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前 축구선수 펠레

Talon 2022. 8. 28. 02:40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펠레'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선수입니다~!

 

IOC가 선정한 세기의 운동선수이자, 20세기 세계 스포츠의 상징적인 인물로 여겨집니다. 그 엄청난 실력으로 완벽한 커리어를 쌓으며 세계 축구계에 이바지한 공을 대중에게 인정받아 통해 축구 황제로 불립니다. 또한 서민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브라질 정부에 의해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브라질의 명문 산투스 FC 그리고 선수 말년에는 미국의 축구붐 조성을 위해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1958년, 1962년 1970년 3번의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입니다. 1958년에는 실버볼, 1970년에는 골든볼을 수상했습니다.

산투스 FC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 1961~1965, 1968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1962~1963
인터콘티넨털컵 : 1962~1963
1968 인터콘티넨털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 1958, 1960~1965, 1967~1969, 1973
리오-상파울루 토너먼트 : 1959, 1963~1964, 1966

뉴욕 코스모스 - 1977 북미 사커 리그 사커볼 우승

브라질
FIFA 월드컵 : 1958, 1962, 1970

해트트릭 92회, 1경기 4골 31회, 1경기 5골 이상 6회
산투스 FC와 유럽 클럽 간의 친선 경기에서 132경기 143골
월드컵 출전 14경기 12골 기록
통산 1,363경기 1281골 기록
뉴욕 코스모스 10번 영구 결번

1970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전쟁 당시, 양측 당사자들은 라고스에서 열린 펠레 선수의 시범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 48시간의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펠레 선수는 1961년 3월 이른바 역사에 남을 만한 골을 기록했습니다.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펠레는 상대편 선수 모두를 혼자서 제치고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마라카낭 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극찬을 받은 이 골을 기념하기 위해 상파울루 스포츠 신문인 「우 에스포르테」는 기념판을 제작해 마라카낭 스타디움 입구에 걸어 놓았습니다.


펠레 선수는 909경기만에 1000골을 달성했으며 그 대기록은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2000회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라 평했으며, 자국에서는 두 번씩이나 인간이 달에 착륙했던 미국인 조종사 콘라드와 빈의 사진이 펠레의 1000번째 득점 사진과 나란히 실렸습니다.


콜롬비아에서는 펠레 선수가 심판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자 관중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와 주심이 경찰에 보호를 받아야 했고, 부심을 주심으로 임명하여 펠레 선수를 다시 경기에 투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란 국왕은 펠레 선수를 만나기 위해 공항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으며 중국의 국경 수비대는 그와 인사를 하기 위해 초소를 버리고 홍콩으로 들어갔습니다.


펠레 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아타리 2600의 게임 Pelé's Soccer는 스포츠 스타를 등장시킨 최초의 게임입니다. 1962년 펠레 선수가 두 번째로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유럽의 많은 스포츠 클럽은 펠레 선수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브라질 정부는 펠레 선수를 ‘국보(國寶)’로 선언하고 펠레 선수가 계속 브라질에 남도록 했습니다. 펠레 선수는 한평생 동안 단 하나의 프로팀에서 활약했는데, 그것은 산투스 팀이었습니다.


1966년 FIFA 월드컵 자체가 펠레 선수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조별리그 내내 편파판정에 시달렸는데 상대 3팀 선수들이 펠레 선수를 마음껏 구타하는데도 심판은 못본척 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브라질 선수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펠레 선수는 이 월드컵에서 상대 선수들에게 당한 구타로 인해 부상을 당했으며 이 부상과 편파판정에 의한 공황장애로 인해 축구선수로서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했습니다.


197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펠레 선수를 마크했던 이탈리아 대표팀 수비수 타르키시오 부르니치의 회고: “난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뼈와 가죽으로 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더라.”


2003년 초에 아나스타샤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대수술을 받은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펠레의 저주 중 최악의 사건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 그는 나이지리아, 스페인, 브라질을 우승후보로 삼았으나, 나이지리아는 예선에서 탈락하고 화가 난 나이지리아 대통령에 의해 2년간 국제 경기 출장 불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은 8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나 자책골과 주장의 퇴장 등으로 탈락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스페인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펠레의 저주를 깨뜨렸습니다.


2014년 FIFA 월드컵 그는 독일, 스페인, 브라질을 우승후보로 꼽았고, 아르헨티나는 팀이 엉망이고 메시를 도와주지 않아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혹평하였고, 심지어는 칠레만도 못한 팀이라고 발언까지 한 바가 있습니다. 스페인은 조별 리그에서 네덜란드한테 5골이나 먹으며 패배한 데 이어 칠레에게 마저 2골을 먹으며 패배한 뒤 탈락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케르 카시야스는 거의 역적 취급을 당했습니다.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을 만나 무려 7골이나 얻어맞아 1-7로 대패하고 3·4위전으로 떨어졌는데 거기에서 마저 네덜란드한테 0-3으로 또다시 대패하였습니다. 반면 혹평했던 아르헨티나는 예선전에서 3전 전승으로 승점 9점을 얻어 16강에 진출하고 이후로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하다가 독일에게 0-1로 석패하여 준우승을 했습니다. 즉, 독일은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고 결승에서 난적 아르헨티나를 만나 연장 후반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부차기만 간신히 모면하고 신승하여 우승함으로써 펠레의 저주를 한번 더 깨뜨린 것입니다.


FIFA 회장이었던 제프 블라터가 2018년 FIFA 월드컵 및 2022년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뇌물수수가 있었다는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선 연임에 성공하자 펠레는 이에 대해 "블라터의 당선을 원했다. 그는 또다시 당선되었고 또한 그를 존경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발언이 나온 다음 날, 제프 블라터는 곧 FIFA 회장직을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상으로 펠레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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