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해결사 한대화 님입니다~!
현재는 KBO의 경기운영위원입니다.
현역 시절 통산 타율 0.279, 포스트 시즌 통산 0.296이고, 골든 글러브 3루수 부문에서 역대 최다인 8차례 수상하였습니다. 3루수 부문에서 역대 올스타전 11차례 참가로 최다를 기록하고 있으며, 1988년 올스타전 MVP로 뽑혔습니다.
대전신흥초등학교
한밭중학교
대전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학사
대전 출신으로 대전신흥초등학교와 한밭중학교를 거쳐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대전고 졸업 후 동국대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동국대학교 4학년이던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좌측 폴대를 맞추는 3점 끝내기 홈런으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데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김재박이 버티고 있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3루수로 뛰었습니다.
OB 베어스
1983년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는데 아마추어 시절과 마찬가지로 유격수 포지션이었습니다. 그는 프로 데뷔 첫 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김성근 감독과 마찰을 빚었으며, 간염으로 건강이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6년 3월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인 황기선·양승호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습니다. 그가 입단했을 때 OB 베어스는 그의 연고 팀이었으나 1985년에 OB 베어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그는 1997년에 은퇴할 때까지 연고 팀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고, 2009년 정규 시즌 후 새로운 고향 팀 한화의 부름을 받아서 감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트레이드된 해에 새롭게 대전광역시 및 충청북도의 연고 팀으로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고, 그는 빙그레에 가기를 원하여 한때 트레이드를 거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임의탈퇴 1호 선수로 공시되었습니다. 이 무렵 동국대학교 시절에 감독으로 함께하였던 김인식이 해태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고 그가 설득하여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이적 후 뛰어난 활약으로 역대 최고의 3루수 중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6년 이적 첫 해부터 해태 타이거즈는 전무후무한 리그 4연패를 달성하게 됩니다. 해태 타이거즈 막강 타선 "KKK포"의 중심 축 중 한 명이었던 김봉연을 잇는 4번 타자로 김성한, 이순철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타선을 구축하여 무려 6번이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역대 KBO 리그 최고의 클러치 히터로 언론이 '해결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고, 지금은 없어진 '승리 타점'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특히 투수 선동열의 등판시 맹활약으로 투타에서 단짝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해태로 트레이드된 후 맹타를 보인 반면 양승호와 황기선은 OB 베어스에서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여 OB에게는 한대화의 트레이드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LG 트윈스
하지만 그는 1993년 올스타전 때 김응용 감독에게 오해를 사서, 발길질을 당했고 그 장면이 TV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는 해태 타이거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1993년 12월 4일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한대화, 신동수가 LG 트윈스로 가게 되었고 그 당시 해태 타이거즈가 지명권을 갖고 있었던 허문회와 김봉재의 지명권을 LG가 받아 김상훈과 이병훈이 해태 타이거즈로 오는 3:2 트레이드였습니다. 주전 3루수로 활동하면서 1994년 LG 트윈스의 2번째 우승에 기여하고 골든 글러브도 받았습니다. 1994년의 우승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며 1996년 시즌 후 쌍방울 레이더스의 투수 신영균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
1997년에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어 43경기에 출장했으나 김성근 감독과 마찰을 빚은 후 2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후 3개월치 월봉을 선납으로 받고 그 해 시즌 후 팀에서 임의탈퇴 공시되며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화려했던 전성기와 달리 그의 마지막은 쓸쓸하게 끝났습니다. 한편, 한대화 선수와 맞트레이드된 신영균은 데뷔 첫 해인 1996년에 2승을 올렸지만 LG 이적 후 1999년 1승밖에 올리지 못한 채 2000년 시즌 후 은퇴하여 한대화-신영균 트레이드는 실패작이 되어 버렸습니다.
