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G2 e스포츠가 리그 오브 레전드 스프링 시즌 최강팀으로 떠올랐다.
G2는 19일 오후(한국시간) 대만 타이베이 헤핑 농구 경기장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롤) 2019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팀 리퀴드(북미)와의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유럽 팀이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든 건 2011년 롤드컵 우승 이후 8년 만이다.
#이제는 ‘춘추 전 세계 시대’
G2의 우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MSI는 롤판에 더 이상 ‘절대강자’는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이전 국제대회 단골 우승팀은 롤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나왔다. 한국은 2013년 SKT T1의 우승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내리 롤드컵 우승팀을 배출했다. MSI에서도 2015, 2018년엔 준우승을, 2016년과 2017년엔 정상에 올랐다.
LCK의 유일한 경쟁자는 중국 리그인 LPL이었다. LPL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수준급 선수들과 코치진을 끌어 모았고 한국을 위협하는 강자로 떠올랐다.
2015년 MSI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는 MSI와 롤드컵을 동시 석권하며 LCK의 독주를 깼다.
하지만 LCK와 LPL의 경쟁 구도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깨졌다.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진 중국의 인빅터스 게이밍(IG)은 4강에서 팀 리퀴드를 만나 3-1로 완패했다. 당초 팀 리퀴드는 플레이오프 진출 팀 가운데 최약체로 분류됐다.
‘드림팀’을 결성해 LCK를 제패하고 ‘왕좌 복귀’를 노린 SKT도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
그룹스테이지에서 벌인 G2와의 2차례 경기에서 모두 패한 SKT는 4강전에서도 접전 끝에 2-3으로 역전패했다. 3세트까지 2-1로 앞섰으나 4세트와 5세트를 내리 내줬다.
SKT의 세계적인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은 4강전 패배 이후 “경기력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실제 G2는 챔피언의 활용 폭과 숙련도에서 SKT를 월등히 앞섰다. 여기에 변칙적인 전략을 앞세운 승부수까지 추가해 견고했던 SKT를 무너뜨렸다.
이밖에도 베트남 리그 대표로 나온 퐁부 버팔로가 그룹스테이지에서 G2에게 2번 붙어 모두 이기는 등 리그 간의 실력 격차가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왕관 쓴 캡스… 다가오는 세대교체
‘베테랑’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의 베테랑은 대개 신체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30대 중반~후반에 이르는 나이의 선수들을 지칭한다. 이들 대부분은 절정의 기량을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숱한 경기를 통해 축적한 경험을 무기 삼아 소속팀에 공헌한다.
e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베테랑’ 이름표를 상대적으로 일찍 다는 편이다. 프로게이머는 평균 수명이 5년 미만일 정도로 활동시기가 짧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하고, 20대 중반부터는 베테랑 취급을 받는다. 2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에는 극심한 기량 하락을 겪는다. 30대까지 버티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번 MSI 플레이오프에는 상당수의 베테랑들이 이름을 올렸다.
SKT에는 이상혁(23)과 ‘마타’ 조세형(25)이, 팀 리퀴드에는 ‘더블리프트’ 피터 펭(25)과 ‘임팩트’ 정언영(24), ‘코어장전’ 조용인(24)이 노련함을 바탕으로 수준급 플레이를 펼쳤다. 2014년부터 꾸준히 롤판에서 활약한 ‘루키’ 송의진(22) 역시 IG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기량이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국제대회를 주름잡았던 이들이기에, 이번에도 이들 중 누군가가 정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작 우승을 차지한 팀은 신예들이 중심이 된 G2였다.
원거리 딜러 ‘퍽즈’ 루카 페르코비치는 20살이다. 탑 라이너 ‘원더’ 마르틴 한센도 20살이다. 미드라이너 ‘캡스’ 라스무스 윈터는 19세에 불과하다.
한센은 SKT와의 경기 내내 ‘칸’ 김동하를 상대로 라인전을 압도하며 상체 주도권을 가져왔다. 파이크를 이용한 변수 플레이로 SKT를 흔들기도 했다. 퍽즈는 팀 리퀴드와의 결승에서 더블리프트와 코어장전이 버티는 바텀 듀오에 완승을 거두며 팀에 승기를 가져왔다.
캡스는 더 할 나위 없었다.
수준급 기량으로 ‘베이비 페이커’라는 별명을 가진 캡스는 이번 대회에서 이상혁을 압도하며 전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결승전에서도 2세트 G2가 올린 19득점 가운데 무려 16점에 관여하는 등 맹활약해 MSI MVP를 수상했다. 사실상 현 시점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올라섰다는 평가다. 나이도 어려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LCK에게 남은 숙제는?
지난 시즌 롤드컵 8강에서 좌절한 LCK는 변화를 다짐했다. 실제 그리핀과 담원 게이밍, 샌드박스 등 새 얼굴들의 경기력으로 리그 분위기가 환기되는 듯 했다. 하지만 LCK의 이번 MSI 역시 실패로 끝났다. LCK 대표로 출전한 SKT는 G2와 IG 등의 빠르고 공격적인 템포에 상당 부분을 버거워했다. LCK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예측 가능한 전략’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SKT 선수들은 “우리가 못해서 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팀 내부에서만 문제점을 찾기 보다는 이젠 상대로부터 도전자의 태도로 배워야 한다는 팬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기량이 평준화 된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유럽과 북미 등 다양한 지역 경쟁 팀들을 얼마나 잘 분석하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LCK의 국제대회 성적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리그 경쟁력 유지라는 숙제도 남았다.
커져가는 중국, 북미, 유럽 시장에 비해 한국 e스포츠 시장의 성장세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국 e스포츠 시장은 973억원의 가치를 지녔다. 2018년에는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2018년 9억600만달러(약 1조 831억원)에 이르는 전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시장 상황이 열악하니 인재 유출도 심각하다. 이번 MSI 4강에 오른 팀 리퀴드와 IG만 해도 한국 선수 2명씩이 몸을 담고 있다. 해외 리그 팀의 코치진 상당수도 한국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라는 상징성마저 사라지면 인재 유출은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LCK의 ‘프랜차이즈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면 현재 1부 리그(LCK)와 2부 리그(챌린저스) 체제로 운영 중인 대회가 단일 리그로 바뀐다. 국내외 대형 자본이 하부 리그 강등이라는 우려 없이 프로게임단에 투자할 수 있어 시장 규모 확대 및 안정화가 뒤따르는 것이 장점이다.
이미 중국과 북미 등 해외 지역은 지난해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했다. LCK 역시 프랜차이즈화를 통해 국내·외 자본 투입을 유도한다면 리그 경쟁력 약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이미 일부 구단은 프랜차이즈화에 따른 ‘2군 운영’을 대비하고 있다.
SKT는 지난해 말 유망주 5인을 선발했다. 이들은 ‘T1 루키즈’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벌써부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밖에도 젠지,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수의 팀들이 유망주 발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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