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

대박 난 '골 때리는 그녀들', 그 이면에서 찾아낸 유별난 욕망

Talon 2021. 2. 16. 10:30

2021.02.15.

 

제작진, 출연자 위치-입장 강조.. 시대착오적이라 느낄 여지 충분

 

 

처음엔 우습게 봤다. '역대급' 시구로 화제를 모은 '에이핑크' 보미와 '운동뚱'으로 소문이 자자한 김민경,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신수지, 인기 치어리더 박기량 등 여성들이 모여 야구를 한다니, 과거 KBS <천하무적 야구단>의 '여성 하위 버전' 쯤으로 예상했다.

막상 뚜껑을 연 웨이브 오리지널 <마녀들> 속 여자 연예인들은 '진심'이었다. 승부욕은 남부럽지 않았고, 야구에 대한 열의도 기대 이상이었다. 일반인 여자 사회인 야구선수들과 팀을 이뤄 나가는 성장기는 분명 여타 스포츠 예능 못지않았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실력보다 열의가 앞서면서 빚어지는 실망스런 결과에 눈물까지 흘리는 여성 야구 선수들을 보는 일은 낯설지만 공감과 응원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바로 그 '야구' 아닌가.

아쉽게도, 성급하다는 인상이 없진 않았다. 불과 방송 몇 회 만에 리틀 야구단을 시작으로 시합을 추진했다. 과연 얼마나 훈련을 했는지, 추운 겨울인데 부상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쨌든 이 선수들은 하루하루 성장해 나갔고, 사회인 여자 야구선수들을 주축으로 게임을 이어갔다. 마지막 방송에선 진짜 '연예인 야구단'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시합을 벌였다. 제작진은 실제 멤버들의 개인 훈련 모습을 중간 중간 비춰주기도 했다.

김민경도 "카메라 밖 선수들의 훈련 량이 상상 이상"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경기력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은 물론 설익었던 '진심'이 진짜가 되고 있었으며 몸이 그 진심에 반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울러 <마녀들>은 웨이브와 유튜브 등 OTT 선공개 후 지상파에 편성하는 변칙 전략을 택했다. 어쩔 수 없이 '보는 사람만 보는' 제한된 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흔한 '야빠'들은 확실히 이들 여성 연예인들의 노력에 응답을 하고 있었고, '지상파 정규 편성'을 연호하는 유튜브의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아직 김민경 등 선수들의 기량이 덜 무르익은 탓에 박진감은 덜했지만, 경기 장면만큼은 스포츠 예능 특유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SBS가 이번 설 특집으로 11일과 12일 양일간 방영한 <골 때리는 그녀들>의 방영 소식에, <마녀들>이 먼저 떠올랐다. '여성 야구'에 이어 이번엔 '여성 축구'인가 싶었다.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스포츠 예능에서 기대하는 그 감흥을 만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복병 또한 예상 가능 부분에 도사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물

'축구하는 여자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특집 예능 프로그램은 지난 11일과 12일 이틀 연속 동시간대 1위 및 지상파 예능 1위를 차지했다. 특히 12일은 10%를 돌파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선수 면면을 보니, 그런 높은 시청률이 무리도 아니었다.

'FC 국대패밀리'를 이끈 전 테니스 국가대표 전미라는 승부욕의 화신이었고, 체력 또한 명불허전이었다. 'FC 개벤져스'의 오나미는 학창시절 잠시 축구를 했다는 이른바 '선출'이이었고, 'FC 불나방'의 박선영은 딱 봐도 전 선수를 통틀어 군계일학이었다. 'FC 구척장신'의 한혜진은 발톱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녔고.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몸싸움은 예사였고,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기술들이 난무했다. 얼핏 보면 평균적으론 동네 축구 수준일 순 있었다. 그러나 여성 선수들의 고만고만한 실력 가운데서 터져 나오는 기량이나 골인의 순간들은 제작진의 적절한 편집과 어우러져 눈을 뗄 수 없는 박진감과 긴장감을 연출했다.