동국대학교 감독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03년까지 모교인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프로 선수 출신 최초로 대학 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많은 후신들을 양성하여 그가 감독을 맡았던 1998년 ~ 2002년 사이 동국대 야구부에서 많은 선수들이 거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대화 코치가 삼성에서 프로 코치 생활을 시작한 이후 프로 무대에서 이들 동문들은 넓은 인맥을 형성했습니다. 박한이와 박정권, 송광민, 이여상, 강귀태, 서승화, 박정환, 정원석, 유한준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이여상의 경우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게 되자 프로 진출을 직접 도와 주기도 했습니다. 정원석은 2009년 들어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당한 후, KIA 타이거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다가 이범호의 이적으로 인한 내야진 공백을 메우려던 한대화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비로소 본격적인 주전이 되었습니다. 박정권은 대학 시절 한대화 감독으로 있을 때 이미 가능성을 인정하였고,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의 해결사로 각인되어 본격적인 강타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코치
2004년 선동열 선수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코치 연수를 마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합류했습니다. 2005년 선동열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하게 되자 선동열의 뒤를 이어 수석 코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한화 이글스 감독
2009년까지 삼성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다가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된 김인식 감독의 후임자로서 2009년 9월 24일 연고 팀 한화 이글스 제 8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특히, 한화 이글스 역사상 최초로 연고지인 대전 출신 인사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한화의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정원석, 이대수 등을 영입하여 리빌딩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3루수 송광민이 프런트의 행정 미숙으로 시즌 중 갑작스럽게 군에 입대했고, 이미 경찰청에서 병역 의무를 다한 외야수 최진행을 제외하면 당장 군에 입대해야 할 젊은 선수들이 많아지게 되어 난관에 크게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0년을 최하위로 끝냈고, 이듬해 일본에서 돌아온 이범호마저 놓쳐 많은 전문가와 팬들은 2011년 성적을 비관적으로 예상했습니다.
2011년 시작 후, 4월에는 리그 최하위에 머물면서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디시인사이드의 국내 야구 갤러리와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유저들은 한대화를 돌대화라는 비꼬는 수준의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5월 12일 잠실 LG전에서 전현태와 LG 트윈스의 포수 조인성과 홈에서 커다란 충돌을 일으킨 당시, 주심의 홈 아웃 판정에 한대화 감독이 심판에게 욕설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부터 팀의 분위기는 급반전되어 결국 5월에 9승 8패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분위기가 상승하여 2011년 시즌 공동 6위로 마감, 탈꼴찌에 성공하게 된다. 그 때 그가 한 욕설은 한화 이글스의 응원 구호가 되었습니다.
2012년 메이저 리거 박찬호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김태균, FA로 송신영을 영입하며 전문가들 사이에서 4강 전력이라고 예상되었으나 유창식과 이여상, 송신영의 부진 등 또 다시 리빌딩 실패의 악재가 겹쳐 최하위를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네티즌들이 한대화 감독을 돌대화 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부르며 사퇴를 요구했으며, 결국 계약 만료를 앞두고 2012년 8월 28일 24시경 감독직에서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의리를 중요하게 여겨 임기를 최대한 보장해 주려 했던 한화그룹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한대화 감독의 경질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8월 28일 구단 측에서는 경질이 아닌 자진 사퇴로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자리는 한용덕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2년 시즌을 마치고 선동열 감독의 요청으로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2군 총괄코치로 임명되었습니다. 2군 총괄코치의 보직은 실질으로 2군 감독과 같습니다. 2013년 시즌 이후 이순철 수석코치가 물러나자 1군 수석코치직에 올랐습니다. 2014년 수석코치에 올랐으나 시즌후 선동열감독의 재계약직후 팬들의 반발로 인하여 6일 만에 사임을 선언한 직후 한대화 역시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5 시즌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 7회
타격왕 : 1990년
골든 글러브 3루수 부문 : 8회 수상
선발 올스타 출전- 7회 연속 출전 및 총 11회 출전
이상 한대화 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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