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KBO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Talon 2013. 5. 5. 15:37

오늘 소개할 팀은 부산갈매기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단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 소속이며, 사직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75년에 실업 야구단으로 창단되었고 1982년에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연고지인 부산광역시의 상징 새가 갈매기이고 구단의 대표적 응원가도 〈부산갈매기〉라서 “부산갈매기”라고도 불립니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은 1975년 5월 6일 서울에서 창단되어 실업야구연맹에 10번째로 가입한 구단이었습니다. 미래의 프로 야구단을 지향하여 롯데 자이언츠라는 구단 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창단 감독은 김동엽 감독이었습니다.


1976년 춘계리그 성적 5승 1무 3패로 육군팀과 공동 3위, 하계리그 성적 7승 1무 1패로 우승, 추계리그 성적 5승 2무 2패로 우승

1977년 부산시장기 준우승, 백호기 전국선수권 준우승

1978년 후기리그 우승, 코리언 시리즈 준우승

1979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1차리그 준우승, 5차리그 준우승, 서라벌기 준우승

1981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전기리그 우승


실업 야구단이던 롯데 자이언츠는 1982년 2월 22일 부산과 경상남도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했습니다. 초대 감독은 박영길 감독이었습니다. 구단주는 애초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창단하고자 했으나 마지못해 부산직할시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해태를 제외한 전 구단이 서울 연고를 희망했기 때문이죠. MBC는 프로 야구 계획 단계에서 이미 서울 연고를 확고히 하고 있었고, 롯데의 연고지는 처음부터 부산-경남이었으며, 롯데의 대안으로 부산-경남 연고 구단이 유력시되던 럭키금성그룹은 처음부터 야구단 창단을 거부했습니다. 럭키금성은 이후 MBC를 인수하여 참가하게 됩니다.


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로 14-2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당해 시즌 승률 .388을 기록하며 6개 팀 중 5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프로 원년 롯데 자이언츠의 부진은 최동원 선수, 유두열 선수, 심재원 선수 국가대표 주전 3명이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로 롯데 입단을 1년 미루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당시, 모처럼 한국이 유치한 1982년의 제27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를 맞아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한 대한야구협회의 요청으로, 7명의 선수가 프로 전향을 유보하고 실업팀 등에 남았고, 그중 3명이 롯데 소속이었으며 3명 모두 주전이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 4번 타자였던 김용희 선수가 부상으로 팀을 이탈하였습니다.


참고로 당시 국가대표 차출을 이유로 프로입단을 연기한 선수는 심재원 선수, 유두열 선수, 최동원 선수, 김재박 선수, 이해창 선수, 임호균 선수 등 6명이었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당시 소속팀이던 실업팀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로 전향하자 다른 실업팀인 '한국전력공사'로 이적까지 했습니다.


1983년 시즌에는 최동원 선수, 심재원 선수, 유두열 선수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합류했으나 6개 팀 중 6위로 첫 최하위를 기록하였습니다.


1984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첫 우승을 한 시즌으로 이해 전기리그에서는 6개 팀 중 4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후기리그에서 8월 11일부터 시작된 홈 5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1위로 올라섰습니다. 이때, 최동원 선수가 4게임에 나와 2승 2세이브를 올리는 활약을 했습니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롯데는 전기리그 우승 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최동원 선수의 역투와 유두열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했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이해 정규리그 MVP와 27승으로 다승왕를 차지했으며 탈삼진 223개로 역대 탈삼진 1위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1985년 0.536의 승률로 전체 2위의 성적을 내지만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86년에는 5위를 기록하였으며 87년 3위, 88년 3위, 89년에는 7위, 90년에는 6위를 차지하였습니다. 91년에는 4위를 차지하였는데, 이해에 롯데는 1,001,920명의 관중을 동원,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홈경기 100만 관중을 돌파하였습니다. 롯데는 1984년부터 1989년까지 6년 연속 프로야구 관중 동원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1992년에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롯데 자이언츠는 준 플레이오프 2차전, 플레이오프 5차전, 한국시리즈 5차전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남두오성이라고 불리는 5명의 3할 타자를 배출했고, 윤학길 선수와 염종석 선수가 각각 17승을 따내었습니다. 고졸 신인으로 17승을 따내고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한 염종석 선수는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홈경기 누적 관중 1,209,632명, 평균 관중 19,201명을 기록하여 2년 연속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였습니다.