스포츠 예능이 왜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지에 대한 무리 없는 보고서였다고 할까. 갈수록 승부욕을 키우고 하루 새에 선수들의 실력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했다. 녹화 당일 두 번의 경기로 실력이 느는 선수도 있었고, 팀 동료들은 물론 상대 팀에게까지 함께 뛰는 사이에서 피어나는 (신봉선의 표현을 빌리면) "몸 정"을 느끼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일도 흐뭇함을 던져줬다.

전 국가대표 선수들의 아내들과 전미라, 그리고 '차범근 패밀리'인 배우 한채아로 구성된 'FC 국대패밀리'와 모델들로 구성된 'FC 구척장신'의 3, 4위 전이 특히 그랬다. 이미 한 게임씩 뛴 상태에서 두 팀이 악을 쓰고 벌인 3, 4위 전은 결승전보다 훨씬 더 진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기어코 해트트릭을 기록한 '전 국가대표' 전미라의 승부욕은 덤이었고.

제작진도 이 정도였는지 몰랐던 것 같다.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을 믿지 못했던 건지, 제작진은 끊임없이 감독들의 이력과 선수들과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시종일관 각 팀의 감독을 맡은 황선홍, 최진철이 출전했던 2002년 월드컵 장면과 김병지, 이천수의 현역 시절을 시종일관 소환했다. 특히 'FC 국대패밀리'는 '아내로서의 위치'나 '며느리로서의 입장'이 강조 또 강조되고 있었다.

왜 남자들만 조기축구를 해야 하나

이 모두 예능 특유의 흥미 요소를 부각하기 위한 편집이자 설정일 순 있다. 실제 경기 장면의 '그림'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1, 2부 도합 3시 간 반에 이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곁가지가 도드라지는 것은 결코 미덕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때때로 과유불급이었다. 'FC 국대패밀리'의 경우 끊임없이 김병지나 이천수의 '아내'라는 사실이 강조된 것이 일례였다. 진행을 맡은 배성재 아나운서나 방송인 이수근의 해설은 그러한 제한된 성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었고, 2021년과 어울리지 않는 '부창부수'를 연상시키는 평가가 난무했다. 누군가는 분명 시대착오적이라 느낄 여지가 충분했다.

뚜렷한 육체적·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하는 여성 선수들의 성장사는 분명 감동적이다. 그런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선으로 그릴 것이냐 하는 제작진의 시선과 눈높이와 궤를 같이 한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과거 여성 연예인들이 복싱을 하고 씨름을 하던 특집 프로그램과 <마녀들>과 JTBC <뭉쳐야 찬다>의 중간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다. 스포츠 예능 특유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선수가 아닌 여자가, 엄마가, 아내가 '축구하는 광경'을 희귀하고 유별나게 그리고픈 욕망이 프로그램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이 특집 프로그램의 의의일 순 있다. 결과적으로, 한혜진의 경우처럼 일반 여성에게 제한된 '팀 경기'를 체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간접 체험을 제공하고, 또 다른 팀들처럼 선후배간 동료애를 북돋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여자' 선수들을 주체적인 선수로서 대접했느냐, 명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자를 대체하는) 여자 출연자로만 대했느냐는 분명 다른 얘기일 수 있다. 특집 프로그램과 시즌제 프로그램, 명절 지상파 특집과 디지털 예능의 형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녀들>을 공들여 소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골 때리는 여자들>은 이수근의 말마따나 정규 프로그램 편성을 도모해도 좋을 만큼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종영한 <뭉쳐야 찬다>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소재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골 때리는 여자들>은 '왜 남자들만 조기축구를 해야 하나'에 대한 의외의 답변이자 우리 지상파 예능이 여성 출연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비하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흥미로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 출처 : 오마이뉴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