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젠지의 겨울이 온다

Talon 2023. 11. 4. 14:00

2018년 10월, 작년 롤드컵 우승팀인 삼성 갤럭시를 인수한 KSV e스포츠가 이름을 젠지 e스포츠(GenG eSprots)로 바꾸고 롤드컵 무대에 올랐다. 중국 베이징에서 SK텔레콤 T1을 잡고 롤드컵을 우승한 이 팀은, 다시 한 번 호기롭게 세계 무대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조별 리그 1승 5패. LCK 사상 최악의 조별리그 성적을 받아들고 젠지는 부산에서 롤드컵 여정을 마무리했다.
다음해인 2019년 젠지는 아예 MSI와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고, 2020년 다시 롤드컵 무대에 올라 그룹 스테이지를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유럽 G2 e스포츠에 0대 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다음 해인 2021년에는 4강에 올랐지만 그해 우승 팀인 EDG에게 2대 3으로 패했고, 작년 롤드컵 역시 4강에서 대회 우승팀인 DRX와 만나 1대 3으로 패했다.
 

 


그간 받던 기대에 비해 항상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젠지. 하지만 3회 연속 LCK 우승을 달성한 젠지는 올해야말로 롤드컵 결승 무대라도 밟아볼 기세였다. 비록 처음으로 진출한 MSI 역시 기대보다 못한 성적표를 들고 왔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할만하다라는 모습이었다. 스위스 스테이지도 3승 무실세트로 진출했다. 상대는 3승 2패로 올라온 BLG. LCK 라이벌인 T1이 BLG를 이미 한 번 꺾었기에, 젠지 역시 BLG를 잡고 4강을 넘어 결승에 오를 것만 같았다. 팀에서 준비한 각종 마케팅 이벤트도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덩달아 후원사들 역시 큰 기대에 차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 기획은 한 순간에 모두 물거품이 됐다. 또다시 젠지는 부산에서 패했다. 그것도 또다시 BLG에게 패했다. 처음 두 세트를 허무하게 내주고 어떻게 2대 2까지 따라갔지만, 결국 마지막 세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선수들이 BLG에 무너지며 젠지는 부산과의 악연을 이어갔다.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고동빈 감독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우승 후보로 꼽힌 만큼 더 올라가고 싶었는데 탈락했다. 1세트와 2세트는 밴픽 전략이 잘못됐다. 유연한 밴픽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준비하지 못했던 내 책임이 크다"고 밝힌 고동빈 감독은 "국내대회에서는 괜찮게 전략을 짜는 거 같은데,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진 거 같다. 내 잘못이 크다"며 연달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전문가들 역시 젠지의 밴픽전략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젠지가 제대로 챔피언 티어정리를 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준비한 밴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융통성을 보이지 못하며 결국 패배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경기를 승리한 BLG 역시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밴픽이 더 뛰어났다"고 전했다.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나서는 반면, 게임단 측은 이날 경기를 둘러싸고 웃지못할 촌극을 남겼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놀드 허 젠지 e스포츠 CEO가 진행한 인터뷰를 밤 10시에 공개하겠다고 한 것. BLG에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가졌는지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아놀드 허의 인터뷰는 승리를 상정한 시간인 밤 10시 공개로 예약되어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그 시간까지는 경기를 끝내겠다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시간 전까지 경기가 끝나긴 했다. 물론 젠지의 2대 3 패배였다. 그리고 해당 인터뷰는 이틀 후 공개에서 아예 사라진 상태다. 인터뷰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CEO 치고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그가 평소 SNS에서 보이던 언행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사건이었다. 선수단 역시 8강 대진 이후 반응을 영상으로 올렸다가 현재는 댓글 작성을 막은 상태다. 실제 선수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지만, 이를 영상으로 공개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젠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 서투르고, 성급했다.

과연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확실한 건 젠지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은 이제부터가 험난할 것이라는 점이다. 2023 시즌을 롤드컵 8강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쥐어들고 마친 젠지 e스포츠는 '도란' 최현준-'피넛' 한왕호-'쵸비' 정지훈-'딜라이트' 유환중과 계약을 종료한다. '페이즈' 김수환을 제외하고 모든 주전이 계약이 종료되기에 "이대로면, 다죽는다"가 아닌 "이대로면 젠지부터" 비상인 상황이다.
 


당장 급한 것은 미드인 '쵸비' 정지훈이다. 정지훈은 3연속 LCK 우승과 함께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 획득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롤드컵을 앞두고 한국 서버 솔로 랭크는 신기록을 세우며 절정의 기량도 과시했다. 기량이 날로 오르는데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쵸비' 정지훈의 몸값은 이미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쵸비' 정지훈은 이제 자신이 얻지 못한 타이틀인 국제대회 우승 타이틀도 노릴 것이라는 점이다. 연봉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 우승까지 노리려는 그를 2017년 이후 매번 국제대회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한 젠지가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젠지 e스포츠는 원래 오버워치 리그 참여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단이고,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을 인수해 LCK에 참여했다. 최근 젠지 e스포츠의 근간이 된 오버워치 리그 진행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젠지 e스포츠는 그간 소속 오버워치 리그 팀인 서울 다이너스티의 선수단 일부와 계약 종료를 알렸다. 오버워치 리그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젠지 e스포츠는 결국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에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젠지 e스포츠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번 젠지의 겨울은 그 어느 겨울보다 추울 것으로 보인다. 과연 안방 호랑이는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다시 전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까. 젠지는 성적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시기다.

 

-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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