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날쌘돌이 서정원 감독입니다~!
그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출생으로 남한산초등학교, 연초중학교, 거제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프랑스 르샹피오나에서 활약할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서정원의 성을 프랑스식으로 읽어 '세오'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100m를 11초대에 뛰는 빠른 스피드 때문에 '날쌘돌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양발에 모두 능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골을 쉽게 넣었고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는 약간 줄었지만 창의성 있는 득점으로 멋진 골들을 뽑아내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수 경력
1992년 LG 치타스에 입단하며 K리그에 데뷔하여, 1997년 아디다스 컵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군복무는 1994년 4월 11일 방위병로 입대하였으며 처음부터 상무에 입단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상무에 파견근무 형식으로 배속되어 미국 월드컵에 출전해서 스페인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규정에 방위는 원소속팀의 홈주말 경기에 출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LG 치타스 1994년 4경기와 1995년 4경기의 서울 동대문운동장홈경기에 출전하였습니다. 당시 서정원 선수의 월급은 8000원이라고 합니다.
1998년 1월 7일, 이적료 110만불에 프랑스 르샹피오나의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여 활약하였습니다. 데뷔전이었던 올림피크 리옹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등 그의 활약으로 스트라스부르는 강등권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르 로이 감독이 부임하게 되고 동양인인 서정원 선수는 이유없이 벤치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외국인 선수로는 아프리카 선수들만 중용했습니다. 결국 구단 측은 서정원 선수에게 스위스 슈퍼리그로의 임대를 제한했지만 당시 젊었던 서정원 선수는 젊은 혈기에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으로 무단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불화가 되자 결국 인종차별의 감독 불화로 프랑스를 떠나게 됩니다. 실제로 서정원 선수의 팀 동료였던 AS 로마에서 활약했던 올리비에 다쿠르,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던 발레리앙 이스마엘 등의 유능한 인재들도 이 당시 스트라스부르를 떠났습니다.
이후 1999년 2월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하였습니다.
당시 선수 본인이 밝히진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LG 치타스 시절 해외진출과 관련하여 구단 수뇌부들과의 의견충돌이 있었던 점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당초 복귀를 약속했던 안양 LG 치타스가 아닌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하였다는 설, 단순히 수원 삼성에서 연봉을 더 많이 주기로 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으며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 간의 지지대 더비가 형성되었습니다. 서정원 선수는 당초 그를 주시하던 유럽 구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다시 유럽으로 진출하려고 했으나 불운하게도 십자인대 부상으로 국내에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한편, 안양 LG 치타스 측은 스트라스부르 이적 당시 해외진출시 구단 몫으로 받는 이적료의 절반을 선수인 서정원 선수에게 지급하였고 그 대신 국내 복귀시 안양 LG 치타스로 복귀한다는 계약조건에 의거 지급했던 이적료의 절반을 위약금 명목으로 반환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정원 선수측에서 서정원 선수의 에이전트 이영중씨가 공개사과는 하되 위약금은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당시 소속 팀인 수원 삼성도 `제3자'라며 한 발 물러서면서 당사자들인 서정원 선수와 안양 LG 치타스 구단과 민사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법정 공방이 거듭되었으나 2004년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에 따라 서정원측이 패소하고 FC 서울에 3억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습니다.