93~94년은 6위를 기록하였습니다. 95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OB 베어스에 3:4로 패하였습니다. 95년 1,180,576명의 홈경기 관중을 기록하여 3회에 걸쳐 100만 관중 달성을 기록하였습니다. 96년은 5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97년과 98년에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99년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에 몰렸으나, 5, 6, 7차전을 모두 6-5 한 점 차로 승리하였습니다.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7차전은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회자됩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한화 이글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마해영 선수가 .372로 역대 타격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고, 박정태 선수는 31게임 연속 안타의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스위치 히터 펠릭스 호세가 좌우타석 홈런, 연속게임 만루홈런과 1만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진기록도 보여 주었습니다. 1999년 롯데는 팀평균자책점과 팀타율 모두 1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팀 타율 .291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양대 리그제가 시행되었던 때로 롯데 자이언츠는 매직리그 2위, 삼성 라이온즈는 드림리그 3위를 기록하였으나 삼성의 승률이 더 높아 양 팀 간 3전 2선승제의 준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습니다. 1차전 당시 마산에서 최초로 포스트 시즌 홈 경기를 가졌습니다. 0-2, 4-2, 1-5로 1승 2패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고 최종 순위에는 5위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2007년까지 포스트 시즌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한편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전 도중 포수 임수혁 선수가 2루로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임수혁 선수는 이후 10년간의 투병 끝에 2010년 2월 7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1년 7월 24일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습니다. 후임인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암흑기’가 오게 됩니다. 특히 대표적인 1번 타자 감이었던 김주찬 선수에게 거포형으로 바꾸기 위해 홈런 스윙을 가르치고 이대호 선수를 전근대적인 훈련법으로 무릎 부상을 입게 했으며 손민한 선수를 트레이드 하려 하는등 1년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가 행한 수많은 만행들이 7년간의 롯데 자이언츠 성적이 부진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07년 까지 롯데 자이언츠는 년도 순으로 8 - 8 - 8 - 8 - 5 - 7 - 7위를 기록하여 7년간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2001년부터 2004년까지의 4년 연속 최하위는 한국 프로 야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 중 펠릭스 호세 선수는 역대 출루율 1위, 2000년대 조정OPS 1위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5년에는 시즌 초반 5연승과 함께 1위로 출발하였으나 여름 이후부터 처지기 시작하여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습니다. 한편 에이스 손민한 선수는 18승에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여 리그MVP를 수상하였습니다. 2006년 시즌 이대호 선수는 1984년 이후 처음으로 타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습니다.


미국 메이저 리그 출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9월 2일에는 팀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인 11연승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2008년 9월 16일에는 2000년 이후 8년만에 준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를 보답이라도 하듯 부산과 마산 홈 경기에는 무려 22차례나 입장권이 매진되었고, 전국의 야구장마다 롯데 팬들이 모여들며 응원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홈 마지막 경기인 KIA전을 앞두고 식전 행사에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4강에 가면 "부산 갈매기"를 부르겠다는 약속에 따라 허남식 부산광역시장과 함께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성원에 보답하였습니다. 아울러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이날 명예 부산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팀은 포스트 시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준 플레이오프 상대인 삼성 라이온즈에게 스윕당하면서 플레이오프행이 좌절되었습니다.


6월 초까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는 극적인 상승세를 타면서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 후 5전 3선승제의 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두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듯 하였으나 이후 3연패하여 실패하고, 최종 순위 4위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주전선수들과 초반 선발투수들의 잇단 부상들이 6월초까지의 최하위의 원인이었습니다.


타격에서 다른 팀을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여 롯데 타자를 만나면 몇 명 타자 제외하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할 정도로 타격에서는 준수했습니다. 프로야구 최초로 이대호 선수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모든 부분1위를 달성하고 9경기 연속홈런 세계신기록 달성하였습니다. 불펜 투수진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타선 덕분에 4위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 5전 3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두산을 상대로 2승을 거두어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는 듯 하였으나 믿었던 타선 김주찬 선수, 손아섭 선수, 조성환 선수, 이대호 선수, 홍성흔 선수, 가르시아, 강민호 선수, 전준우 선수, 황재균 선수, 문규현 선수가 타석에서 침묵을 지키며 3연패 역스윕을 당하여 또다시 2008, 2009년 시즌과 같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많은 팬들의 재계약 지지 운동에도 불구하고 재계약하지 못하였고, 후임 감독으로 고려대학교 감독이던 양승호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던 제리 로이스터를 이어 롯데를 맡은 양승호 감독은 시즌 전반기에 여러가지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는 지명타자 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기 위해 홍성흔 선수를 좌익수로, 불펜진 강화를 위해 고원준 선수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손아섭 선수, 김주찬 선수 등의 부상과 용병 투수 브라이언 코리의 퇴출 등으로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에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고 홍성흔 선수도 제자리를 찾으면서 팀 타격이 살아나 시즌 팀 타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고원준 선수도 불펜 혹사 논란 끝에 선발 투수로 복귀했습니다. 특히 전반기에 부진했던 불펜진이 살아났는데, 그중에서 임경완 선수, 강영식 선수, 김사율 선수가 경기 후반부를 잘 마무리했고 김사율 선수는 모처럼 20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조원우 외야 수비코치의 지도로 김주찬 선수, 손아섭 선수의 외야 수비가 많이 향상되어 수비가 안정화된 것도 후반기 상승세의 한 요인이었습니다.


