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 여 전만 해도 이적 시장 얘기로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가라앉았다. 2018년도는 유독 많은 팀들이 변화를 겪은 해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지고 또 새로운 이야기에 밀려 사라졌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지금,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어느새 저 멀리 떠나있다. 올해 은퇴를 선언한 '앰비션' 강찬용이나 휴식기를 선언한 '프레이' 김종인, 또 해외로 떠난 선수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오롯이 자리를 지킨 한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올해로 데뷔 8년차가 된 '스코어' 고동빈. 그는 이제 LCK에 남은 유일한 1세대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2012년 용산의 한 경기장에서 LCK의 시초가 되는 LOL 인비테이셔널 경기가 열렸다. 고동빈은 그 경기에서 원딜러로 데뷔하며 역사의 첫 장면에 함께했다. 또 2019년 LCK 스프링 시즌에도 함께하며 롤챔스의 처음과 현재를 장식 중이다. 그 사이 네 번의 포지션 변경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기량 좋은 정글러로 평가받고 있다. 8년이란 시간 동안 먼지 쌓이지 않도록 매일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동빈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좋은 기량을 유지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와 이에 대한 노력이 중요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고동빈은 LCK에서 8년이란 시간을 쌓았으나 앞으로 더 쌓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적인 상황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오래 먼지를 닦는 일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구간에 발을 들인, 자신이 쥐고 있는 것들을 팀원과 남겨질 선수를 위해 쓰고 싶은 선수. 고동빈의 긴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8년차 프로게이머가 된 '스코어' 고동빈입니다.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을 텐데 최근 중이염 수술로 치료하느라 계속 병원에 다녔습니다. 병원 가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개인 연습에 집중하고요.
2019 롤챔스 스프링 스프링 스플릿은 도전하는 입장이 아닌 롤챔스 디펜딩 챔피언으로 시즌을 맞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디펜딩 챔피언이지만 리빌딩으로 변화를 맞아 신생 팀의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열정과 패기로 게임을 준비하고 있으니 팬분들도 새로 들어온 친구들에게 많은 응원해 주시면 힘이 될 것 같습니다.
2012년엔 프로 팀이라고 해도 아마추어 느낌이 강했는데 요새는 2부 리그의 팀들도 프로의 마인드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게 느껴져요. 그때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변했고 선수들의 마인드, 환경 같은 것도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앰비션' 강찬용의 은퇴로 유일한 LCK 현역 1세대 프로게이머가 되었습니다. 8년 동안 자리를 지킨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 이 자리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을 줄 몰랐다는 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은퇴 선언을 한 '앰비션' 강찬용 처럼 함께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른 팀이지만 오래 함께한 동료로서 응원하는 마음도 컸으니까요. 그래도 개인 방송 등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 보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첫 번째는 성격이에요. 원래는 소심한 편이었습니다. 근데 팀 게임을 하니 동료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 성격을 고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외모적인 부분도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예전에는 조금 뚱뚱했는데 방송에 많이 나오다 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서 다이어트로 체중 조절도 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 하니까. 지금도 가끔 하고 있습니다.
반면 8년동안 기량과 경기력은 기복없이 계속 상위권을 유지했죠. 8년 동안 꾸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비결이 있는지
초창기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당시엔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그런 말을 들었다 생각해요. 연차가 쌓이고 나서는 팀의 맏형이라 실력적으로 떨어지면 동생들을 이끌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경기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5년도에 있었던 원딜에서 정글로의 포지션 변경이 가장 큰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15년 당시에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포지션 변경은 큰 도전이다보니 여기서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음가짐도 바꾸고 제 나름의 기준도 정해 지키려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스크림을 하더라도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팀원들에게 신뢰를 잃지 말자 이런 기준들이요. 그 노력 덕분에 정글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 같아요. 또 8년 동안 유일하게 기뻐서 울었던 날이 기억에 남아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슬퍼서 운 적은 많은데 기뻐서 울었던 적은 2018년 LCK 서머 우승 직후 한 번 뿐이거든요.
상대한 많은 팀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이 있다면 어느 팀일까요? 유달리 상대가 어려웠다거나 강팀으로 분류되는데 쉬운 전략법이 있었다거나
롤챔스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강력한 시즌이 많았던 SK텔레콤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마타' 조세형 선수가 KT에서 SKT로 이적했는데 만나게 된다면 꼭 이기려고요. 세형이가 로밍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바텀 갱만 가서 제 정글에 발 못 들이도록 미리 기선을 잡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SK텔레콤으로 이적한 '마타' 조세형, 킹존으로 이적한 '데프트' 김혁규 등 팀을 떠난 동료들과 달리 이번에도 kt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작년 시즌이 끝나고 해외에 나가볼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프로게이머의 마지막 1년일 수 있기 때문에 해외로 가는 것보다 국내에서 지내는 게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많은 팬들도 국내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해외로 가지 않는다면 국내팀 중 KT가 저와 제일 잘 맞는다고 판단해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결정한 편입니다.
이번에 들어온 친구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예전 팀에서 가졌던 색깔을 벗고 KT팀의 색깔을 입을 수 있도록 저 또한 노력하려고 합니다. 주장 '스맵' 송경호와 감독 코치진의 말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부담감에 대해 얘기하자면 매년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심한 편인데 이번엔 여러가지 부담이 있어서 분산되는 효과 덕에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본인이 없는 kt를 상상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가 없는 KT가 어떤 모습일까 종종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뚜렷하게 어떤 모습일 것이다 감은 안 왔어요. 이번 케스파컵에서 수술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그때 감이 왔던 것 같아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니 생각보다 잘하고 괜찮더라고요. 제가 KT에 없더라도 송경호 선수나 코칭 스텝들이 남아 있어서 기존의 KT 색깔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마지막이라는 기준이 잡히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도 들고 욕심도 들어요. 개인적인 욕심 첫 번째는 아름다운 은퇴입니다. '스코어'라는 프로게이머가 2019년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한 상태로 우승하는 것이요. 제 이름값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요. 또 두 번째 욕심은 2019년 KT에 들어온 신입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게 도움 주는 거예요. 프로게이머로서 정글의 능력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엄티' 엄성현이 스스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성격도 귀여운 부분이 많고요. 성현이가 저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멋진 선수로 키울 생각입니다.
혹시 내후년에도 계속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건지
첫 시작은 가벼웠지만 이제는 프로게이머라는 단어가 무거워진 것 같아요. 여건이 된다면 프로 생활을 계속 하고 싶은데 군대 때문에 기회가 없을 거예요.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확정적으로 은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아요. 가능성은 열려있으니까요.
그 일은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다른 스포츠 선수처럼 국제 대회에 대표로 나갔나는 점이요. 군대 갈 때쯤이면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유독 값지고 귀한 경험을 많이 한 느낌이라 되돌아볼 때에도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2019년에도 좋은 기회가 있으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군대를 앞둔 입장으로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이 아니라 정식 종목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충분히 아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게이머를 최대한 오래 하고 싶지만 군대 등의 문제로 그럴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1년을 잘해서 좋은 본보기로 남아 아쉬움을 덜고 싶습니다. 오래 프로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나 저처럼 프로게이머를 오래 할 생각이 있는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먼 미래가 아닌 2019년 연말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2019년 연말이 잘 실감이 안 나는데 그 동안 고생 많이 했고 앞으로도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잘 살기 바란다 고동빈 화이팅!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많다고 느껴요. 해 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많은 무대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올해에도 끝까지 열심히 해서 자주 얼굴 비출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큰 사랑 부탁드리고 KT 팀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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