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약속을 지키는 사나이

Talon 2019. 8. 30. 09:34

'페이커' 이상혁의 '바운스 백 어빌리티'

‘바운스 백 어빌리티(Bounce Back Ability)’는 스포츠 경기에서 침체된 상황을 뒤바꾸는 능력을 일컫는다. 팀 경기력이 떨어졌을 때도 기어이 승리를 창출하는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의 역전 능력이 좋은 예다. 2004-200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0-3 스코어를 뒤집은 리버풀의 ‘이스탄불 기적’에도 이 표현이 쓰였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팬들에게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e스포츠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는 데에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다. 이상혁은 팀이 침체에 빠져 있을 때마다 공약을 통해 반전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이상혁이 미드라이너로 활약한 SK텔레콤 T1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담원 게이밍과의 ‘2019 우리은행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대 0 완승을 거뒀다. 이날 이상혁은 르블랑, 키아나, 니코를 꺼내 올 시즌 상한가를 치던 ‘쇼메이커’ 허수를 꽁꽁 묶었다.

SKT는 오는 31일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그리핀과 결승 대결을 벌인다. SKT의 결승행과 함께 화제가 된 건 이상혁의 ‘도장깨기’ 발언이다. 이상혁은 지난 17일 샌드박스와의 LCK 서머 정규 시즌 2라운드 경기에서 2대 1 역전승을 거둔 뒤 “이번 시즌 느낌이 좋다. 롤드컵 직행이 목표가 아니라 시즌 우승이 목표다”면서 “도장깨기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정규 시즌 4위에 오른 SKT는 아프리카 프릭스(시즌 전적 1-1), 샌드박스(1-1), 담원(0-2) 등 이번 시즌 고전을 면치 못한 팀들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이상혁의 계획은 현실이 됐다. 아프리카전에서 2대 1로 이기며 폼을 끌어올린 SKT는 샌드박스(3대 0), 담원(3대 0)을 완파하며 마침내 결승 대진표에 이름을 올렸다.

‘13연승’ 공약 또한 올 시즌 빼놓을 수 없는 화젯거리다. 지난 6월 27일 KT전에서 연패사슬을 끊은 뒤 이상혁은 “13연승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SKT는 이후 젠지, 킹존, 아프리카 등 강호를 잇달아 격파하며 9연승을 달렸다. 한화생명, 담원에 패하며 13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9위에서 1위로 올라서는 전무후무한 순위 상승을 해냈다. 이상혁은 9연승 후 “기세가 올라가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되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

이상혁의 공약은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서도 나왔다. 그룹 스테이지 초반부, SKT는 크게 흔들렸다. 개막전에서 G2 e스포츠(유럽)에 패했고, 인빅터스 게이밍(중국)에게는 16분 만에 넥서스를 허용했다. 이후 G2와의 리턴 매치까지 내주며 대회 전 우승후보 1순위로 꼽혔던 SKT의 경기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이상혁은 담담하게 다음을 준비했다. G2전에서 패한 후 매체 인터뷰에서 “저조한 성적이지만, 남은 경기를 다 이겨서 7승 3패로 (그룹 스테이지를) 마무리 하겠다”고 했다. 잇따른 패배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이상혁의 약속이 겉치레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상혁은 정말로 약속을 이행했다. 이상혁의 활약에 힘입어 플래시 울브즈(대만·홍콩·마카오), 퐁 부 버팔로(베트남)를 차례로 격파한 SKT는 다음날 북미의 강호 팀 리퀴드와 9전 전승 행진 중이던 IG까지 꺾으며 ‘약속의 스코어’를 달성했다. 당시 IG전에서 이상혁은 라이즈를 골라 팀 승리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상혁의 공약은 바람일까, 선언일까. 그 중간쯤 있는듯 싶다. 이상혁의 공약은 꽤 파격적이지만, 결국 현실에 닿았다. 지난 4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상혁은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플레이어를 이야기할 때, 제가 반드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답이 나뉠 것 같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어떤 선수든 기량이 들쑥날쑥하다. 어떤 스포츠든 예외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저는 중요한 대회는 최대한 좋은 습관을 갖고 임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페이커의 공약’은 부활의 선언적 의미와 스스로를 다그치는 다짐이 동시에 담겨있다. 데뷔 7년차를 맞은 이상혁은 지금도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공약을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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