롯데는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여 KBO 대회 요강 3조 1항에 따라 최종 순위는 3위가 되었습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롯데는 4명의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났습니다. 자유 계약 신분을 획득한 간판 1루수 이대호 선수와 사이드암 투수 임경완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이대호 선수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 프로 야구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하여 그 해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임경완 선수는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습니다. 또한 좌완 에이스 장원준 선수와 백업 포수 장성우 선수가 경찰청으로 입대하며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에서 좌완 투수 이승호 선수와 메이저 리그 진출을 준비하다 메디컬 테스트 문제로 돌아온 우완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 선수를 영입해 임경완 선수가 떠난 대신 투수진을 크게 보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승호 선수는 잔부상과 겨울훈련 부족으로 인한 구위 부진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고, 시즌 후 보호선수 제외 및 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팀을 떠났습니다. 정대현 선수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8월에서야 복귀하였습니다.


'미완의 대기'로 불렸던 강속구 투수 최대성 선수가 공익근무 소집 해제로 복귀했으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사이드암 투수 김성배 선수가 새로 영입됐습니다.


외국인 용병으로는 라이언 사도스키가 2010년부터 3시즌 연속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장원준 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좌완 투수 셰인 유먼을 영입했습니다. 유먼은 전 롯데 선수였던 브라이언 코리와 2011년 대만 프로 야구 라미고 몽키스에서 뛴 경험이 있으며, 코리로부터 롯데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유먼은 롯데 선발진의 한 축을 맡으며 장원준 선수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시즌 초반 롯데는 셰인 유먼, 이용훈 선수, 김성배 선수, 이명우 선수, 최대성 선수 등 탄탄한 투수진과 짜임새 있는 타선을 앞세워 선두권을 질주했고, 특히 60경기 이상 치른 시점이던 6월에도 단독 선두에 올랐습니다. 6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롯데가 중간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창단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롯데는 6월 17일 주전 포수 강민호 선수의 체력 안배를 위해 두산에 신인급 우완 투수 김명성 선수를 내주고 용덕한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용덕한 선수는 롯데 입단 직후 1군에 즉시 투입되며 강민호 선수와 번갈아 경기에 출장했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시즌 내내 잔부상과 부진 때문에 시름을 앓았습니다. 4번 타자 홍성흔 선수가 각종 잔부상으로 경기를 자주 걸렀고, 주전 유격수 문규현 선수와 톱타자 김주찬 선수도 잔부상에 자주 시달려 박준서 선수, 정훈 선수, 황성용 선수, 이승화 선수 등이 번갈아 가며 라인업을 채웠습니다. 또한 강민호 선수, 전준우 선수, 황재균 선수 등 핵심 타자들의 활약이 2011년보다 부진해지면서 공격력이 약해졌습니다.


결국 페넌트레이스를 4위로 마감해 2010년 이후 2년 만에 준 플레이오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했습니다. 페넌트레이스 개인 타이틀에서는 손아섭 선수가 158개의 안타를 쳐내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고, 마무리 보직을 맡은 주장 김사율 선수는 34세이브를 기록해 롯데 자이언츠 투수 중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산 베어스와의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박준서 선수, 용덕한 선수, 문규현 선수 등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맹활약하고, 부상에서 회복한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 선수가 호투하면서 3승 1패로 시리즈를 통과하게 됩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준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것은 1992년 이후 20년 만이며, 상위 시리즈로 진출한 것은 1999년 이후 13년 만이죠.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밀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시즌 후 양승호 감독이 물러나고 권두조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아 아시아 시리즈를 맡은 후 김시진 감독이 새로 취임하였습니다.


2012년 아시아 시리즈가 부산광역시 사직야구장에서 열려, 개최지 연고 팀 자격으로 아시아 시리즈에 출전하였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였던 우완 투수 조정훈 선수와 유격수 박기혁 선수가 공익근무 소집이 해제되어 복귀하였습니다. FA 협상 결렬로 김주찬 선수와 홍성흔 선수가 떠나게 되자 2013년 드래프트에서 지명하였던 투수 송창현 선수를 한화 이글스의 장성호 선수를 상대로 트레이드하여 보내고 장성호를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김주찬 선수와 홍성흔 선수의 보상 선수로 홍성민 선수와 김승회 선수를 지명하여 투수진을 보강했습니다. 신인 조홍석 선수, 김대우 선수, 김문호 선수를 김주찬 선수의 빈자리를 채워줄 듯 합니다. 톱타자도 바뀔것이죠. 김문호 선수는 현재 톱타자로 출루를 하며 롯데자이언츠의 득점기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롯데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인기 구단이죠. 롯데는 1991년 8개 구단 중 최초로 100만 관중을 돌파했습니다. 그 후에도 92년, 95년, 2008년, 2009년 등의 1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00만 관중 돌파 횟수 1위에 해당합니다. 특히 2009년에는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하며 롯데가 최고 인기 구단임을 증명하였습니다. 1991년 기록 역시 당시에는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습니다.