판결 주문을 요약하면 해외 이적 계약조건에 따라 안양 LG 치타스 측은 이적료의 절반을 서정원 선수에게 지급하였고 이에따라 무조건적인 입단은 아니더라도 서정원 선수 측에서 성실히 복귀 입단 협상을 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1999년 2월초 이미 수원 삼성과 계약을 완료해놓고서 1999년 2월말 안양 LG 치타스 측에 수원 삼성에서 이런 조건으로 자신을 영입할려고 한다고 알리면서 복귀 입단 협상을 할려는 것처럼 속인 점 그리고 서정원 선수가 타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안양 LG 치타스 측에서 입게되는 여러가지 손해가 인정되어 서정원 선수 측이 패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손해배상액 산정은 어려워 여러가지 고려끝에 3억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19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 이후, 서정원 선수는 맹활약을 거듭하며 팀의 K-리그 2회 우승과 2001년과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 2002년 FA컵 우승에 일조하였습니다. 특히, 2002년 FA컵 당시 대회 MVP를 받았으며, 2003년 10월 26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2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고, 2002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5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SV 잘츠부르크에 입단하면서 다시 한 번 유럽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해 플레잉코치 계약을 맺고 SV 리트로 다시 이적하였고,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2005년 말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일간지에서 '올해의 최고 선수' 로 선정되었고,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스포츠 주간지에서 리그 내 모든 선수 가운데 평점 1위를 받기도 하였으며, 05-06 시즌이 끝난 뒤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스포츠 전문 주간지에서 '오스트리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006년, 팀의 UEFA 인터토토컵 우승에 일조하여 팀의 사상 첫 UEFA컵 진출에 공헌하였고, 2006-07시즌 작년에 2부에서 올라온 팀을 4위까지 올리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독일 분데스리가 1부, 2부에 팀들까지 관심을 보였지만 지도자 생활 공부를 위하여 심사숙고 끝에 2007년 5월 SV 리트와 결별한 뒤, 2007년 7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유럽에 남아 지도자 수업을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해외진출 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웨덴전 이후, FC 바르셀로나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던 것과 바이어 04 레버쿠젠 을 비롯한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군 문제와 당시 국내 축구 제도에서는 구단이 선수의 권리를 모두 가졌던 올바르지 못한 제도에 의해 LG 치타스가 서정원 선수의 해외 진출에 대해 이적료가 적다는 이유로 거부를 하면서 피해를 봤습니다.
이것이 무산되었고 스트라스부르 이후 감독 불화로 국내 복귀를 하기 전에도 큰 구단으로는 발렌시아 CF, 바이에른 뮌헨의 러브콜도 받았지만 당시 에이전트 제도가 미숙했던 관계로 이적이 쉽지 않았습니다.
1997년에는 벤피카가 배번 9번을 주며 영입 제의를 했고 벤피카 선수단에 합류해서 함께 훈련을 할 정도로 이적이 확정됐지만 벤피카가 당시 리그에서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로 서정원 선수가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뛰지 않는 조건을 부여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차범근도 월드컵 진출을 위해 팀의 핵심 멤버중 1명이었던 서정원 선수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어쨋든 대한축구협회의 이적동의서는 나오지않게 되고 이로인해 무산되었습니다. 이 당시 언론사 인터뷰에서는 차범근이 서정원 선수가 벤피카에 입단테스트를 구걸하러 갔다고 보도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오가 2009년에 홍명보를 만나서 서정원 선수의 안부를 물었다는 사례를 볼 수 있듯이 그의 벤피카행은 확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차범근은 신문사와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의 수준은 높아졌습니다. 굳이 포르투갈 구단에 입단을 구걸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발언하였다고 기자들은 보도 했습니다. 서정원 선수는 개인적으로 벤피카의 9번 유니폼도 소장중이라고 합니다. 명문인 벤피카라 아쉬움이 있지만 서정원 선수는 그 후에 한국 1호로 프랑스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차범근과 서정원 선수의 관계는 금이 갔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고려대 선후배 사이이고 차범근 칼럼인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에서 차범근이 서정원 선수를 좋게 언급하는 모습이나 서정원 선수가 조광래 감독 시절 코치로 일할때 차두리와 장난치는 모습이 신문사 사진에 실린 것을 보면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국가 대표 경력
1990년 7월 27일, 다이너스티컵에서 일본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994년 FIFA 월드컵, 1998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하였습니다. 특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스페인과의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는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습니다.
2001년 4월 26일, 이집트와의 87번째 A매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습니다. 2007년 8월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가져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습니다.
지도자 경력
서정원 코치는 2009년에 취임한 홍명보 감독 하에 김태영, 신의손과 함께 U-20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임명되었습니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따라 그 역시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인 조광래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승격시켜 합류했으나 2012년 조광래의 레바논전 부진으로 인한 해임으로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사임했습니다.
