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축구선수 이근호

Talon 2013. 4. 11. 08:59

오늘 소개할 선수는 태양의 아들 이근호 선수입니다!


이근호 선수는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윙어입니다. 종교는 개신교이죠.


인천광역시 출생으로 동막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전 소속 구단인 대구 FC의 마스코트가 '태양'인 점에 착안하여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근호'라는 이름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그노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하대성 선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구 FC시절 함께 활약했으며, 두 선수 사이의 두터운 친분으로도 유명합니다.


2005년 연고 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으나, 제난 라돈치치 등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1군 출장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여 2군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2006년 K-리그 2군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하여 MVP를 차지하였고, 2007년 윤주일 선수와 트레이드되어 대구 FC로 이적하였습니다. 대구 FC로 이적한 이후 두번째 경기에서 전남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였으며, 그 다음 경기인 울산전에서는 하프라인부터 드리블하여 울산 수비수 세명을 돌파-골을 기록하며 언론으로부터 집중조명을 받기시작했습니다. 이후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 득점왕 경쟁을 펼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하여 팀의 간판 스타로 발돋움하였고, 2008년 2월, 이근호 선수는 수원을 비롯 K리그 빅클럽 이적을 추진했지만 구단의 잔류요청과 선수본인이 최고선수 대우 조건을 요청함으로 인해 연봉 1억 9천만원으로 대구 FC와 재계약에 합의하였으며, 그 해에 한국선수로는 리그 최다득점은 물론 베이징올림픽대표와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였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선을 무패로 통과하는데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허정무호에서 한때 박주영 선수와 함께 '한국판 비야-토레스'라인이라는 칭호를 팬-기자-전문가들로부터 받았으며 언론들로부터는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불리었습니다. 



 2009년 대구 FC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유럽의 여러 구단들과 이적 협상을 가졌지만, 주전 확보 문제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블랙번 로버스 FC의 2번에 걸친 제의를 거절하였고, 연봉 문제 및 미드필더 보강 문제로 인하여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빌럼 II 틸뷔르흐로의 이적이 결렬되었으며, 프랑스 축구협회의 규정 문제로 리그 1의 파리 생제르맹 FC로의 이적이 불발되었고, 계약 기간 문제로 덴마크 슈퍼리가의 오덴세 BK로의 이적이 무산되어, 유럽 리그로의 이적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당장 뛸 수 있는 팀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여 일본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였고, J리그 6라운드에서 데뷔전 상대로 시미즈 에스펄스를 맞아 2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다음 경기인 J리그 7라운드에서 교토 상가 FC를 맞아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시즌 2연승을 이끌었고, J리그 10라운드에서 알비렉스 니가타를 상대로 1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쳤으며, J리그 11라운드에서 오미야 아르디자를 상대로 2골 1도움의 원맨쇼를 펼치며, 리그 8경기에서 6골 5도움을 기록하여 J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습니다.


2009년 6월 리그 1의 파리 생제르맹 FC로부터 공식적으로 입단 제의를 받았고, 6월 19일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려고 하였으나,  계약에 실패하여 주빌로 이와타로 다시 복귀, 2010년 7월까지 재계약하였습니다. 2009 J리그에서 총 24경기에 나서 12골을 터뜨렸습니다.


2010 J1리그 리그 4라운드에서 첫 골을 기록한 후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6월 주빌로 이와타와의 계약이 끝난 후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였습니다. 2011년 감바 오사카에서 15골을 넣으며 활약했습니다. 병역 이행을 위해 감바 오사카와 결별하여 K리그로 복귀했고 울산 현대와 계약했습니다. 11라운드 경기인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무려 3골을 넣으며 자신의 부활을 알렸고, 팀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3:0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는 이어진 상주 상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추격골을 넣으며 4호골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예선 2차전인 브리즈번과의 경기에서는 0:1 상황에서 페널티킥 실축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팀은 이재성 선수의 동점골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2012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습니다.


2007년 6월 29일 이라크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그 경기에서 첫 A매치 득점을 올렸고,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였습니다.


2008년 10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여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고, 다음 경기인 2008년 10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2골을 기록하여 팀의 4-1 승리를 이끌어, 2000년 이후 8년 만에 A매치 2경기 연속 2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및 소속 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 멤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후 1년 만에 대표팀에 발탁되어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4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가다 뺏겨 가가와 신지에 선제골을 허용하였고, 그는 패배의 원흉이 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아랍에미리트와의 월드컵 3차 예선에서 후반 34분 서정진 선수와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 고전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에 천금같은 결승 골을 안겨주었고, 팀은 후반 추가시간 박주영 선수의 쐐기골로 2:0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인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 동점 골의 발판을 만들어 1도움을 기록했으나, 더 이상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팀은 1:2로 패배하며, 또다시 비난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의 경질 이후 새로 부임한 최강희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서 1도움, 쿠웨이트와의 3차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동국 선수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함과 동시에, 팀의 2번째 골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시킨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 후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광복절에 열린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골을 기록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호쾌한 돌파로 측면을 뒤흔들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합니다. 날카롭고 빠른 왼발 크로스를 올려 동료들이 마무리할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2007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11년 롯데제과 롯데월드콘XQ


2003년 백운기 전국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6년 K-리그 2군리그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7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7년 제21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인기선수상 수상

200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8년 윈저어워즈 한국축구대상 대상, 베스트 11 FW 부문상 수상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최우수 선수상 수상

2012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상 수상


이상 이근호 선수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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