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신 7월의 첫날, 충청북도 청주에서 '김캐리' 김태형(47)을 만났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 해설가로 데뷔 후 엄전김(엄재경, 전용준, 김태형) 트리오로 불리며 수많은 어록과 레전드 짤을 생성한 김태형은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나 종적을 감췄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그의 모습은 놀라웠다. 본명보다 더 각인된 별명 '김캐리'로 유흥업소 영업일을 하고 있는 근황은 스타크래프트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팬들은 그 자체만으로 김태형을 비난했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김캐리' 김태형은 인터뷰를 통해 스타크래프트를 회상했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 동료와 팬, 연인을 향한 미안함을 고백했다.
과거의 선택과 실수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하려 하고 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본명은 김태형이고요. 게임 방송에서 해설했을 때 닉네임은 김캐리로. 본명보다는 오히려 닉네임을 더 잘 알고들 계시죠.
Q. 최근 근황이 궁금해요.
터널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죠, 정말. '언제쯤 터널을 빠져나가지?' 그냥 이렇게 답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Q. 스타크래프트와 인연(해설)이 오래되셨어요.
오래됐죠. 1999년 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이 투니버스에서 처음 시작이었으니까. 그 뒤로 몇 년을 한 거죠? 마지막 티빙 스타리그가 2012년. 물론 그 뒤로 아프리카 방송도 하고 스타 관련 해설을 하긴 했었는데, 거의 한 15년? 그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해설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그때 나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일을 해야 되는 시점이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닥쳤죠. 직장을 잃고 잠시 공백기가 있었어요. 그 기간에 PC방이라는 곳을 가게 됐어요. 원래 게임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때는 삼국지 같은 게임을 했었죠. PC방에서 삼국지를 하고 있는데, 어린 친구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저게 뭔가'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해봤는데 빠져든 거죠. 정말 엄청나게 했어요. 당시에 한국인 최초로 온라인 랭킹 1위를 해서 이슈가 됐고, 그게 계기가 돼서 언론 인터뷰를 처음 하게 됐어요. 이후에도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처음으로 스타 리그를 기획했었던 투니버스 황형준 PD를 통해서 콘택트가 된 거죠. 그렇게 해설을 시작한 거예요.
Q. 해설 데뷔 당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긴장감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긴장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말을 잘 못한다거나 이런 거는 없었어요. 이런 느낌은 있었죠. '무슨 게임을 가지고 중계를 하지?' 저 스스로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생소했죠.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편안했어요.
Q. 많은 시즌, 중계를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15년~16년 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세팅 사고죠. 컴퓨터나 시스템의 사유가 됐든 선수 개인의 사유가 됐든 생방송이기 때문에 빨리 경기가 들어가서 해설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늘어지는 거죠 계속. 그러면 세 명이 말로 시간을 소비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죠. 했던 말 또 하고 "이 말을 했었나?" 이러고. (웃음)
그럴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중계하면서 웃음이 터지는 사고들은 TV 방송에도 많이 있잖아요. 사실 제가 온게임넷에서 그 중심에 있었죠. 또,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말실수로 방송 사고를 낸 경우도 있어요. 여기서 오픈하기 힘들지만 민망한 방송 사고들도 많았어요. 그런 것들이 에피소드였던 것 같아요.
Q. 마지막 스타리그 중계 때 많은 눈물을 흘리셨어요. 당시 심정이 어땠나요?
이제 밥줄이 끊기는구나? (웃음). 사실은 그거보다는 제가 원래 좀 감성적이에요.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야 되나. 그러다 보니 저만의 해설 스타일이 있는 거고. 저는 중립적인 해설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프로토스 편파적이고 게임에 몰입해서 감정이입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호불호가 있죠.
저는 그 스타일을 버리고 싶지도 않았고, '이게 나의 스타일이다'라고 해설을 했었는데, 그날따라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김캐리'를 만들어주고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줬는데, 정말 마지막이구나 스타가. 그 생각이 드니까 순간적으로 북받쳤던 것 같아요. 민망하죠 (웃음).
Q. 혹시 그 영상 나중에 보셨는지.
아휴. 제가 그걸 다시 돌려보지는 않죠 (웃음). 애틋함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고, 살아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이라는 게 안타까웠던 거죠.
