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코치 정대현

Talon 2023. 10. 9. 12:50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직각갑 정대현 코치님입니다~!

 

프로 시절 단 한 번도 선발 투수로 등판하지 않은 불펜 투수였습니다.

1997년 쌍방울의 고졸 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경희대 체육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경희대 체육대학 4학년 때 대학생으로는 유일하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9월 20일 그의 첫 번째 올림픽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7이닝 6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의 난조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9월 26일 미국을 상대로 두 번째로 선발 등판해 6.1이닝 3피안타, 2사사구, 6탈삼진, 2자책점을 기록했으나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 12월 4일에 계약금 3억 5,000만원, 연봉 2,000만원에 SK 와이번스와 계약했습니다. 2001년 4월 7일에 구원 등판해 1이닝 동안 세 타자를 상대로 2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시즌 18경기에 등판해 16.2이닝,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02 시즌 24경기에 등판해 1승,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선발 유망주로써의 가능성도 여겨지며 가비지 이닝을 소화하거나 2군에서 선발로 몇 경기 나오긴 했는데,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단기전이던 올림픽 때 드러나지 않던 꾸준한 로테이션을 돌기에는 무리라 판단되었습니다.

2003 시즌 37경기에 등판해 4승 3패, 8홀드, 2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셋업맨으로 불펜으로 전향한 시즌이었습니다.

2004 시즌 52경기에 등판해 2승 3패, 16홀드, 2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불펜의 중간계투 보직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 시즌 20경기에 등판해 1승, 6홀드, 3세이브,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부상 문제로 적은 경기밖에 뛰지 못했습니다.

2006 시즌 마무리가 취약했던 때에 호세 카브레라와 번갈아 가면서 마무리로 등판했습니다. ERA 1.94를 기록했습니다. 이 시기 우규민과 함께 언더-사이드암 불펜 투수로 정상급의 기량을 날렸습니다.

2007 시즌 김성근이 감독으로 부임하며 붙박이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많은 중간 계투진을 투입했기 때문에 팀의 야구를 이른바 '벌떼 야구'라고 불렀습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인한 잇따른 볼넷과 강민호의 퇴장으로 크게 곤경에 빠졌을 때 구원 등판해 병살을 유도하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습니다.

2009 시즌 내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예전의 구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2승 3패, 10세이브, 13 홀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부상으로 인한 투구가 마무리 부재로 인한 팀의 불안함을 드러냈습니다. 팀은 역대 최다인 19연승 기록을 세웠지만 그가 부진하자 고효준, 전병두, 정우람 등이 돌아가며 그의 공백을 메워야 했습니다. 또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시즌 후 그는 무릎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했고, 그를 대신해 이승호가 마무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2010 시즌 49경기에 등판해 4승 1패, 8홀드, 4세이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2009 시즌 종료 후 무릎 수술에 들어갔고 재활에 전념하다가 2010년 5월 7일 부로 1군에 복귀했습니다. 6월 10일, 김광현이 대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남겨놓고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최형우에게 내준 안타 하나 때문에 이루지 못한 후 인터뷰에 "오늘 너무 수고했다. 개인적인 소견은 신명철에게 힘을 빼고 승부했어야 했다. 다음 기회에 꼭 이루길 바란다. 수고했고 덕분에 잘 쉬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2010년 7월 20일, 복귀 이후 이어졌던 26경기 무실점 기록이 송지만에게 3루 강습 안타를 맞고 깨졌습니다. 이후 송지만에게 교회오빠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피홈런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5.4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습니다.

2011 시즌 53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11홀드, 16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시즌 후 FA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11월 22일 팀과의 우선 협상을 중단하고 MLB 진출을 선언했고,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간 320만 달러의 연봉 조건으로 협상했고,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중도 귀국했습니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간 수치가 높다는 진단을 받아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가족 문제도 고려해 12월 13일에 귀국했습니다. 그로 인해 KBO 리그에서 MLB로 곧바로 진출하려 했던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스토브 리그 때 당시 감독이었던 양승호가 투수진 보강을 위해 그의 영입을 타진했고, MLB 진출 포기를 전격 선언한 당일인 12월 13일 4년 간 총액 36억원에 곧바로 FA 계약을 체결하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습니다. 계약 후 그는 "미국에서 나름 힘들었는데 팀의 적극적인 공세로 마음이 움직였다"며 "꼭 이 팀의 유니폼을 입고 싶었다. 내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에 감사하고 열정적인 팬들이 있는 야구 도시 부산에서 뛸 수 있어 행복하다. 2012 시즌 팀 우승을 위해 큰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계약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2012년 시즌 직전 무릎 부상이 재발해 수술을 받아 약 6개월간 재활했습니다.

2012년 8월 9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등판해 1이닝 동안 1탈삼진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김사율이 마무리를 맡고 있어 셋업 및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2012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고, 1승, 2세이브를 기록해 MVP로 뽑혔습니다. 그의 별명과 함께 SK 와이번스의 불펜 운용을 두고 나온 '벌떼 야구'와 당시 감독이었던 양승호의 성인 '양'을 결합해 양떼처럼 투수들이 몰려나온다는 뜻으로 팀의 불펜 운용을 두고 '양떼 야구'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2017년에는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뒤 일본 프로 야구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습니다.

 

이대호와의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습니다. 2007년 이후 3년간 이대호를 19타수 무안타로 막아냈습니다. 그러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기록이 깨졌습니다.

이상으로 정대현 코치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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