- 수원 삼성 -
2012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가 2012 시즌 종료 후 윤성효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진사퇴로 인해 그의 후임으로 수원의 제4대 감독으로 승격하였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였을 때 함께하였던 데트마어 크라머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그의 멘토이기도 합니다.
2014 시즌 초반에 삐걱거렸다가, 2014년 FIFA 월드컵 휴식기 이후 순위를 끌어올리며, 19승 10무 9패 2위의 성적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과 동시에, K리그 클래식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16년에는 K리그 클래식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 특히 2016년 7월 2일에는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1-2 역전패를 당하여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습니다. 이에 분노한 수원 팬들이 버스를 가로막자, 서정원 감독은 직접 버스에서 내려 수원 팬들에게 사과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선제골 이후 실점이 이어져 무승부가 많아지는 등 33라운드까지 10위로 하위 스플릿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스플릿 리그에서 5경기 무패를 기록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 7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FA컵에서는 결승전에서 FC 서울을 만나 1•2차전 합계 3-3 무승부, 연장전에서 득점없이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 끝에 10-9로 승리를 거둬 2010년 이후 6년만에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후, 2017 시즌 들어 리그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부진하면서, 수원 팬들에게 '쎄오 아웃'이라는 불명예스런 애칭과 감독 퇴진 요구를 받았으나, 7라운드 강원 원정을 기점으로 2차 라운드까지 무려 10승 이상을 따내는 등 상승세를 타면서, 지도력이 재평가를 받았고, 수원과 2020년까지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2018시즌엔 2018년 8월 28일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감독직을 사임하였다가 10월 15일 팀에 대한 책임감과 동거동락한 선수들의 요청에 감독직에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 마무리짓고 떠나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2018년 12월 2일 제주전을 마지막으로 약 6년간의 동행을 마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향후 행방에 대해선 사간도스의 감독을 맡을것이라는 언론이 지배적이었고 협상단계까지 들어갔던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오피셜만 남겨둔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빠른 스피드를 살린 공격이 특기이며, 이에 준하여 '날쌘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선수 경력
1992년 ~ 1997년 LG 치타스 / 안양 LG 치타스
1998년 프랑스 RC 스트라스부르
1999년 ~ 200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년 오스트리아 SV 잘츠부르크
2006년 ~ 2007년 오스트리아 SV 리트
국가 대표 경력
1990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1992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
1994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
2009년 U-20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9년 ~ 2010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0년 ~ 2011년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2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석 코치
2012년 ~ 201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19년 ~ 일본 사간 도스 감독
방송
2012년 추석특집 코미디쇼 이수근·김병만의 10년의 꿈
선수
LG 치타스
K리그 준우승 1회 - 1993
아디다스 컵 준우승 2회 - 1992, 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우승 2회 - 1999, 2004
FA컵 우승 1회 - 2002
리그컵 우승 3회 - 1999~2001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회 - 1999~2000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2회 - 2001~2002
아시아 슈퍼컵 우승 2회 2001~2002
오스트리아 SV 리트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회 - 2006
지도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준우승 2회 - 2014~2015
FA컵 우승 1회 - 2016
개인
1986년 전국고교선수권대회 득점왕 수상
1992년 한국일보 백상 수상
1993년 프로축구 인기상 수상
1997년 프로축구 인기상 수상
1997년 K리그 리그컵 득점왕 수상
1999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1년 아시아 슈퍼컵 MVP 수상
2001년 AFC 선정 8월의 선수
2001년 K리그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1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FA컵 MVP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3년 베스트 골 수상
2005년 오스트리아 쿠리어 선정 올해의 최고 선수
2005년 오스트리아 스포르트보헤 선정 최우수 축구 선수
2005년 오스트리아 포지션별 올해의 선수 최우수 측면 공격수 부문 선정
2006년 오스트리아 스포르트보헤 선정 최우수 축구 선수
이상 서정원 감독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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