Q. 해설가 김태형이 꼽는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궁금해요.
실력적으로는 테란의 이영호, 저그의 이제동, 프로토스는 그 두 명을 넣어야 되겠네요. 김택용, 송병구. 근데 택용이는 온게임넷에서 보여준 게 별로 없어 가지고 (웃음). 그래도 저그전의 상징이 있으니까.
그리고 실력을 떠나서 최고의 프로게이머는 요환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요. 임요환 선수는 지금의 페이커 같은 느낌이죠. 기반이나 선수들의 대우 같은 기틀을 잘 마련해준 친구니까. 요환이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최고의 선수일 수 있죠.
Q. 엄재경 작가가 "김태형 해설과 연락을 안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게임계를 떠나면서 연락을 끊으신 건지요.
제가 끊은 거죠. 이런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쪽팔렸죠. 부끄러웠고.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도움을 요청하지 그 어려울 때" 뭐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죠. 무슨 도움을 요청할까요? 어쨌든 제 판단과 실수로 인해서 나락에 떨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는 너무 힘들어서 다 연락을 끊고 그쪽 세계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동료들한테도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죠. 인연을 그렇게 단칼에 끊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사람 관계라는 게. 그때는 나 외에 다른 것들을 둘러볼 여지가 없었어요. 제가 사는 게 우선이었고 그래서 연락을 제가 끊은 거죠.
Q. 그 정도로 힘드셨다는 건데, 이후에 유흥업소 홍보 사진이 공개되며 화제와 논란이 됐어요.
살면서 많은 분들이 "그 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죠. 저도 제 인생에 있어서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시기가 그때에요. 온게임넷 방송을 그만두면서 아프리카TV를 시작했는데, 스타 해설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졌고, 방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죠. 그래서 회의감이 좀 들었어요.
스스로 회의감이든 상태라 그만두게 됐는데, 어떻게 보면 제 자존심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문제가 심각해진 게 과거에 무리한 부동산 투자로 인해서 빚이 있었고, 대출에 관련된 이자를 감당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수입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니까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거죠. 압류부터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그런 와중에 생활은 해야 되잖아요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신용상 문제가 생기니 쓸 수 있는 건 현금밖에 없는 거죠. 누가 돈을 보내줘도 찾을 수가 없고. 정말 현금이 필요한데 현금을 융통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건설 현장의 노동일을 하던가,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없더라고요. 불법적인 일을 하던가 유흥 쪽 일밖에 없었던 거예요.
저는 평소에 술도 잘 못해요. 정말 저랑 전혀 상관없는 그쪽을 선택하게 된 거죠. 살기 위해서. 그게 사실은 지금 가장 후회돼요. 거길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쪽(게임) 세계와의 인연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되는 거죠.
Q. 왜 그곳에서 '김캐리'라는 닉네임을 쓰셨던 건지...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는 게 "왜 거기 가서 김캐리라는 이름을 썼냐"는 건데 거기서도 영업적인 일을 해야 되니까 그것까지 활용하게 된 거죠. 계속 안 좋은 선택들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애초에 안 가는 상황이 가장 좋았겠지만, 거기 가서도 또 치열했기 때문에, 무슨 방법을 쓰든 살아남기 위해서...물론 시청자분들이나 팬분들께는 변명일 수 있겠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신 게 하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쪽을 갔다고 해서 불법적인 일을 했거나,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포주다' 뭐 이런 얘기도 있어요. 순전히 저는 정말 술을 파는 곳에서 일을 했어요. 포주라는 일을 했다면 제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미 '철컹철컹' 이지 않겠어요? (웃음) 절대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맹세코.
Q. 그쪽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따로 있을까요?
일을 하는 내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버티려고 했었어요. 그러다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거죠. 외상 사고(돈을 안 내는)가 많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 쪽은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몇 번 쌓이다 보면 규모가 엄청나요.
아는 사람한테 그런 걸 당한 거죠. 그 순간 '아 이거 더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저의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했던 일인데, 더 나락으로 갈 수 있으니까. '아차' 싶어서 그만두게 됐죠.
Q.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버티셨나요.
그것밖에 없으니까. 정말. 정말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방법을 그때 당시에 찾지 못했고, 다른 데로 눈 돌릴 겨를도 없었어요. 오로지 그냥, 사람이 그렇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그 부분을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Q. '김캐리'라는 닉네임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시죠.
제 인생에 있어서 본명보다도 더 많이 불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떠날 때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 제 본명보다 저 이름을 남기지 않을까. 나중에 묘비로 부탁해야겠어요. 본명 말고 김캐리라고 적어달라고 비석에(웃음).
