웠던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뉴욕 엑셀시어 팝업 스토어도 열었는데, 더운 여름 날 소나기까지 왔는데도 팬들이 계속 줄을 서서 팝업 스토어를 방문했죠. 그 줄이 한 블럭을 덮을 정도였습니다.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죠. 포스트시즌에서 지고 정말 상심했는데, 팬들의 모습을 보고 내년에 더 열심히 해서 꼭 결승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한국 선수지만 각각의 개성도 넘치고 뉴욕 자체가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곳이라 팬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도 다시 뉴욕 엑셀시어와 내년을 같이하기로 했죠.
내년에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시겠다고 했는데, 내년에 라이벌이 될 팀과 가장 난관이 될 팀을 꼽아보시자면
다음 시즌에도 저희 라이벌은 런던 스핏파이어고, 모든 팀이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희에게 좌절을 안긴 필라델피아 퓨전과의 경기는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팀에서도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요. 팀에서 해준 지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뉴욕 메츠 홈구장인 시티 필드에서 한 시구였죠. '새별비' 박종렬 선수가 시구를 했는데, 그 옆에서 제가 있었죠. 야구 검표 알바를 했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이번 일로 기존 스포츠와 e스포츠의 간격이 좁혀졌다는 느낌을 받은 행사였죠. 박종렬 선수와 같이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제가 역사의 한순간에 서 있었다는 기분이었죠.
오버워치 리그가 진행되면서 한국 선수와 해외 선수의 실력 차가 좁혀진 거 같습니다. 특히 이번 오버워치 월드컵 인천 예선에서 핀란드와 막상막하의 경기를 벌이셨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버워치 리그 전에는 오버워치 APEX가 최고였죠. 좋은 환경과 열정이 넘치는 선수끼리 치열하게 경쟁했거든요. 그 선수들이 모두 오버워치 리그에 가면서 경쟁 무대가 더 커졌습니다. 스테이지2를 끝나고 보니 해외 선수들도 엄청나게 경기력을 올려 더이상 격차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번 오버워치 월드컵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핀란드는 손발을 맞춰본 선수들이기에 더 상대하기 힘들었죠. 월드컵을 앞둔 지금 상황이 작년만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3년 연속 세계 최고 오버워치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승을 위해 가장 큰 난관은 4강에서 만날 미국이라고 봅니다. 작년 결승에서도 느낀 거지만, 6대 6이 아닌 6대 7의 싸움이죠. 관중들의 응원에 기가 죽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겨내고 우승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오버워치가 출시된 지 3년이 됐는데, 벌써 이 정도 규모라면 앞으로의 성장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가 있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죠. 팀 인수 금액도, 연고지 구매 금액도 커졌지만 오버워치 리그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곳은 더 늘었죠. 그러기에 선수들, 그리고 뒤에서 일하는 코칭스태프에 대한 관심도 더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뉴욕 게임단에서 이야기한 대로 팬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가까이는 올해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길게는 내년 오버워치 리그 우승을 꼭 이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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