또한 롯데는 2011년 8월 20일 SK와의 홈경기에서 2만4547명의 관중을 기록해 역대 누적 관중 2000만 1394명으로 2000만 관중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팀을 유지한 단일 팀으로는 롯데가 최초이죠. 참고로 원년부터의 단일 팀이 아닌 경우까지를 포함하면, LG 트윈스가 그 전신인 MBC 청룡시절까지 포함해서 지난해 합산 관중 2천만 명을 최초로 돌파했습니다. 2011 시즌에는 총 67차례의 홈경기에서 총 135만 8322명의 관중을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4년연속 100만 관중을 돌파했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이죠.


2011년 한국 갤럽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롯데 자이언츠는 최고 인기 구단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TV 방송 시청률을 기준으로 해도 롯데 자이언츠는 높은 인기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청률 조사 기관인 TNmS와 AGB닐슨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에서 각각 집계한 2008시즌 시청률을 보면 프로야구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습니다. 2007시즌에도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성적이 최하위였던 시절에 관중들이 롯데의 무기력한 경기에 실망하여 무관중 운동을 전개한 결과, 2002년 10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불과 69명의 관중만 관람하는 경기를 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 관중 수는 역대 최소 관중 수 2위에 해당하는 불명예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롯데 구단은 2010년 기준으로 리그에서 구단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벌닷컴 조사 결과 프로야구단 중 롯데자이언츠의 구단가치가 3,509억원으로 평가돼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지역 방송인 KNN 라디오를 통해 롯데의 정규리그 전 경기와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공식적 응원문화가 없었던 1980년대 당시 배우 유퉁이 무명시절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사직구장에 갔다가 음주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이 사설 응원단장 문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구단 전속 응원단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개발한 응원 도구인 신문지를 가늘게 찢어 꽃술처럼 만들어 이를 흔들면서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부르며 응원합니다. 경기 후반에 접어들면 야구장에 들어 올때 쓰레기 수거용으로 구단에서 나눠준 주황색 비닐 봉지를 머리에 쓰고 응원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응원 구호는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롯데!"이죠. 경기 도중에 야구공이 관중석으로 들어오면 "아주라"를 관중들이 외치는데, 그러면 공을 잡은 어른은 주위의 어린이에게 그 공을 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아주라"는 "아이 주어라"라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이죠.


또한 상대팀이 게임을 지연하거나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면 투수에게 유키스의 "만만하니"의 음악에 맞춰서 '마!' 를 외칩니다. '마'라고 관중이 외치는 응원 구호는 1999년 시즌 당시 정민태 투수가 주자를 견제할 때 관중들이 '마'라고 다 같이 외쳐 투수를 위축시키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한 응원 단장이 이 구호를 모든 구단의 투수에게 사용하면서 지금의 '마'가 된 것이죠. '마'라고 외치면 상대 투수가 주눅들어 투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몇몇 구단은 맞대응을 하기도 합니다. 그 예로 과거 삼성 라이온즈 응원석에서는 "와!"를 외쳤고, 지금은 두산 베어스 응원석과 LG 트윈스 응원석에서 "왜!"를 외치고, SK 와이번스 응원석에서는 "쉬" 를 틀며 맞받아칩니다. 2010년부터는 이런 상대의 대응에 대해 다시 롯데의 응원석에서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의 한 부분인 'Shut up boy, So shut up boy, So shut up boy, So shut up, Shut up' 을 외치며 맞대응합니다.


투수가 상대팀의 타자를 삼진 및 더블 플레이, 도루 저지로 아웃시키면 Witches의 '떴다 그녀'의 전주가 흘러나오는데, 이 전주가 모두 끝나면 이 곡의 맨 첫 소절의 가사인 '어느 날~!'만 외치고 끝나게 됩니다.


교과서 출판사인 교학사가 2009년 출간을 위해 제작중인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 '레저스포츠 및 응원을 통한 사회화’라는 단원에 사직구장 응원문화에 대한 내용과 사진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이며, 2008년 12월 심사가 통과되고 1년가량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판되었습니다.


이상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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