근데 저거를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썼으니 팬들의 실망감은...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고, 다시 한번 죄송한 것 같아요 진짜.
Q. 작년 7월 아프리카TV 복귀 당시 "스타 관련 콘텐츠는 하지 않겠다"라고 하셨어요.
복합적이었는데요. 저라는 사람에게서 스타를 떼어놓을 수가 없는데, 스트리밍이나 유튜브를 하고 싶은 입장에서 장점이자 단점이 됐던 거예요. 왜냐하면 스타 관련 콘텐츠를 하려면 해설을 해야 되는데, 해설이라는 게 저 혼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선수도 필요하고 경기도 있어야 되고. 저 혼자 콘텐츠를 짜서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렇다고 선수들을 출연료를 주고 쓸 수도 없고, 참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상황이었어요. 또 유튜브로 다양한 게임 리뷰나 게임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는데, 스타를 손대면 스타만 해야 되더라고요. 그런 고충들이 나름 있었어요. 그래서 스타를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죠. 그때는 그랬죠.
Q. 지금 마음도 그때랑 똑같으신가요?
오히려 지금은 마음을 비웠다고 해야 되나? 초월했다고 해야 되나?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해요. 기회가 돼서 하면 하는 거고 못하면 못하는 거고. 굳이 하기 싫다고 표현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그래요 지금은.
Q. 7월 복귀 후 소식이 없다가 12월에 다시 돌아오셨죠. 그 사이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런 얘기를 방송으로 해도 되나? 거의 백수로 오랜 시간을 버텨냈는데, 수입 없이. 혼자 힘으로는 힘들죠. 지금의 저를 버티게 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은 제 의지도 있었겠지만, 제 곁에 있는 여자친구 때문인 것 같아요. 여자친구 덕분이죠. 그렇잖아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일도 안 하고 백수로 그것도 몇 년을. 누가 좋아할까요.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겠죠.
아무리 좋았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틀어질 수밖에 없고. 이미 헤어져도 수십 번은 더 헤어졌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고 버틴 것은 순전히 정말 100% 그 친구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어찌 됐든 책임을 져도 제가 져야 되는데, 미안하죠 항상. 이제 드디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으니까 갚아 나가야죠.
Q. 앞으로 계획도 궁금하네요.
사실 세상에 다시 나서는 게 두려웠고, 대인기피증에, 정말 집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거든요. 최근에 저의 상황들을 모두 오픈하면서 방송을 접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런 상황을 비난하거나 욕 하는 사람보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 와중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겠다. 같이 일을 해보자"라고 해주셨어요. 어쩔 수 없이 그중에 한 분을 선택했던 거고요. 정말 오래 기다렸죠. 여러분들에게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튜버로 성장을 하고, 남자 언더웨어 브랜드를 마케팅하고 이런 형태로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7월 중으로 열 것 같아요. 하게 되면 정말 열심히 할 테니까 '구독'과 '좋아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음).
Q. 최근 근황이 공개되면서 응원과 함께 '엄전김'이 그립다는 반응도 많아졌어요.
아련한 느낌이죠. 어떻게 보면 추억인데,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는 사실 알 수가 없죠.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그런 대회가 현재 없고, 스타리그가 없잖아요. 물론 소규모로 개인 방송에서 다루는 경기들은 있겠지만 글쎄요.
현실적으로 '셋(엄재경, 전용준, 김태형)이 다시 모인다'라는 게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누군가 판을 마련해주면 모를까. 마련되고 두 분이 "하겠다" 그러면 한번 해볼 의향은 있습니다. 허허허. 꿈만 같네요.
Q. 김태형에게 스타크래프트란 어떤 의미일까요?
애증. 굳이 사람으로 표현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마냥 사랑만 하지는 않잖아요. 미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사랑할 때도 있고. 딱 그런 느낌? 애증의 존재.
Q. 마지막 말
정말 힘든 시간을,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 '어디까지 더 떨어져야 되나'라는 생각으로 한없이 나락으로 갔는데, 결국 떨어지면 올라갈 일 밖에 없잖아요. 다시 김캐리의 '제2의 인생'을 시작을 하는 거니까 죽기 살기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거고요. 혹시라도 제가 방송하는 채널이나 이런 것들을 보시게 된다면 '좋아요', '구독'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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